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1년 만에 경질당한 김원형 감독(사진=SSG)
우승 1년 만에 경질당한 김원형 감독(사진=SSG)

 

[스포츠춘추]

10월의 마지막 날 SSG 랜더스에서 벌어진 감독경질 사태를 놓고 야구계에서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구단에선 “구단주 지시가 아닌 구단의 결정”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지만, 한편에선 “구단주 의중이 아니면 불가능한 결정”이라며 불신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SSG는 10월 31일 플레이오프 2차전을 앞두고 “김원형 감독과 계약을 해지했다”고 발표해 야구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지난해 팀을 사상 최초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으로 이끈 사령탑이 재계약 1주년도 되기 전에 목이 달아났다. 구단 설명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반에 최종 결정이 났고, 12시 반에 감독에게 통보한 뒤 1시 반 발표까지 속전속결로 일이 진행됐다. 

SSG는 “성적 부진으로 인한 계약해지는 절대 아니”라고 강조했다. 구단 관계자도 “준플레이오프나 어느 1경기만 보고 내린 결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포스트시즌 종료 후 내부적으로 냉정한 리뷰를 치열하게 진행했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팀을 위해서는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봤다. 처음에는 선수단 구성, 세대교체, 팀 운영 및 경기 운영 전반에 선수 및 코칭스태프 구성으로 가닥을 잡았으나 감독 교체까지 진행하게 됐다”는 게 설명이다.

SSG의 감독 경질은 사실상 1년 전의 감독 재계약이 ‘오판’이었음을 인정한 셈이다. SSG는 작년 11월 17일 한국시리즈 4차전이 끝난 뒤에 ‘김원형 감독과 3년 재계약’ 소식을 알렸다. 일반적으로는 시즌 후반이나 포스트시즌 출전을 앞두고 재계약 발표를 하게 마련인데 SSG는 별 움직임이 없다가 4차전에서 지고 난 뒤 재계약을 맺었다. 공식적으론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이뤄낸 공을 높이 샀다’고 홍보했지만, 당시 여론과 야구계 분위기에 떠밀려 계약한 감이 없지 않았다. 최고 대우로 감독과 재계약했던 구단이 불과 1년 만에 감독과 함께 갈 수 없다고 돌아선 것이다. 

김원형 감독과 추신수(사진=SSG)
김원형 감독과 추신수(사진=SSG)

 

“구단주 뜻 아니다” 구단 해명, 일각에선 “믿기 어렵다”는 반응도

SSG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구단주 뜻이 아니다. 계약 해지는 구단에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에 관해 일부 야구계 인사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한 야구인은 “김원형 감독의 재계약 조건은 3년 총액 22억 원에 달한다. 이런 고액연봉자의 남은 2년 계약을 그냥 날리는 결정을 조만간 임기가 끝나는 사장이나 단장 선에서 결정했다고 믿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른 야구 관계자도 “2년 연속 가을야구에 진출한 감독을 재계약 첫해가 끝나자마자 경질하는 걸 구단 선에서 먼저 결정하고 구단주가 승인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고 했다.

경질 발표 한참 전부터 돌았던 흉흉한 소문도 구단 발표를 불신하는 원인이다. SSG가 9월까지 5위와 6위를 오가며 고전하자 야구인과 다른 구단 사이에선 ‘김원형 감독이 임기를 마치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과 ‘구단주가 염두에 둔 감독이 있다’는 소문이 신빙성 있게 퍼졌다. 시즌 중 한 팬이 SNS에 남긴 ‘감독 저격’ 댓글에 구단주가 직접 동의의 답글을 쓴 것도 경질설을 부추겼다. 10월에 SSG가 극적인 반등에 성공해 3위로 시즌을 마치면서 소문이 가라앉는 듯했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NC에 3연패로 ‘업셋’ 당하며 다시 심상찮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리고 결국 구단주의 ‘모르는 사람 없어, 기다려봐’란 댓글이 마치 자기실현적 예언처럼 이루어졌다. 

이와 관련해 SSG 관계자는 구단주의 SNS와 경질 결정 사이엔 연관성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의아하게 여길 순 있지만 어디까지나 ‘오비이락’이란 입장. “구단주가 직접 구단에 경질을 지시한 일은 없었다는 게 팩트”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전에도 구단주의 SNS 활동은 야구단과 묘하게 따로 논다는 인상을 줄 때가 많았다. 창단 전 SSG 랜더스라는 야구단명과 마스코트는 구단 공식 발표 전에 모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됐고 새 굿즈, 이벤트가 구단 발표 전에 구단주 소셜미디어를 통해 먼저 알려질 때가 많았다. 구단주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나온 메시지가 구단이 그리는 그림과 다른 형태를 띨 때도 종종 있었다. 구단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다.

