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샐러리캡(연봉상한제)을 둘러싼 KBO리그 구단들의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폐지 혹은 손질을 바라는 쪽과 원칙대로 3년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5대 5 내지 6대 4로 대등하게 맞선 가운데, 내년 1월 열리는 실행위원회(단장회의)와 이사회에서 어떤 결론을 낼지 주목된다.
KBO는 지난 12월 20일 2023년 구단별 연봉 상위 40명의 합계 금액을 발표했다. 산출 결과 10개 구단 모두 샐러리캡 상한 이하로 연봉을 지급해, 상한액을 초과한 구단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절반에 해당하는 5개 구단이 상한액(114억 2,638만 원)에 상당히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산 베어스(111억 8,175만원)를 비롯해 SSG 랜더스(108억 4,647만 원), LG 트윈스(107억 9,750만 원), 롯데 자이언츠(106억 4,667만 원), 삼성 라이온즈(104억 4,073만 원)는 상한액과 차이가 10억 원 이내로 아슬아슬한 수준. 특히 한국시리즈 우승팀 LG는 내년 샐러리캡 돌파가 확실시된다. 그 외에도 최소 1개 팀이 내부 FA 계약 결과에 따라 상한선을 뚫을 것으로 예상한다.
샐러리캡은 지난 2020년 1월 ‘리그 전력 상향 평준화’를 명분으로 10개 구단 이사회가 의결, 2023년부터 시행하는 제도다. 외국인 선수와 신인 선수를 제외한 2021·2022년 각 구단의 연봉 상위 40인 평균 금액의 120%에 해당하는 금액(114억 2,638만 원)을 상한액으로 정했다. 샐러리캡을 초과한 구단은 횟수에 따라 초과액의 50%, 100%, 150%의 벌금을 내야 한다. 2차, 3차 위반 때에는 이듬해 신인 1라운드 지명권이 9단계 하락하는 대가도 따른다.
강력한 억제기의 등장에 당장 올겨울 FA(프리에이전트)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5호 계약자 두산 양석환 이후 6호 계약(LG 임찬규)이 나오기까지 무려 21일이 걸렸다. 대부분 구단은 샐러리캡 부담을 이유로 외부 영입 시장에서 사실상 철수한 상황. 내부 FA 계약에서도 선수 측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조건을 제시해 협상에 난항을 겪는 팀이 많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부 구단에선 시행 1년밖에 안 된 샐러리캡을 다시 논의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처음 정한 상한액을 2023년부터 3년 동안 유지하기로 한 약속을 뒤집자는 얘기다. 몇몇 구단은 비공식적 자리에서 샐러리캡의 폐지 혹은 보완이 필요하다고 장외 여론전을 펼쳤다. 로봇심판과 피치클락을 주로 논의한 지난 14일 부산 실행위에서도 회의 막바지 일부 구단이 샐러리캡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 내용을 잘 아는 야구 관계자는 “샐러리캡은 정식 회의 안건이 아니라 거수 표결까지는 가지 않았다고 한다. 주요 안건을 논의한 뒤 저녁 식사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잠깐 이야기가 나왔고, 그렇게 깊은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모 구단 단장이 가장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고 다른 단장 두 명이 추가로 발언했다”고 전했다.
이날 단장들은 “다음 실행위 때 샐러리캡을 정식 안건으로 논의하자”는 선에서 대화를 마쳤다. 이에 따라 샐러리캡 문제가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열리는 내년 1월 첫 실행위 때 정식 안건으로 올라올 가능성이 생겼다. 몇몇 구단은 실행위를 거쳐 이사회까지 샐러리캡 이슈를 가져가겠다고 벼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샐러리캡의 폐지 혹은 조절을 바라는 구단만큼이나 현행 유지를 주장하는 구단도 많아서, 실제 샐러리캡 제도의 변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우선 샐러리캡 ‘폐지’는 불가능하다는 게 야구계의 중론이다. 취재에 응한 5개 구단이 ‘샐러리캡 제도는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폐지를 바라는 구단조차 폐지 얘기까진 꺼내지 못하고 ’손질이 필요하다‘는 정도로 한발 물러선 이유다.

