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2024년 ‘청룡의 해’ 갑진년이 밝았다. 올해 한국야구의 달력은 그 어느 해보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이벤트로 촘촘하게 채워질 전망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초대형 계약을 맺은 이정후가 빅리그 데뷔 시즌을 앞두고 있고, 김하성과 류현진도 다음 시즌을 준비 중이다.
3월엔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사상 최초로 빅리그 정규시즌 경기를 한국에서 개최한다. 오타니 쇼헤이, 야마모토 요시노부, 다르빗슈와 KBO리그 팀의 대결도 준비돼 있다. 여기에 정규시즌 로봇심판 도입, 연내 도입이 유력한 피치클락 등 KBO리그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변화도 기다린다. 김태형 감독이 이끄는 롯데 자이언츠의 돌풍, LG 트윈스의 왕조 건설 여부도 관심사다.
무엇보다 기대되는 건 젊은 스타들의 활약이다. 미국 도전을 선언한 김혜성의 올 시즌 활약상,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조상우의 복귀, 1라운드 지명으로 입단한 대형 신인들의 활약 등 흥미로운 볼거리가 가득하다. 이 가운데 올 시즌 특별히 더 기대해야 할 이유가 있는 10명의 선수에 스포츠춘추가 주목해 봤다.

이정후, 주전 중견수+1번타자로 빅리그 첫 시즌
KBO리그 최고의 타자는 빅리그에서도 통할까. 올해 이정후의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을 주목해야 할 이유다. 이정후는 먼저 포스팅을 통해 빅리그에 진출했던 한국인 타자들과는 다른 유형이다. 강정호는 장타력이 돋보이는 유격수였고, 박병호는 홈런타자였다. 김하성 역시 파워 툴에 스피드를 겸비한 만능 내야수였다. 반면 이정후는 파워보다는 컨택 능력이 장점이다. ‘바람의 손자’라는 별명 탓인지 미국에선 발이 빠르다는 오해도 있지만 사실 스피드는 평균 수준이다. 포지션도 내야가 아닌 외야수다.
공수겸장 중견수 자원이 귀해진 메이저리그의 시장 상황이 이정후의 6년 보장 1억 1,300만 달러 초대형 계약으로 이어진 셈이다. 수비력으로 첫 시즌 적응기를 버틴 김하성과는 완전히 다른 조건이다. 첫해부터 바로 타격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일단 샌프란시스코 구단은 이정후가 빠르게 적응해 첫해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리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각종 통계 예측 시스템에서도 이정후의 첫 시즌 0.280대 타율과 10개에 가까운 홈런을 예상하고 있다.

‘유격수 재도전’ 김혜성의 빅리그 꿈은 이루어질까
지난 시즌을 마친 뒤 김혜성은 오랫동안 가슴속에 간직해온 야심을 드러냈다. 2024시즌 뒤 포스팅을 통해 국외무대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여기에 홍원기 감독과 면담에서 유격수 포지션 재도전 의사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홍 감독은 확답을 주기보단 “2루수로 너만의 장점을 살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혜성이 유격수 복귀를 시도하는 이유를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유격수는 귀하신 몸이다. 비슷한 공격력이면 유격수가 훨씬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꼭 주전 유격수가 아니라도 된다. 유격수가 가능하다는 사실만 보여줘도 몸값의 앞자리 수가 달라질 수 있다. 장타보다는 스피드와 컨택이 장점인 김혜성이라서 포지션은 더 중요한 문제다. 과거 유격수 시절엔 불안한 송구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연차가 쌓이고 주전으로 자리 잡은 지금은 다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과연 김혜성은 유격수로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까. 팀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충돌하지 않고 모두에게 행복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을까. 많은 것이 걸린 도전이다.

고우석의 빅리그 첫 시즌 혹은 KBO리그 마지막 시즌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한 고우석의 포스팅 마감시한(1월 4일 오전 7시)이 채 이틀도 남지 않았다. 기다림의 시간이다. 몇몇 구단에서 꾸준히 관심을 보여왔고 현재도 이야기가 오가는 중이지만 아직 계약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LG 구단과 고우석 측은 만족스러운 조건이 아니라면 국내에 남겠다는 의사가 확고하다.
만약 올해 KBO리그에 남더라도 크게 손해 볼 건 없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고우석의 존재를 알게 됐고, 스카우트들의 레이더망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성과다. 만약 올 시즌 화려한 반등에 성공한다면, 훨씬 좋은 조건으로 미국 무대에 도전할 수 있다. 한 아시아 담당 스카우트는 “고우석 입장에선 올해 좋은 성적을 거두고 FA(프리에이전트)로 미국에 가는 것도 방법”이라며 “올겨울 샌디에이고와 계약한 마쓰이 유키도 부진한 시즌이 있었지만, 최근 몇 년간 뛰어난 성적을 냈고 덕분에 좋은 계약이 가능했다”고 했다. 고우석에게 올 시즌은 그 어느 해보다 중요하다. 물론 미국 구단과 계약에 성공하더라도 중요한 시즌인 건 마찬가지.

