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뜨거운 감자’ 샐러리캡 상한선이 2025년까지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상한선 상향조정 혹은 제도 자체의 폐지를 원하던 구단들이 뒤로 한발 물러나면서, 샐러리캡 초과 시 ‘지명권 하락’ 페널티만 없애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KBO는 1월 24일 서울 양재동 야구회관에서 2024년 제1차 실행위원회(단장회의)를 개최했다. 회의 시간 대부분은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ABS) 시행 관련 세부 규칙을 의논하는 데 할애했다. 최근 논란이 뜨거웠던 샐러리캡 문제는 정식안건이 아닌 ’보고사항’으로 짧게 논의가 오갔다.
회의에 참석한 A구단 단장은 “공식 안건은 ABS등 새 규칙과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샐러리캡 얘기는 오래 하지 않았다. 얘기해보고 추가 논의가 필요하면 다음 회의 때 정식 안건으로 논의하자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B구단 단장은 “샐러리캡 문제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폐지 같은 주장은 아예 나오지 않았고, 다만 2연속 초과에 따르는 지명권 하락 페널티를 일부 조정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있었다”면서 “다음번 실행위에서 그 정도는 논의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정도로 샐러리캡 관련 대화가 마무리됐다”고 했다.
KBO 샐러리캡은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간 적용된다. 2021년과 2022년의 10개 구단 연봉 상위 40인의 평균액인 95억 2199만 원에서 120%에 해당하는 ‘114억 2638만 원’이 상한선이다. 1회 초과 시 초과분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을, 2회 연속 초과 시에는 초과분의 100%에 해당하는 제재금과 다음 연도 1라운드 지명권이 9단계 하락하는 페널티가 따른다. 3회 연속 초과 시에는 초과분의 150% 제재금과 이듬해 1라운드 지명권이 9단계 하락한다.
A구단 단장은 “지명권 9단계 하락은 너무 과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며 “지명권 대신 제재금에 해당하는 야구발전기금을 좀 더 많이 내게 하자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아직은 여러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런 안과 기존 제도를 놓고 다음 실행위에서 의논해보자는 데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비판 여론 부담됐나…샐러리캡 수정파 구단들의 전략 변경
최근까지 ‘샐러리캡 대폭 손질’ 내지는 폐지 여론을 선동하던 일부 구단들이 이번 실행위에선 전략을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올겨울 몇몇 구단은 “샐러리캡 때문에 구단 운영하기 어렵다” “샐러리캡 때문에 외부 FA(프리에이전트) 영입을 못 하고 있다” “리그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며 샐러리캡 손질을 요구하는 장외 여론전을 펼쳤다. “샐러리캡 위반으로 뉴스가 되고, 추가 지출이 발생하면 모기업에서 좋지 않게 바라볼까 우려된다”는 속내를 드러낸 구단도 있었다.
하지만 ‘원칙‘을 고수하는 구단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아 현실적으로 샐러리캡에 손대긴 쉽지 않은 상황. B구단 단장은 “일단 2025년까지 유지하기로 약속한 것 아닌가. 한번 정한 기준이 있고, 그걸 준수하려고 애쓴 구단도 있는데 상한선을 높이는 건 아니라고 봤다”면서 “샐러리캡 금액은 원래대로 2025년까지 유지하자는 의견이 다수였다. 다만 지명권 9단계 하락은 너무 심하니까, 대신 제재금을 높이자는 의견이 나온 것”이라 설명했다.
2026시즌 이후를 대비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날 회의 내용을 잘 아는 야구 관계자는 “최초 정한 샐러리캡은 2025년까지다. 그렇다면 2026년부터 새로운 기준을 정해야 하는데, 이걸 올해부터 미리 의논해서 일찌감치 결론을 내자. 그래야 2026년 이후 장기적인 구단 운영을 준비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전했다.
결국 논란의 샐러리캡은 수정 없이 2025년까지 3년간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다음 실행위 결과에 따라 ’지명권 9단계 하락’ 벌칙을 제재금으로 대체하는 방안이 논의될 여지는 있다. 회의 내용을 잘 아는 관계자는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면서도 “샐러리캡 폐지나 대폭 손질과 같은 과격한 주장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샐러리캡 손질’ 여론을 조성하려 시도했던 몇몇 구단들이 뒤로 물러난 데는, 예상보다 강한 비판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C구단 관계자는 “최근 몇 달간 샐러리캡에 불만 있는 일부 구단이 다양한 방식으로 여론의 ‘간’을 봤다”면서 “7개 구단이 제도 수정에 찬성한다거나, 유지를 지지하는 구단은 2팀뿐이라는 말도 나오던데 전혀 사실과 다르다. 침묵이 곧 동의를 의미하는 건 아니지 않나. 7~8팀이 샐러리캡 수정을 바란다는 식의 보도는 특정 팀의 희망 사항이 과하게 반영된 것”이라 지적했다.
A구단 단장은 “샐러리캡이 현재 프로야구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1년 만에 바꾸는 건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면서 “여론이 생각만큼 우호적이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이번 실행위에선 크게 무리한 주장은 나오지 않았다. 대부분 온건하게 톤을 조절해서 얘기하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 야구 관계자는 “애초 우려와 달리 실제로는 샐러리캡을 초과한 구단이 나오지 않은 것도 원인일 것”이라 바라봤다. “여러 구단이 올겨울 샐러리캡이 폭발 직전이다, 반드시 터진다며 엄살을 떨지 않았나. 막상 스토브리그가 끝나가는 지금 보면 전 구단이 상한선을 맞추는 데 성공했다. 오히려 FA 계약 등에서 선수를 압박하는 카드로 잘 써먹은 구단도 적지 않다”는 의견이다.