샐러리캡 손질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구단은 총 5개 구단으로 파악된다. 나머지 5개 팀 가운데 3개 구단은 현행 유지 쪽에 섰다. 이 가운데 키움 히어로즈가 가장 확실한 ‘유지’ 스탠스에 있다. 그 외 2개 팀도 ‘한번 정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면서 원칙론을 주장하고 있다.
샐러리캡 ‘유지파’로 분류되는 A 구단 관계자는 “일부 구단에서 ‘7개 팀이 샐러리캡 손질을 원한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건 그분들의 희망 사항”이라면서 “7개 팀이 될 수가 없다. 당장 실행위만 해도 그날 SSG가 불참해 9개 구단밖에 없었다. 1개 구단에서 앞장서서 열변을 토했고, 그 뒤에 발언한 두 명도 조금씩 입장이 달랐다”고 강조했다.
역시 샐러리캡 유지를 지지하는 B 구단 단장은 “우리 구단은 3년 동안 유지하기로 약속했으면 3년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3년 중의 2년이 지난 시점이라면 그래도 논의해볼 여지가 있지만, 이제 1년밖에 안 된 제도를 다시 손대는 건 반대”라고 분명한 의사를 표현했다.
비슷한 입장인 C구단 단장도 “3년이라는 기간을 정했으니 지키는 게 맞다. 정말 야구 발전을 위해 개선이 꼭 필요한 상황이면 논의를 해볼 수 있겠지만, 일단 중립적인 입장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신중한 생각을 밝혔다.
D 구단 단장은 “구단의 유불리만 따지면 우리 구단은 샐러리캡을 없애자고 해야 하는 쪽일 것”이라면서도 “제도를 만들거나 고칠 땐 리그에 도움이 되는지가 중요하다. 단순히 특정 팀의 유불리만 따져서도 안 되고, 한두 해만 생각해서 정해서도 안 된다. 샐러리캡 제도 하나만이 아니라, 연관된 여러 사안을 신중하게 살펴본 뒤 입장을 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5개 구단이 샐러리캡 폐지 또는 수정 찬성파에 속한다. 3개 팀은 원칙대로 현행 유지를 주장하는 쪽이다. 1개 팀은 유지 쪽에 좀 더 가깝고, 1개 구단이 중립으로 파악된다. 6대 4 혹은 5대 5 팽팽한 대립 구도다. 중립 2표가 모두 찬성으로 돌아서지 않는 한 정관상 가결 요건(“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의 출석과 출석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을 충족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샐러리캡 손질을 찬성하는 쪽에선 “잘못된 결정이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밀어붙이는 게 더 나쁘다”고 주장한다. ‘손질 찬성파’로 분류되는 구단 관계자는 “샐러리캡은 코로나19와 프로야구 위기 등 당시로서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면서 “다소 비난은 받겠지만 감수해야 한다. 야구 발전을 위해 샐러리캡은 손 보는 게 맞다”는 의견을 내놨다.
반면 ‘유지파’쪽 구단에선 “샐러리캡 도입에 앞장섰던 구단들이 이제와서 폐지 혹은 손질 여론 조성에 앞장선다”고 반박한다. B구단 관계자는 “3년 전 샐러리캡 도입은 당시 모기업이 심각한 재정 위기에 처했던 팀, 모그룹이 야구단 운영에 별 의지가 없었던 팀에서 주도했다. 그랬던 팀들이 상황이 달라지자 이제는 샐러리캡 때문에 구단 운영하기 어렵다고 볼멘소리를 한다”면서 “야구 발전은 안중에 없고 자기 구단의 유불리만 중요하다”고 비판했다.
“샐러리캡은 애초부터 도입하면 안 되는 제도였다. 선수들 몸값을 줄이려는 의도에서 만들었고 한국야구 실정에도 맞지 않는다”고 밝힌 야구 관계자는 ”그렇더라도 일단 정한 약속을 1년 만에 헌신짝처럼 뒤집는 구단들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 야구를 모르는 경영진이 와서 임기만 채우고 지나가니 야구계 중대사 결정이 모기업의 요구에 따라 오락가락한다. 이런 여건에선 장기적인 야구 발전을 논하기 어렵다“고 한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