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잠실]
이보다 더 ‘절실한’ 도전이 있었을까. LG 트윈스가 29년의 침묵을 깨고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LG는 11월 13일 홈 잠실 야구장에서 KT 위즈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을 6대 2로 승리하며 시리즈 4승 1패로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이로써, LG는 1990, 1994년에 이어 팀 사상 세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또 사령탑인 염경엽 감독 역시 6전 7기 끝에 첫 트로피를 들어 올렸기에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 2013년부터 감독 커리어를 시작한 염 감독은 7시즌 만에 마침내 한국시리즈 우승 고지를 밟게 됐다.
다음은 경기 뒤 우승 세레머니를 마치고 취재진과 만난 염경엽 LG 감독과의 일문일답.
통합 우승 소감을 듣고 싶다.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좋은 경기를 함께 펼친 이강철 감독님을 포함해 KT 선수단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팬분들이 먼저 생각난다. (이번 우승까지) 정말 오래 기다리셨다. 그간 변함없이, 또 한결같이 응원해 주셨기 때문에 선수들이 매 경기 절실하게 임할 수 있었다. 정규시즌 동안 분명히 어려움이 있었지만, 선수들은 그걸 자신감을 만드는 과정으로 승화시켰다. 그 자신감 덕분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29년 전 LG의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엔 상대 팀(태평양 돌핀스) 선수로 뛰었다.
당시 LG는 강한 전력을 뽐내며 공·수에서 완벽한 팀이었고, 그에 맞선 태평양은 ‘지키는 야구로’로 응수했던 기억이 난다. 결과적으론 LG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한다면?
올해 LG는 모든 게 완벽하진 않았다. 시즌 초부터 마운드에서 부침이 있었고, 그걸 극복하는 과정에서 불펜 신구조화가 이뤄졌다. 박명근, 유영찬, 백승현처럼 젊은 필승조들이 등장했고, 또 함덕주, 김진성, 이정용이 중심을 잡아주면서 선발의 공백을 메꿀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가장 중요한 건 케이시 켈리, 김윤식이 한국시리즈 선발로 등판해 제 역할 이상을 해냈다는 점이다.
2013년부터 감독 커리어를 시작했고, 올해까지 총 7시즌을 보냈다. 과거의 실패 및 아쉬웠던 경험들이 올 시즌 성공에 어떤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는지.
그 시련들을 겪은 뒤 휴식기 동안 그전까지의 감독 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일들을 한 번 되돌아보고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게 내겐 올 시즌을 준비하면서 큰 자양분이 됐다. 특히 미국 연수 때는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그 안에서 내가 어떤 것이 부족했고, 또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를 많이 돌아봤다. 또 그때를 내가 정리했던 (야구 관련) 노트들을 재정리하는 기회로 삼았다.
1차전을 내준 다음 4연승을 거뒀다. 어느 시점에서 우승을 확신했는가.
2차전 역전승을 한 뒤에야 ‘우리가 우승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확신까지는 아니었다. 다만 3차전 승리 후엔 확신으로 이어졌다. 단기전에는 늘 승운이 따라야 한다. 3차전이 끝난 다음에 그게 우리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3, 4차전을 이기면서 승리를 향한 선수들의 열망을 몸소 느끼고 눈으로 확인했다. 그래서 6, 7차전까지 가더라도 ‘우리가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기존 공약 ‘천만 원’은 누구에게 줄 계획인지.
어제저녁에 결정했다. 유영찬과 박동원에게 각각 오백만 원씩 줄 것이다. 둘 다 가방이라도 하나 샀으면 좋겠다(웃음). 박동원이 시리즈 내내 워낙 잘했지만 유영찬 역시 마운드 운영에 있어 내가 숨을 고를 수 있게 해주었다.

절실함과 조급함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올해 포스트시즌 동안 LG를 보면, 절실하면서도 여유 있는 모습을 자랑했다. 이런 분위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나.
올해 한국시리즈를 시작할 때, 우리 선수들이 가진 열정은 그 어느 팀이 와도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게 잘못 풀리면 ‘조급함’으로 변한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거듭 더 차분하고 침착한 마인드셋을 강조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코치진이 그랬고, 또 고참 선수들이 그랬기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오늘 경기 전에도 선수들이 제법 흥분한 듯싶었는데, 그걸 조절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2014년 한국시리즈 준우승(넥센 히어로즈 시절) 이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때를 기억하면, 정말 겁 없이 야구했다(웃음). 전력상으로 열세였을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우승할 수 있다고 믿었고 또 우승이 너무 하고 싶었다. 그런 상황에서 맞이한 준우승에 너무 복받쳐서 정말 펑펑 울었다.
