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이보다 뜨거운 스토브리그를 보낸 팀이 있을까. 2차 드래프트부터 방출선수 영입, 외부 FA(자유계약선수) 보강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시도한 삼성 라이온즈 얘기다. 게다가 내부 FA 역시 모두 붙잡으며 내실까지 다졌다.
삼성은 올겨울 팀 최대 약점으로 손꼽힌 ‘불펜’을 알차게 채우는 데 성공했고, 타선에선 공·수 핵심 열쇠인 외국인 내야수 데이비드 맥키넌을 영입하면서 균형을 맞췄다.
일주일여 뒤면 일본 오키나와로 떠나 스프링캠프에 나선다. 본격적인 시즌 준비를 앞둔 사자군단은 다음 과제로 ‘5선발’ 옥석 고르기에 집중할 전망이다.
‘불펜 해결’ 삼성, 5선발 준비도 꼼꼼히…올봄 ‘무한경쟁’ 예고

삼성은 늘 강력한 선발진으로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곤 했다. 그 중심엔 데이비드 뷰캐넌·원태인 우완 원투펀치가 있었다. 둘은 2020년부터 도합 1313.2이닝을 책임지며 4년간 91승을 합작했다. 야구통계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두 에이스가 해당 기간 쌓은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이 무려 30.37에 육박한다.
하지만 올 시즌부턴 그중 한 명인 뷰캐넌이 없다. 삼성은 뷰캐넌과의 재계약 협상에서 난항을 겪었고, 결국 대안 격으로 우완 데니 레예스를 선택했다. 이로써, 삼성은 내야수 맥키넌, 우완 코너 시볼드까지 포함해 신규 영입으로만 외인 3자리를 채웠다. 그간 불안한 뒷문으로 마음을 졸였다면, 이젠 변수가 많아진 앞이 문제다.
“그동안 불펜 문제로 골머릴 앓았지만, 지금은 다르죠. 불펜이 보강된 시점에서 이젠 선발 쪽 준비를 잘해야 할 듯싶습니다.”
최근 스포츠춘추와 연락이 닿은 박진만 삼성 감독의 말이다.
이어 사자군단의 사령탑은 “일단 올 시즌 선발 구상엔 코너, 레예스, 원태인, 백정현까지 들어와 있다”면서 “다만 백정현이 부상 회복 후 한 시즌을 통째로 소화하는 건 무리가 있을 수 있다. 이 부분을 대처할 수 있도록 스프링캠프에서 만반의 준비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새 판 짜기’에 나선 삼성의 아킬레스건은 여전히 하위 선발에 있다. 원태인(2019년 데뷔) 이후 선발 투수 육성 자체가 드문 상황.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차세대 좌완 에이스’ 최채흥은 기대와 달리 다소 부진한 2023년 한 해를 보냈다. 제대 후 기록이 15경기 63.1이닝 1승 7패 평균자책 6.68에 그친 것. 그 외에도 삼성의 지난해 5선발 경쟁엔 황동재, 김대우, 양창섭, 장필준, 이호성, 최하늘 등이 참여했지만, 모두 아쉬운 결과물로 이어졌다.
때문에 삼성의 스프링캠프 5선발 오디션 키워드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이다. 이를 두고 박 감독은 “많게는 4명까지 경쟁한다. 준비된 선발 카드가 많을수록 기존 선발(원태인, 백정현) 모두 시즌 중 체력 안배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은 오랫동안 선발 한 자릴 맡아온 베테랑 좌완 백정현의 후계자도 찾아야 한다. 2007년 삼성에 입단해 프로 데뷔 18년차를 맞은 백정현은 올해로 37세다. 2023년엔 팔꿈치 부상으로 한창 시즌 중인 8월 전력에서 이탈한 바 있다. 박 감독이 계속해서 체력 관리를 강조한 까닭이다.