이주형, ‘이정후 후계자’의 대관식
강정호가 메이저리그로 떠난 2015시즌, 키움 히어로즈는 김하성이란 새 간판스타를 얻었다. 이정후의 한국 무대 마지막 시즌인 지난해에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 이정후가 발목 부상으로 빠진 후반기, 키움 외야에 이주형이라는 큰 재목이 등장해 미래를 꿈꾸게 했다.
경남고 시절부터 타격 재능만큼은 특급으로 인정받았던 이주형. LG 시절엔 두꺼운 선수층과 수비 문제로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지난 시즌 트레이드로 키움에 합류한 뒤 날개를 활짝 폈다. LG에서 터지지 않은 유망주가 키움에 와서 터지는 스토리는 과거 박병호의 성공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면도 있다. 지난해 이주형은 키움 합류 이후 51경기 타율 0.330에 6홈런 34타점 OPS 0.911로 ‘포스트 이정후’의 잠재력을 보였다. 올해 이주형의 데뷔 첫 풀타임 시즌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김형준, 포스트 양의지의 첫 풀시즌
프로 데뷔 시즌인 2018년, 그해 19세 신인 포수 김형준은 1군 무대에서 60경기에 출전했다. 레전드 포수 박경완, 국가대표 포수 강민호의 데뷔 시즌보다도 많은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양의지 FA 영입을 앞두고는 구단 내부적으로 외국인 포수와 김형준으로 한 시즌을 보내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기도 했다. NC가 이 차세대 안방마님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걸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 기대는 틀리지 않았다.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지난 시즌 후반, 김형준은 공수에서 묵직한 존재감으로 단숨에 주전 자리를 꿰찼다. 수비는 물론 공격에서도 26경기 6홈런 OPS 0.835로 활약했다. 포스트시즌에선 더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홈런 2방을 날렸고, 준플레이오프에서 홈런 하나를 추가했다. 올 시즌엔 개막전부터 주전 포수로 마스크를 쓸 전망. 전문가들은 양의지의 뒤를 이어 리그를 이끌어갈 젊은 포수로 김형준을 첫손에 꼽는다.

‘광속구 마무리’ 조상우는 다시 비상할까
안우진이 등장하기 전까지 KBO리그 최고의 광속구 투수는 단연 조상우였다. 2019시즌 조상우는 48경기에 등판해 평균구속 152.2km/h를 기록해 2017년 한승혁(당시 KIA)의 국내투수 최고 평균구속(151.2) 기록을 뛰어넘었다(2015년 이후 기준). 이후 조상우가 부상과 군 복무로 자릴 비운 사이 리그엔 안우진, 문동주, 곽빈, 고우석 등 새로운 파이어볼러들이 등장했다. 그래도 조상우하면 강속구라는 이미지는 여전하다. 2년간의 군 복무 공백을 딛고 돌아오는 올 시즌, 조상우의 화려한 비상을 기대해 본다.

손성빈, ‘레이저 송구’로 피치클락 시대 지배한다
올시즌 KBO리그는 로봇심판(ABS)과 피치클락이라는 큰 혁명을 앞두고 있다. 특히 피치클락과 여기 수반되는 여러 규칙 변화(견제 제한, 베이스 확대)는 각 팀의 경기 전략부터 선수들의 퍼포먼스까지 많은 것을 바꿔놓을 전망. 발 빠른 주자들의 도루 시도가 급증하고, 주자 견제가 취약한 투수들이 애를 먹는 그림이 예상된다. 또 프레이밍에 능한 포수보다 송구능력이 뛰어난 포수의 비중이 커지는 것도 예상되는 변화다. 리그 최고의 송구능력을 자랑하는 롯데 손성빈의 올 시즌 활약을 기대하는 이유. 지난 시즌 ‘1.82초’의 메이저리그급 팝타임을 기록한 손성빈은 강한 어깨와 정확한 송구가 강점이다. 여기에 지난해 45경기 타율 0.263을 기록한 방망이 솜씨도 나쁘지 않다.

곽빈, 안우진 없는 국내 에이스 ‘No.1’ 노린다
고교 시절부터 안우진과 라이벌 구도를 이뤘던 곽빈은 지난 시즌 데뷔 첫 두 자리 승수(12승)와 2점대 평균자책(2.90)을 기록하며 프로 데뷔 이후 가장 안우진에 근접한 시즌을 보냈다. 비록 규정이닝은 채우지 못했지만 차세대 국내 에이스로서 가능성을 증명한 시즌. 올 시즌은 ‘라이벌’ 안우진 없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안우진이 팔꿈치 수술과 군입대로 자리를 비우면서 리그 최고 국내 선발투수 자리에 올라설 기회가 찾아왔다. 물론 그러려면 고영표, 문동주, 원태인, 박세웅 등 쟁쟁한 투수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즉시 전력감’ 김택연, 두산 불펜을 구원할 특급 신인
김택연은 올해 입단한 신인 선수 가운데 가장 ‘1군 즉시 전력’에 가깝단 평가를 받는다. 물론 전체 1순위로 지명된 황준서(한화)도 있지만 1군 데뷔까진 다소 시간이 필요할 전망. 반면 150km/h 강력한 속구를 뿌리는 김택연은 바로 1군 마운드에서 불펜투수로 기용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뛰어나 스피드, 확실한 주무기, 준수한 제구력, 침착하고 영리한 경기 운영까지 무엇하나 빠지는 게 없다는 평가. 지난 시즌 뒷문 단속에 어려움을 겪었던 두산은 올 시즌 김택연의 등장에 적지 않은 기대를 걸고 있다. 두산이 입단 1년 차 신인 투수에게 이 정도로 기대를 갖는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다.

전미르의 도전, KBO리그에도 ‘투웨이’ 시대 올까
경북고 시절 전미르는 ‘전타니’란 별명으로 불렸다. 마운드에선 최소 151km/h의 힘 있는 강속구로 타자들을 압도했고, 타석에선 무자비한 스윙으로 대형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롯데 입단 뒤에도 전미르는 투수와 타자를 오가며 투타 겸업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일단 투수로는 합격점을 받았다. 김태형 감독이 “당장 1군에서 쓸 수 있을 정도”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다만 타격에선 힘은 인정받았지만 좀 더 다듬어야 한다는 평가. 현재까지 분위기로 봐선 일단 투수로 1군 무대 진입을 노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