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을 거다.”
‘200안타 타자’ 서건창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친정팀 키움 히어로즈로부터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해가 지나도록 아직 계약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이재원, 임준섭 등 베테랑 방출 선수들이 하나둘씩 새 팀을 찾아가는 와중에 서건창은 아직 무적 신분이다.
서건창은 KBO리그 역사에서 손에 꼽을 만큼 드라마틱한 ‘육성선수 신화’의 주인공이다. 2008년 LG 트윈스에 육성선수로 입단했다가 이듬해 방출당했고, 군 복무를 마친 뒤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에 입단해 다시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넥센에서 서건창의 야구는 활짝 꽃을 피웠다. 단점보다 장점을 살리는 염경엽 당시 감독은 서건창의 수비 약점보다 컨택 능력과 기동력에 주목했고,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2012년 최우수 신인상을 받은 서건창은 2014년 역대 유일 한 시즌 200안타와 타율 0.370을 기록하며 정규 시즌 최우수선수(MVP)에 등극했다.
2015년 경기중 상대 수비수와 충돌해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었지만, 돌아온 뒤에도 타격 능력은 녹슬지 않았다. 2016년과 2017년 2년 연속 3할대 타율을 기록했고, 2018년을 부상으로 거의 날린 뒤 돌아온 2019시즌에도 3할 타율을 채웠다.
그러나 시즌 중 트레이드로 LG 유니폼을 입은 2021년부터 급격한 내리막이 시작됐다. 2021년 타율 0.254에 그쳤고 2022년엔 부상 여파 속에 77경기 타율 0.224로 고전했다. 지난해도 시즌 초반 주전 2루수 기회를 잡았지만 부상과 부진 속에 44경기 타율 0.200에 12타점으로 커리어에서 가장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 제외된 서건창은 시즌 뒤 전력 외로 분류되면서 LG와 두 번째 작별을 고했다.

LG를 떠난 서건창에게 이번에도 키움이 손을 내밀었다. 키움 고형욱 단장은 지난해 12월 스포츠춘추와 통화에서 “11월 25일에 (서건창이 방출됐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연락했다. 선수 생활 마무리는 우리와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에 서건창은 정중하게 감사를 표현하면서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로는 키움과 다시 연락이 오가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키움 관계자는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려고 한다. 우리는 기다릴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건창의 침묵이 길어지자 일부 팬 사이에서 ‘다른 구단과 키움 사이에서 간을 보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키움 외에 서건창과 링크가 형성된 구단은 없는 상황. 유력 행선지로 지목된 지방구단도 서건창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관계자가 방출 직후 안부 전화를 한 게 전부다. 이 구단은 내부 FA 계약과 베테랑 선수 연장계약이 최우선이라 외부 영입엔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서건창과 가까운 한 야구인은 “선수가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을 것”이라며 “외부에선 ‘왜 빨리 키움과 계약하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선수 입장에선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물론 구단에서 먼저 연락을 준 건 고마운 일이지만 얘길 들어보니 구체적인 제안이나 조건, 계획까지 얘기한 건 아니라고 한다. ‘함께하자’는 얘기가 전부라 선수로선 생각이 복잡할 것”이란 얘기다.
서건창은 이제 34세로 아직 한창 현역 생활을 이어갈 나이지만, 최근 몇 년간 부진이 계속됐다. 수비와 주력은 둘째치고 그래도 아직 경쟁력이 있다고 자부하던 타격에서마저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선수 본인이 느꼈을 실망감과 당혹스러움이 어느 정도일지 다른 사람은 짐작도 하기 어렵다. 키움 시절 서건창과 알고 지낸 관계자는 “물론 친정에서 멋지게 반등하는 그림도 좋지만, 그 반대의 상황을 생각하면 걱정도 되지 않겠나. 팬들 앞에 가능하면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키움 2루엔 김혜성이란 국가대표 스타 선수가 있다. 여기에 2차 드래프트로 최주환이 합류하면서 2루에 그나마 존재하던 빈틈마저 사라졌다. 2루수 외에 다른 포지션은 해본 적 없는 서건창으로선 합류해도 지명타자와 대타로 역할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친정 복귀의 ‘낭만’도 좋지만, 선수 개인으로서는 기회와 성적 반등을 통한 명예회복이 그만큼 중요하다. 서건창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키움은 여전히 기다리는 입장이다. 키움 관계자는 “자칫 선수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면서 결심이 설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겠단 뜻을 밝혔다. 키움 유니폼을 입은 서건창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팬들도, 구단도, 많은 이들이 원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