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수원]
그야말로 ‘벼랑 끝’에 몰렸다. 정규시즌 2위로 마친 KT 위즈의 가을이 단 3경기만으로 끝날 위기다. KT는 홈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열린 앞선 플레이오프 두 경기에서 NC 다이노스 상대로 모두 패하며 0승 2패로 창원 원정길에 오르게 됐다.
KT가 ‘업셋’을 피하고 한국시리즈에 오르기 위해선 남은 3경기에서의 전승이 필요하다. 단 한 번의 패배도 용납되지 않는 상황.
이에 사령탑인 이강철 KT 감독이 10월 31일 플레이오프 2차전 2대 3 패배 후 취재진 인터뷰에서 “(3차전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있는 선수들을 모두 활용할 것”이라고 말한 까닭이다.
무엇보다, KT가 자랑하는 ‘최강 필승조’가 가을야구 무대에서 제대로 쓰이지도 못한 채 퇴장하기 일보 직전이기에 그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KT의 자랑 ‘손·박·김 필승조’ PO 2경기에서 제대로 쓰이지 못해

가을야구에서 필승조의 존재감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크다. 2011년부터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삼성 라이온즈는 ‘끝판왕’ 오승환을 필두로 철벽 불펜진을 꾸려 줄곧 트로피를 독식한 바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SK 와이번스(SSG 랜더스의 전신)도 강력한 불펜을 앞세워 가을야구에서 맹위를 떨쳤다. ‘여왕벌’ 정대현부터 이승호, 윤길현, 박희수, 정우람, 엄정욱 등 벌떼불펜이 뒷문을 든든히 지켜 2007년부터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그 가운데 우승도 3차례다.
올해 플레이오프 시리즈가 열리기 전부터 많은 이들이 KT의 우세를 점친 까닭도 ‘강한 불펜’에 있었다. 그도 그럴 게 KT 필승조의 존재는 그만큼 두텁다. 셋업맨 손동현-박영현 듀오에 마무리 김재윤으로 이어지는 KT의 올 시즌 뒷문은 가히 리그 최고 수준.
“우린 선발이 중요하다. 6이닝까지만 잘 버텨주면 그 뒤는 불펜에서 막아줄 수 있다.” 지난 31일 플레이오프 2차전을 앞두고 홈팀 더그아웃에서 만난 이강철 KT 감독의 신뢰다.

남들은 보통 7~9회가 문제인데, KT는 정반대다. 참고로 올 시즌 후반기 KT의 7~9회 평균자책(3.13)은 리그 1위다. 특히 필승조 셋은 공룡군단 상대로 무척 강한 면모를 자랑했다. NC 타선에 맞서 올해 정규시즌 30이닝을 소화하며 4승 1패 10홀드 3세이브 0피홈런 평균자책 0.60을 기록한 것. 피안타율은 0.172에 피OPS(0.395)마저 0.4를 넘지 않았다.
플레이오프 시작 전 스포츠춘추 취재에 응한 복수의 해설위원들 역시 불펜진을 손꼽으며 “필승조만큼은 KT가 NC보다 확실히 우세하다”고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플레이오프가 시작되니 리그 최강 필승조를 제대로 활용할 기회가 오질 않는다. 손동현과 박영현은 두 경기 모두 등판해 추격조 역할로 연투를 펼쳤고, ‘4년 연속 20세이브’ 마무리 김재윤은 상황상 등판조차 할 수 없었다.
심지어 플레이오프에 등판한 손동현(3이닝 무실점), 박영현(3이닝 무실점)은 추격 상황에서도 제 역할 이상을 해냈다. 정규시즌을 일찍 마치면서 3주 가까이 휴식기를 보낸 이들은 오랜만인 실전 등판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연이은 맹타로 오를 때 오른 NC 타선은 손동현과 박영현 앞에서 한 수를 접어야 했다. 심지어 둘은 31일 2차전에선 각각 멀티이닝을 소화해 6~9회까지 무실점 역투를 선보였고, 이를 통해 KT 타선이 경기 끝까지 뒷심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올 시즌 최고 활약’ 박영현, 향후 팀 승리 지킬 기회 주어질까

“지난해 가을야구만 해도 많이 긴장되고 떨렸다. 올해는 좀 다른 듯싶다.” 지난 31일 플레이오프 2차전을 앞두고 스포츠춘추와 만난 박영현의 말이다.
올해로 프로 데뷔 2년차를 맞이한 기대주 박영현은 이젠 명실상부 KBO리그 대표 셋업맨으로 우뚝 섰다. 신예답지 않게 큰 무대를 더 즐긴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선 신인 선수로 세이브까지 기록하더니, 올해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태극마크를 달고 4경기 무실점 맹활약에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이를 두고 사령탑인 이강철 감독은 “본래 지닌 구위도 구위지만, 멘탈이 정말 좋다. 그래서 올 한해 박영현을 믿고 마운드를 계속 맡길 수 있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3주가량의 휴식기에 ‘실전 감각’ 우려도 있었지만, 이내 강한 구위로 1, 2차전 구원 등판을 마쳤다. 이와 관련해 1차전 뒤 박영현은 “실전 등판 걱정은 거의 하지 않았다. 팀이 지고 있어 최대한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하려고 했고, 몸 상태나 투구 밸런스가 괜찮았기에 그 부분은 만족스럽다”고 했다.
한편, 박영현은 30일 1차전에서 국가대표 ‘금빛 파트너’였던 NC 포수 김형준과의 승부를 펼치기도 했다. 7회 초 마운드에 올라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김형준의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낸 것.
“(김)형준이 형과 경기 전에 잠깐 만나서 ‘예고 삼진’을 농담처럼 말했는데, 진짜 맞상대가 성사됐다. 대표팀 동료였지만, 동시에 우린 프로 선수다. 승부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던졌다. 형준이 형이 경기 끝나고 영상 통화에서 많이 분해하더라. 앞으로 남은 시리즈에서 또 만날 수 있는데 지는 일 없도록 계속 온 힘을 다할 것이다.” 박영현의 말이다.
끝으로 박영현은 “첫 경기를 졌기 때문에 이제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해졌다. 팀 선배님들과 함께 지금 이 상황을 뒤집는 게 최우선이다. 우리가 필요한 건 당장의 1승이다. 내가 그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날 박영현의 각오는 멀티이닝 무실점 역투로 이어졌다. 하지만 KT는 접전 끝에 결국 2연패를 피하지 못했다.
KT의 가을이 허무하게 끝날 위기다. KBO리그 플레이오프 역사를 보면, ‘리버스 스윕’은 흔치 않았다. 1996년 현대 유니콘스, 2009년 SK까지 두 차례에 불과하다.
올 시즌 최하위에서 정규시즌 2위까지 올라오며 ‘마법 같은 여정’을 보낸 KT가 다시 한번 기적적인 반등을 꾀할 수 있을까. 박영현을 포함한 필승조들은 이미 팀의 승리를 지킬 준비를 마쳤다. 창원 원정을 앞둔 마법사 군단이 2연패 후 2연승으로 홈 수원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