도입 찬성했던 팀들이 입장 바꿔 “폐지 혹은 수정” 한목소리, 샐러리캡 논의 과정 돌아보니
스포츠춘추는 그간 10개 구단과 KBO의 여러 관계자를 대상으로 샐러리캡 논의가 진행된 과정을 취재했다. 단장 회의인 실행위와 사장 회의인 이사회에 참석한 복수의 고위 관계자, 회의 내용을 정확하게 아는 KBO 관계자로부터 다양한 목소리를 전해 들었다. 특정 구단의 의도가 반영된 단편적인 정보만이 아니라 찬/반 입장의 여러 구단을 대상으로 실제 회의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왔는지 취재했다.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샐러리캡 제도는 2018년 9월 KBO 실행위에 올라온 FA 상한제가 시발점이다. 당시 실행위 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에 FA 선수 몸값을 최대 4년 80억 원으로 제한하는 ‘상한제’를 제안했다. 이에 선수협은 FA 상한제 대신 다른 방안을 만들어 몸값 거품을 줄이자고 역제안했고, 이를 받은 구단들이 다시 내놓은 답이 바로 샐러리캡이었다.
이때부터는 전광석화같은 속도전이 펼쳐졌다. 2019년 11월 열린 KBO 이사회는 샐러리캡을 FA 취득기간 단축과 함께 ‘이른 시일 내에’ 일괄 추진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후 논의를 거쳐 2023년부터 샐러리캡 도입이 확정됐고, 2022년 11월엔 샐러리캡 총액과 페널티 조항까지 정했다.
당시 회의과정 잘 아는 구단 관계자는 “초기 샐러리캡 도입을 주도한 구단은 현재는 모기업이 바뀐 수도권 팀, 그리고 서울 연고의 구단이었다”고 알렸다.
이 관계자는 “이 2개 팀은 고위 관계자들의 경험이 풍부하고 나이가 많아서 회의 때마다 논의를 앞장서서 이끌어간다. 고위 인사가 자주 바뀌는 타 구단들은 끌려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당시 앞장섰던 수도권팀 단장은 지금 다른 팀으로 이적했고, 서울팀 사장도 다른 분으로 바뀌었다. 샐러리캡을 만든 주역들이 지금은 전부 소속팀을 떠났다는 것도, 그 팀들이 이제는 누구보다 샐러리캡이 없어지길 바란다는 것도 아이러니”라고 꼬집었다.
샐러리캡 시행이 다가오자 구단들 사이에서 조금씩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구단은 ‘114억 2638만 원’이란 상한액이 정해진 직후부터 여론전을 폈다. 지난 시즌에도 시즌중 구단 대표이사, 단장들과 사석에서 만날 때마다 ‘샐러리캡 이대로는 문제 있다’는 의견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A구단 최고위 관계자는 “시즌 중에 계속 말이 나왔다. 공식적인 자리는 아니고, 식사 자리 등 비공식적인 데서 ’조정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여론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밝혔다.
B구단 단장은 “샐러리캡 문제는 실행위보다는 대표이사들이 모인 회의에서 더 자주 거론된 것으로 안다. 실행위 얘기만 들어선 이런 부분까지 알기 어려울 것”이라며 “외부에 ‘수정 찬성’으로 알려진 구단 이사들이 실제로는 격하게 반발했다. 캡에 맞춰 지출을 줄인 구단들이다 보니 완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찬반 의견이 워낙 팽팽해서 흐지부지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사회 내용을 잘 아는 야구 관계자는 “샐러리캡 도입에 앞장섰던 수도권 구단이 이번엔 ‘샐러리캡에 문제 있다’고 처음 말을 꺼냈다. 여기에 함께 샐러리캡 도입에 앞장섰던 서울팀도 힘을 실으면서 여론을 바꿔보려고 시도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팀의 경우 외부 영입 대형 FA 선수의 마지막 시즌에 연봉을 몰아주는 구조로 계약한 상태였다. 그래서 당시 대표이사 중에는 ‘애초부터 샐러리캡 폐지를 염두에 뒀던 것 아닌가’ 의심하는 분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반면 단장들 모임인 실행위에서는 다른 서울구단이 총대를 멨다. 앞의 관계자는 “작년 마지막 실행위에서 이 문제 관련 가장 오래 발언한 게 바로 이 서울팀이었다. 그래도 이 팀은 샐러리캡 도입 당시부터 반대 입장이었단 점에서 일관성은 인정할 만하다”고 했다.
종합하면, 3년 전 샐러리캡 도입 논의를 주도한 건 수도권 한 구단과 서울 연고의 모 구단이었다. 그리고 두 구단은 지난해 이사회에서 샐러리캡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180도 달라진- 의견을 냈다. 이후 열린 실행위에선 서울 연고의 또 다른 팀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수도권 팀은 수뇌부 공백으로 앞에 나서기 어려웠고, 다른 서울팀은 한발 물러나서 지켜보는 스탠스를 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