그 와중에 ‘국민 유격수’가 주목한 이름이 있다. 바로 이번 겨울 호주프로야구(ABL) 유학을 다녀온 좌완 기대주 이승현이다.
‘새 보직’ 선발 도전 앞둔 이승현, ‘새 등번호’ 달고 심기일전

“(이승현은) 스프링캠프 5선발 경쟁 후보입니다. 올겨울 호주로 건너가 선발 수업을 하면서 준비도 어느 정도 마쳤죠. 투구 수를 늘리는 과정을 보고받았는데, 인상적이었습니다.”
돌고 돌아 프로 데뷔 4년 만에 선발 투수 기회를 받게 된 이승현이다. 2002년생 좌완 이승현은 2021년부터 지난 3년간 147경기를 모두 구원 등판한 바 있다. 지난해 정규시즌 도중 ‘돌부처’ 오승환의 후계자로 낙점돼 마무리 변신 가능성을 엿봤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2023년 최종 기록은 48경기 동안 43.1이닝을 던져 1승 5패 7홀드 5세이브 평균자책 4.98이다.
시즌 종료 후 이승현의 선택은 ‘선발 전향’이었다. 구단 또한 뜻이 일치했다. 다만 3년 내내 불펜에서만 뛴 이승현은 선발에 익숙한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해 국외 유학에 나섰다. 팀 동료 우완 박권후, 포수 이병헌 등과 함께 그해 11월 12일부터 12월 23일까지 호주프로야구(ABL) 애들레이드 자이언츠에 합류해 총 6라운드 일정을 소화한 것. 이승현은 당시 6경기를 등판해 25이닝 동안 10볼넷 24탈삼진 평균자책 4.32를 기록했다.
이에 삼성은 휴식기 없이 숨 가쁜 겨울을 보낸 이승현을 주목했고,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5선발 오디션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무혈입성이 보장된 상황은 결코 아니다. 선수 본인도 이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승현이 스포츠춘추와의 통화에서 “아직은 내 자리가 정해진 게 하나도 없다. 아직 보여드린 게 없어 (선발을 향한) 각오를 밝히는 것조차 부끄러울 따름이다. 만일 귀중한 기회를 받게 된다면, 일희일비하지 않고 차근차근 잘 준비하겠다”고 한 이유다.
이어 이승현은 스프링캠프 내 최우선 목표로 건강을 강조했다. “안 다치고 캠프 일정을 완주하는 게 첫 번째”라고 말한 이승현은 “또 투심 패스트볼 장착, 투구 수 늘리기 등 호주에서 했던 보완 과제들이 끝난 게 아니다. 캠프 기간에 더 정진해야 할 듯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승현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볼 스피드 기복’과 관련해선 “당연히 신경 쓰고 있는 대목”이라면서 “볼 스피드는 투수에게 중요한 요소다. 제구를 비롯해 내겐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지금 시점에선 어느 하나를 포기할 생각은 없다”고 힘줘 말했다.
‘심기일전’을 준비 중인 이승현은 등번호도 변경하면서 마음을 새롭게 했다. 2024년 시즌을 맞아 대구상원고 재학 때 등번호인 57번을 프로에서도 달게 됐다.
“항상 달고 싶었던 번호입니다. 제가 숫자 7을 무척 좋아하고, 고교야구 시절 좋은 기억도 있어서요.”
그도 그럴 게 이승현은 고교야구 시절 전국구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다. 대구상원고에서 활약하며 광주일고 이의리(KIA), 강릉고 김진욱(롯데)과 함께 당대 아마추어 레벨 최고 좌완으로 인정받았다. 이때의 좋은 기억을 되살리고자 하는 이승현이다.
이승현은 끝으로 “우리 팀엔 경험 많은 선배가 많다. 틈만 나면 찾아가겠다. (백)정현이 형, (최)채흥이 형, (원)태인 형에게 수시로 찾아가 노하우들을 물어볼 계획이다. 소중한 기회인 만큼, 스프링캠프를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