
[스포츠춘추]
김태형 감독은 현 KBO리그 최고의 명장으로 통한다. 두산 베어스 시절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3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뤘다. 300경기 이상 지휘한 역대 감독 중에선 김영덕 감독(0.596) 다음으로 높은 0.571의 승률을 기록 중이다.
김 감독은 단기전 운영의 최고수다. 2020년엔 3위부터, 2021년엔 4위부터 시작해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가는 ‘하극상’을 연출했다. 한 야구 원로는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이나 승부수를 던지는 배짱, 투수 활용 면에서 현역 감독 중에는 이강철 감독(KT 위즈)과 함께 투톱”이라고 평가했다.
그런 명감독이 롯데 자이언츠 지휘봉을 잡는다. 롯데는 20일 김태형 신임 감독 선임 소식과 함께, 계약기간 3년에 총액 24억 원(계약금 6억 원, 연봉 6억 원)의 최고 대우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2017년 준플레이오프 진출을 마지막으로 6년 연속 하위권에 머문 롯데를 가을야구로 이끌 적임자로 구단 대표이사와 그룹 최고위층이 큰 이견 없이 김 감독을 낙점했다.
롯데는 지난 몇 년간 시즌 막판까지 5강 싸움을 하다 탈락하기를 되풀이했다. 이런 팀에 우승 감독이 왔으니 팬들의 기대가 커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당장 내년 가을야구 진출은 물론 우승까지 가자는 외침도 들린다. 다른 구단 관계자는 “보통 감독 선임 소식이 언론을 통해 미리 알려지면 엎어지는(무산되는) 경우가 많은데, 김태형 감독의 경우엔 롯데 팬 사이에서 환영 여론이 압도적인 것 같더라”고 했다. 롯데 팬들의 가을야구에 대한 염원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두산 시절엔 뛰어난 프런트가 감독 지원, 롯데는 그런 구단이 아니다
한 가지 당연한 사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두산 시절 김태형 감독이 이룬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세 번의 우승은 감독 혼자 이룬 성과가 아니다. 누군가는 “선수들이 우승시켜줬으니까 고마워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도 반만 맞는 말이다. 잘하는 선수와 뛰어난 감독이 한 팀을 이뤘기에 두산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고 하는 게 옳다. 우승은 프런트와 감독, 선수단이 합심해서 만드는 것이지 누구 한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는 바꿔 말하면 김태형 감독 혼자 힘으로 롯데를 우승이나 포스트시즌으로 이끌 수는 없다는 얘기다.
두산의 7연속 KS 진출은 ‘꼴찌를 일등으로’ 만든 기적이 아니다. 두산은 김 감독 부임 전에도 뛰어난 재능이 모인 명문 구단이었다. 송일수 감독 시절인 2014년 한번 휘청했을 뿐, 그 이전 10년 가운데 8차례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강팀이었다. ‘화수분 야구’란 말이 나올 정도로 꾸준히 좋은 선수를 키워냈고 우승만 못했다 뿐이지 매년 정상에 도전했다. 이처럼 좋은 재료를 갖춘 팀이 있었기에 김 감독의 지도력이 빛을 발할 수 있었다. 반대로 부상자가 속출하고 팀 전력이 쇠락한 지난해엔 천하의 김태형 감독도 9위에 그쳤다. 물론 이것도 김태형 감독만의 책임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롯데는 우려되는 부분이 아주 많은 팀이다. 이 팀은 역사적으로 한 번도 지속적인 성공을 이룬 강팀인 적이 없었다. 원년 팀 가운데 유일하게 정규시즌 우승 경험이 없는 팀이 이 팀이다. 그나마 제리 로이스터 감독 시절 강팀 근처에 가까이 가긴 했지만 그 성공도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야구 모르는 고위층의 간섭과 부정적 의미에서의 ‘공무원’이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프런트, 일부 스타 선수만 빛나는 선수단의 총합체가 롯데였다.