오늘은 눈물이 났는지.
살짝 났는데, 과거 준우승했을 때보다 눈물이 나질 않더라. 너무 절실하니까 감정선이 꼬였다. 경기 내내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되새기다 보니 눈물이 마른 듯싶다(웃음). 그래도 우승하고 선수들이 울 때 눈물이 나오더라.
개인적인 서사로도 절실했겠지만, 올 시즌 지휘봉을 잡게 된 LG는 지난 29년 동안 우승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실은 부담을 많이 안고 시즌을 시작했다. 시즌 초에 선발진과 불펜에서 균열이 났을 때 잠이 잘 오질 않더라. 그런 힘든 시간을 우리 선수들이 박명근, 유영찬, 백승현, 함덕주 등이 버텨주면서 4, 5월을 넘겼던 게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오는 데 큰 발판이 됐다.
한국시리즈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선발 최원태가 1회를 못 버텼을 때다. 우리가 먼저 1차전을 졌고 거기서 2차전마저 내준다면., 시리즈가 정말 힘들어지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우리 팀에 절실함과 열정이 넘친다고 해도 그런 위기를 견뎌내는 건 또 다른 얘기라고 생각했다.
과거 LG에서 스카우트, 코치, 그리고 프런트 시절을 거쳤지만 팀을 떠나야 했다. 그 뒤 돌고 돌아 올해 LG 감독으로 복귀했다.
감회가 정말 남다르다. 과거 LG에서 욕을 정말 많이 먹었지 않나(웃음). 누군가는 책임져야 했고. 그게 나였다. 내가 팀을 나가야만 우리 팀을 둘러싼 환경이 진정될 수 있겠더라. 나가면서 고 구본무 구단주님께 ‘성공해서 돌아오겠다’고 약속드린 게 기억난다. 우연치 않게 시기는 잘 맞지 않았지만, 돌아와서 LG 감독이란 엄청난 행운을 맞았다. LG는 내가 그동안 맡은 팀들 가운데 가장 전력이 강하다. 그만큼 중압감이 심했지만, 나를 믿어준 선수들과 프런트 덕분에 잘 이겨낼 수 있었다.
리그 초반만 하더라도, 팀을 향해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있었는데.
시즌 내내 바깥 목소리에 흔들리지 말자고 선수들에게 거듭 강조했다. 밖과 상관없이 내가 우리 선수들에게만 신뢰를 잃지 않는다면 된다고 믿었다. 결과는 결국 감독이 책임진다. ‘뛰는 야구’로 한창 말이 많았을 때도 사실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건 뛰는 것 자체가 아니라 망설임 없이, 초조함 없이 야구를 해나가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정 부분 발야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부분을 선수들과 계속 공유하고 끝까지 노력했던 게 지금의 좋은 결과물을 만들었다.
감독 생활을 하면서 마음고생이 심했을 듯싶다. 또 가족들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텐데.
맞다. 가족들은 내가 감독을 안 하는 걸 원했다. 처음 LG 감독으로 간다고 했을 때 반대를 먼저 했었다. 반대를 무릅쓰고 감독을 했다. 그 후로 아내는 정규시즌부터 오늘까지 매일같이 절에 가서 나와 LG를 위해서 기도한다. 또 딸은 야구장에 오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올 때마다 팀이 이기는 징크스가 생겼다. 그래서 아버지를 위해 이 추운 날씨에 매일 야구장에 와서 응원해 주고 있다. 내가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던 건 이러한 가족들의 힘 덕분이다.
LG는 이제 내년 시즌 한국시리즈 2연패를 향해 나아간다. 그간 한국시리즈에선 연속 우승팀이 드물었다. 이에 앞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그래서 올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올해 통합 우승 경험이 내년 시즌을 준비하는 선수들에게 더 큰 자신감을 만들어 주고, 멘탈적으로도 더 단단해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선수단 구성은 신구조화가 잘 됐지만, 여기서 유망주들을 더 키워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LG는 앞으로도 우승에 계속 도전할 수 있는 강팀으로 거듭날 수 있다. 팬들께도 ‘우리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더 많은 우승을 할 수 있는 첫 발걸음을 뗐다. 내년 준비 잘해서 이맘때 또 웃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