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에이스 케이시 켈리(사진=LG)
LG 에이스 케이시 켈리(사진=LG)

[스포츠춘추=잠실]

LG 트윈스가 29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탈환하며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옛말에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던가. 지난 2019년부터 줄곧 가을야구 잔치에 빠지지 않고 참여한 LG는 비로소 5년째인 올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손에 움켜줬다.

그 5년을 맨 처음부터 함께한 이가 바로 외국인 투수 케이시 켈리다. 1989년생 우완 켈리는 메이저리그(MLB)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선수 출신으로 보스턴 레드삭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거치면서 최고 유망주로 평가받기도 했다. 하지만 부상과 부진이 겹치면서 결국 아시아 무대로 건너왔고, 2019년 LG와 그렇게 인연을 맺게 됐다.

LG에 합류한 켈리는 올 시즌까지 5년을 뛰면서 팀 역사상 최장수 외국인 선수로 거듭났다. 켈리가 온 뒤로 LG는 매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우승을 향한 꿈을 키웠다. 물론 팀에 좌절이 없던 건 아니었다. 앞선 4년 동안 최종 4위-4위-4위-3위에 그치며 아쉬움을 남긴 것.

LG 켈리의 통산 포스트시즌 등판 일지(표=스포츠춘추 김종원 기자)
LG 켈리의 통산 포스트시즌 등판 일지(표=스포츠춘추 김종원 기자)

다만 가을만 되면 켈리는 늘 한결같이 LG 마운드를 지켰다. 켈리의 개인 통산 포스트시즌 등판 기록은 8경기 4승 1패 평균자책 2.08로 무척 좋았다. 무엇보다, 크게 무너지는 일 없이 언제나 5이닝 이상을 견고하게 버텼다. 정규시즌 통산 기록(평균자책 3.08)을 고려하면 팀을 대표하는 ‘가을 사나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켈리는 ‘2023 한국시리즈’에서도 1차전과 5차전 선발 등판 중책을 맡아 2경기 평균자책 1.59 맹활약을 펼쳤다. 특히 두 경기 모두 5이닝 이상 1자책 이하 투구로 팀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LG가 새롭게 맞이할 전성기에서 개국공신을 논한다면 단연코 빠져선 안 될 이름이 바로 켈리다.


연이은 부진에도 LG는 켈리를 향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2023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세레머니에 참여한 켈리(사진=LG)
2023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세레머니에 참여한 켈리(사진=LG)

KBO리그 5년차를 맞이한 켈리의 올 시즌은 시작부터 좋지 않았다. 4월 1일 개막전에서는 KT 위즈를 만나 5.1이닝 6실점 패전을 안았기 때문. 또 첫 달 6경기에서만 평균자책 5.66에 그쳤다. 5월 들어 반등(5경기 평균자책 2.73)에 성공하나 싶었지만, 이내 다시 무너지며 전반기 18경기 동안 평균자책 4.44로 보내야만 했다.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고 앞 4시즌을 맹활약했고, 지난해 정규시즌 다승왕(16승)에 평균자책 2.54를 선보였던 켈리였기에 더 도드라지는 부진이었다. 특히 지난해 켈리가 수확한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는 야구통계사이트 ‘스탯티즈’ 기준 5.19로 그해 리그 투수 전체 5위 및 LG 팀 내 최고 투수에 해당한다.

그런 켈리의 부진에 전반기 내내 교체설이 돌았다. 탄탄한 전력에도 팀의 유일하다 싶은 약점이 바로 선발진 부진이었기 때문. 이 때문에 LG는 지난 7월 29일 국가대표 우완 최원태를 트레이드로 데려오는 승부수를 띄우기도 했다. 켈리를 향한 의문부호는 함께 외국인 투수 듀오로 짝을 이룬 ‘건강했던’ 애덤 플럿코의 연이은 호투(전반기 17경기 평균자책 2.21)도 한몫했다.