다른 일반적인 구단은 떠난 사람들이 구단을 씹고 다니지 않는다. 이 구단은 떠난 사람들이 대놓고 구단을 욕하고 다닌다. 리스펙트도 레거시도 존재하지 않는 특이한 팀이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 나왔던 기막힌 에피소드는 대부분 이 팀에서 실제 벌어진 일이 모티브가 됐다. 하다 하다 2019년엔 전체 10위로 추락하면서 또 한 번의 흑역사를 남겼다. 결국 단장과 감독이 한꺼번에 날아갔고, 메이저리그 구단 출신 성민규 단장을 선임해 프랜차이즈 역사상 처음으로 ‘개혁’이란 것을 시도했다.
일각에선 지난 4년간 마치 단장이 롯데라는 팀을 망쳐놓은 것처럼 비난한다. 프로세스가 처참하게 실패했다는 감정적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프로세스’ 이전 롯데가 정상적 구단이었다면 외부 인사가 들어올 일도, 전에 없었던 새로운 시도를 할 일도 없었다. 2019년 후반에 합류한 성 단장은 R&D팀 강화, 첨단 기기 도입, 드라이브라인 훈련, 스카우트 전략 변화 등으로 이전 롯데와는 다른 방식으로 구단을 운영하려고 시도했다.
경질된 단장의 공과는 1, 2년 뒤에 더 정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질 것이다. 물론 재임 기간 한 번도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다만 신인드래프트와 육성 강화로 젊고 잠재력 있는 선수 구성을 갖춘 건 분명한 성과다. 롯데가 2020년 전후로 했던 여러 시도는 최근 새 단장이 부임한 삼성에선 팬들의 환호를 받고 있는 것들이다.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시도나 방향은 좋았던 것도 많다.
반면 감독이나 코치 인사에선 실패와 시행착오가 있었고 일부 선수 트레이드와 영입도 아쉬운 결과를 남겼다. 외부 ‘점령군’에 대한 기존 구단 내부자들의 반감은 임기 후반 노골적 흔들기로 나타났다. ‘스토브리그’에 나오는 장우석 차장(김기무 역) 같은 사람들이 날뛰는 걸 제때 막지 못했다. 임기 초반 단장의 적극적인 대외 행보가 적을 만든 측면도 있다. 처음에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가 나중에는 현실적인 이유로 타협하거나 과거 방식으로 돌아간 부분도 있었다. 지난 4년을 통해 롯데는 누가 와도 바꾸기 쉽지 않은 야구단이고, 어떤 처방도 듣지 않는 중증 환자라는 야구계의 진단이 또 한 번 사실로 확인됐다. 유능하고 강한 프런트가 확실하게 중심을 잡고 자신 있게 구단을 끌어가는 두산과는 리그 자체가 다르다.
현재 진행 중인 후임 단장 인선 결과가 중요하다. 결과에 따라 롯데는 2019년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최근의 방향성을 유지하면서 일부 수정 보완하는 쪽으로 갈 수도 있다. 대표이사가 모든 상황을 컨트롤하는 최근의 움직임으로 봐선, 앞으로도 대표이사가 주도권을 갖고 롯데에 오래 몸담았던 인사들이 핵심으로 복귀하는 그림이 예상되기도 한다. 이런 조건 속에서 김태형 감독이 혼자만의 능력으로 얼마나 성과를 낼지는 지켜볼 일이다. 분명한 건 두산이라는 명문 구단의 서포트를 받았던 시절과는 많은 게 달라질 거란 점이다.

김태형 감독의 ‘강한’ 리더십, 두산에서 통한 것 같이 롯데에서도 통할까
김태형 감독 특유의 리더십이 롯데에서 통할지도 궁금하다. 롯데가 가장 지속적인 성공을 거둔 건 로이스터 감독 시절이었다. 롯데 역사상 드물게 고위층의 간섭과 여론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감독이었던 로이스터는 개성 강한 롯데 선수단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뛰어난 성과를 냈다.