지난해 불거졌던 우승 단장 교체 논란, 비선 실세 논란도 구단주 개입설을 부추겼다. 당시 SSG 구단은 자신들이 아닌 윗선에서 한 일을 뒷수습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이 사태를 통해 야구단과 새 주인 사이의 여전한 거리가 외부에 노출됐다. SSG 야구단은 SK 와이번스 때부터 일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구단주가 직접 임명하거나,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아니다. 구단주의 생각이나 방향성을 온전히 이해하고 전적으로 따르는 데 한계가 있다. 야구단 입장에서도 구단주나 모그룹과 관련해선 뭐라 언급하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야구단과 야구단을 인수한 기업 간에 화학적 결합이 이뤄지지 못한 틈새에서 각종 논란이 피어난 것이다. 이번 감독 경질과 후임 감독에 관해 ‘구단이 모르는 구단주 뜻이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SSG 구단주 특유의 강한 개성은 다른 구단이면 결코 불가능할 일도 SSG에선 가능할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추신수가 후임 감독이다’ ‘박찬호가 감독으로 온다’는 소문도 대상이 다른 구단이면 인터넷 게시판에서도 통하지 않을 헛소문 취급을 받았겠지만, SSG다 보니 “구단주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심지어 박찬호 감독설은 한 경제지에서 기사로 나오기까지 했다. 

구단에선 둘 다 강력하게 부인했다. 특히 박찬호 감독설에 대해 SSG 관계자는 “말 그대로 ‘설’일 뿐”이라며 “출처도 없고 구단에 확인 절차도 없었다. 이제 막 선임을 준비하는 중인데 감독이 정해졌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으로 후보에 포함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며 선을 그었다. 다만 해당 매체가 그간 구단주 관련 보도를 꾸준히 해왔다는 점에서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찬호는 SSG 구단주와 개인적으로 가까운 관계고, 전신인 SK 와이번스 시절부터 구단과 밀접하게 교류해 왔다. 

정용진 구단주와 박찬호(사진=SSG)
정용진 구단주와 박찬호(사진=SSG)

 

“구성원들이 치열한 논의…바텀업으로 이뤄진 의사결정”

온갖 소문, 추측과 별개로 SSG 구단은 이번 감독 경질이 철저하게 상향식(바텀업)으로 이뤄진 결정이라 강조한다. SSG 관계자는 “포스트시즌이 끝난 뒤 현장과 선수단을 가장 잘 아는 실무진들까지 참석해 리뷰를 진행했다. 여기서 여러 이야기가 나왔고 구단의 변화 필요성을 절감했다. 사령탑에 대해서도 다수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고 설명했다.

실제 올 시즌 김원형 감독이 코치진과의 관계나 선수단 운영, 경기 운영 면에서 문제점을 노출하면서 구단 안팎에서 지적이 나왔던 건 사실이다. 앞의 관계자는 “팀의 미래를 위해선 내년까지 가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결단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외부에선 어떻게 볼지 몰라도 실제 이런 과정을 거쳤고,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위에서 받아들여 주신 덕분에 계약 해지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구단이 명확한 비전과 근거를 갖고 감독 교체를 단행했다면 그 결정은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SSG가 이유로 든 ‘세대교체’는 현장만이 아닌 구단의 책임도 크다는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세대교체가 쉽지 않은 현재 SSG의 선수단 구성은 감독이 아닌 구단의 작품이다. 몇 년간 신인드래프트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고, 육성 파트에선 1군급 유망주보다 폭력 사태로 징계받은 선수가 더 많이 나왔다. 

세대교체 때문에 감독까지 날리는 팀이 40대 노장 추신수에게 리그 최고 수준의 연봉을 주고 있다. 30대 중후반 선수들에게 장기 계약을 선사한 것도 구단이다. SSG의 ‘세대교체’가 진심이라면 추신수 등 몸값 비싼 노장 선수들도 결코 안전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와 관련 SSG 관계자는 “감독 문제가 우선이라 추신수 등과 따로 대화할 기회가 없었다. 이른 시간 내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고 말했다. 추신수 감독설은 사실무근이며 현역 연장 여부가 결정할 사안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코칭스태프를 대거 정리한 후폭풍도 구단이 책임져야 할 몫이다. SSG는 마무리캠프 출발을 앞두고 지난해 우승과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함께한 코칭스태프를 대거 조정했다. 1군 채병용 투수코치, 손지환 수비코치, 곽현희 트레이닝코치, 퓨처스팀(2군) 박주언 투수코치, 류재준 컨디셔닝코치가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사의를 표한 이진영 코치는 타 구단 이적이 유력하고 조웅천, 정상호 코치도 다른 구단 유니폼을 입을 예정이다. 벌써부터 구단 안팎에선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간의 교류 단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감독 경질과 코치진 대거 해고로 어수선한 가운데 SSG는 1일부터 유망주 캠프와 마무리 훈련을 시작한다. 가고시마 유망주 캠프는 이대수 퓨처스 총괄코치의 지휘 하에 11월 1일부터 24일까지 열린다. 주전과 신인 선수들은 인천 홈과 강화 퓨처스 구장에서 마무리 훈련을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해만 해도 따뜻했던 SSG의 겨울이 1년 만에 칼바람 부는 맹추위로 돌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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