하지만 사령탑인 염경엽 LG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염 감독은 끝내 켈리를 포기하지 않았고 시즌 내내 “켈리는 우리 팀 1선발 에이스”라며 굳센 믿음을 드러낸 바 있다. 마냥 믿고 기다린 건 아니었다. 선수와 끊임없이 면담을 통해 대화를 나누며 개선점을 찾았다. 시즌 도중 체인지업 그립을 바꾼 게 대표적이다.

후반기 들어, 켈리는 서서히 팀의 기대에 부응하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투구 내용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 9월 이후로는 우리가 알던 켈리의 모습이 돌아왔다. 5경기에 등판해 31.1이닝 동안 2승 0패 4볼넷 26탈삼진 평균자책 1.72를 기록했다.

가을을 앞두고 제 컨디션을 되찾은 에이스는 말 그대로 ‘눈부신’ 호투로 믿음에 보은했다. 특히 정규시즌 1위로 마치고 맞이한 휴식기 및 자체 훈련 기간엔 염 감독도 모르게 코치진과 상의해 새로운 무기를 장착해서 돌아왔다. 바로 포크볼이었다.

“시즌 내내 포크볼 장착 관련해서 켈리와 대화를 계속 나눴다. 그때는 켈리 본인이 부담스러워했는데, 이번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준비해 왔더라. 포크볼이 구종 레파토리에 추가되면서 삼진 비율도 크게 높아질 것이다.” 염 감독의 ‘신구종’ 평가다.


LG가 켈리를 믿었던 만큼, 켈리도 본인을 향한 확신 있었다

한국시리즈 5차전 종료 후 우승 세레머니 중인 케이시 켈리(사진=LG)
한국시리즈 5차전 종료 후 우승 세레머니 중인 케이시 켈리(사진=LG)

켈리의 변신에 놀란 건 LG의 안방마님 박동원도 마찬가지였다. 13일 한국시리즈 5차전을 앞두고 스포츠춘추와 만난 박동원은 “외국인 선수를 떠나 ‘한국시리즈’ 같은 큰 무대를 앞두고 변화를 시도한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며 혀를 내둘렀다.

켈리는 7일 KT 위즈와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포크볼을 앞세워 1회 초부터 헛스윙 탈삼진을 끌어내는 등 단기간 변화에도 제법 익숙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박동원은 “켈리는 그만큼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또 그걸 1차전에서 실력으로 입증했기에 더 대단하다”고 힘줘 말했다. 

KT와의 열띤 한국시리즈 경쟁 도중 취재진과 만난 염경엽 감독은 그런 켈리를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단순히 기량 반등, 그리고 유연성 등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요컨대, 염 감독은 켈리가 보여준 헌신에도 깊은 감명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LG가 KT와 한창 시리즈 1승 1패를 주고받은 뒤인 10일 3차전 시점이 그랬다. 당초 LG는 만일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KT에 패한다면 11일 4차전 선발 투수로 켈리를 내정했던 상황. 1차전 선발이었던 켈리는 사흘 휴식 만에 마운드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무척 타이트한 일정에도 팀 상황을 고려한 켈리는 기꺼이 벤치의 제안을 수락했다. 지난 11일 수원에서 한국시리즈 4차전을 앞두고, 이때를 회상한 염 감독이 “켈리가 ‘3일 휴식이 부담스러운 것과 별개로 팀 동료 불펜들을 믿고 최소 4~5이닝은 버틴다는 생각으로 등판하겠다’고 답했다. 그런 마음가짐이 참 인상깊었다. 켈리와 함께하는 게 좋다. 내년 시즌도 켈리와 가고 싶다”고 미소를 지은 까닭이다.

또 1차전 종료 후 켈리의 포크볼을 칭찬하던 염 감독은 “새 구종을 장착한 켈리에겐 내년 더 큰 활약을 기대한다”고 말한 바 있다. 사령탑은 마음을 벌써 굳혔고, 켈리는 전반기 부진을 뛰어넘고 가을야구에서의 연이은 호투로 팀 우승 주축으로 우뚝 섰다. 내년에도 같이 동행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가올 2024시즌, ‘6년차 LG맨’으로 돌아와 잠실 마운드에 설 켈리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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