이후 양승호 감독 시절 마지막 전성기를 보낸 롯데는 김시진 감독을 거쳐 이종운-조원우-양상문-허문회-래리 서튼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이 가운데 김시진, 양상문 감독을 제외하면 대부분 초보 감독이었고 조원우 감독 외엔 누구도 팀을 가을야구로 이끌지 못했다. 일부는 전술이나 경기 운영 등 초보감독의 한계를 드러냈고 선수단 관리, 프런트와 관계, 미디어와 관계 설정에서 약점을 보이기도 했다. 서튼 감독의 경우 전임자와 프런트의 대립 구도 속에 취임하면서 선수들과의 관계 형성에서 어려움을 겪은 면이 있다. 외부 소음에 귀를 막았던 로이스터 감독과 달리 예민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성격으로 외국인 감독의 장점을 보여주지 못한 면도 있었다.
이에 롯데는 정반대 방향의 강한 리더십을 선택했다. 선수 시절부터 선수단 휘어잡기에 강점을 보여온 카리스마형 감독을 영입한 것. 김태형 감독은 “야구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레너드 코페트 저, 이종남 역)”를 누구보다 잘 보여주는 리더다. 따로 자기 사단을 두지도 않는다. 한 원로 야구인은 “김 감독의 경우 감독의 업무는 물론 투수, 타격, 수비까지 모든 분야를 다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코치들의 역할이 제한적이다. 두산 시절 보면 코치 구성이 매년 바뀌었는데, 어차피 감독이 다 하기 때문에 별 차이가 없다”는 평가를 전했다.
다른 구단 관계자는 “김태형 감독 체제에선 전처럼 선수들이 감독의 결정에 불만을 품거나 감독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 장면은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드러운’ 지도자가 대부분인 요즘 야구에선 보기 드문 리더십이다. 다만 이미 선수단과 오랜 시간 호흡을 함께했고 관계가 형성됐던 두산과, 전혀 다른 환경인 롯데에서 같은 방식이 통할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반면 “어린 선수들 위주로 선수단을 재편한 롯데라 김 감독 스타일이 잘 먹힐 수 있다고 본다”는 의견도 있다. 이건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모른다.
프런트와의 관계 설정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외부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사실 임기 막바지 김 감독과 두산 구단의 관계는 그리 매끄럽지 않았다. 감독의 힘이 점점 커지고 절대화되면 프런트의 힘이 위축된다. 헤게모니 싸움과 마찰은 필연이다. 이는 감독이 장기집권한 다른 구단에서도 똑같이 벌어진 문제다.
두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야구 관계자는 “아마 부임 초반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대표이사나 그룹 최고위층의 신임이 있는 만큼 초반에는 감독에게 힘이 쏠릴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잡음 없이 평화가 이어지면 그건 롯데가 아니다”라는 냉소적 견해를 말하는 야구인도 있다. 다른 야구인은 “해설위원으로 1년간 외부에서 야구를 보면서 김 감독도 많은 걸 보고 느꼈을 것이다. 롯데에선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말했다. 역시 뚜껑을 열어보기 전엔 알 수 없는 대목이다.
KBO리그엔 그동안 수많은 ‘우승 청부사’가 있었다. 여러 하위권 팀이 상위권 도약을 꿈꾸며 ‘우승 감독’을 모셔왔다. 그러나 그 수많은 청부사 중에 실제 팀을 우승으로 이끈 건 단 2명(김영덕, 김응용)밖에 없었다. 강병철, 백인천, 이광환, 김인식, 김재박, 선동열, 김성근, 조범현, 류중일 등 여러 ‘청부사’는 미션 달성 실패로 명성에 금이 갔다. 그 김응용 감독조차도 말년엔 한화 지휘봉을 잡았다가 커리어에 오점을 남겼다.
그리고 롯데는 KBO리그에서 가장 감독 난이도가 높은 팀이다. 이 팀은 역사적으로 감독들의 무덤이었고, 커리어의 종착점이었으며, 성공할 만한 이유보다는 실패할 만한 이유가 훨씬 많은 곳이다. 김태형 감독도 나름대로 커리어를 걸고,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이 자리를 맡았을 것이다. 롯데 감독은 다른 9개 구단이 아니라 롯데와 싸운다. 이런 롯데를 이겨낸다면 김태형 감독이 KBO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란 사실에 앞으로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없을 것이다. 김 감독의 무운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