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고척]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선수 어니 뱅크스는 “오늘 날씨 좋은데, 한 게임 더 뛰자구”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2024’ 스페셜게임이 열린 17일 한국 대표팀에도 ‘한 게임 더’ 뛰는 선수가 있다. 정오에는 LA 다저스와, 저녁에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하루 2게임을 치르는 포수 김동헌이다.
김동헌은 17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서울시리즈에서 키움 히어로즈 소속으로 LA 다저스전에 출전했다. 홍원기 키움 감독은 경기 전 취재진과 만나 “류중일 대표팀 감독님께 양해를 구해서 (김동헌이) 2경기에 나가게 됐다. 2경기 뛰는 게 흔치 않은 경험이고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기대를 보냈다.
파드리스 전을 앞두고 대표팀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김동헌을 더그아웃에서 만났다. ‘하루 2경기를 뛰는’ 소감을 묻자 김동헌은 “팀에서 뛸 수 있게 기회를 주셨다. 대단한 선수들과 경기했고 이닝 수도 생각보다 많이 가져갈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다저스전에서 키움은 17피안타로 14실점, 3대 14라는 큰 점수 차로 졌다. 김동헌은 “투수들의 변화구가 스피드도 있고 각이 커서 어려움이 있었다. 수비 입장에선 타자들의 빠른 볼에 대한 반응이 좋다는 게 느껴졌다. 변화구는 처음 보는 투수들이라 어려울 수 있는데 빠른 볼 반응이 굉장히 좋더라. (대표팀 동료에게도) 그 얘길 했다”고 전했다.
이날 다저스 타선에선 무키 베츠, 프레디 프리먼은 물론 야구계 최고의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도 선발 출전했다. 오타니가 등장한 순간 고척돔 안에선 류현진이나 이정후가 나올 때만큼 엄청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오타니가 배트만 휘둘러도 비명이 터졌다. 키움 선수들도 일제히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오타니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오타니의 실물을 본 소감을 묻자 “게임하는 것 같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동헌은 “제가 좋아하는 야구 게임이 있는데, 그 게임이 약간 포수 자리에서 보는 시야와 비슷하다. 게임에서만 보고 TV로만 보던 선수들과 같이 야구할 수 있어서 기쁘고 좋은 경험이었다”고 대답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으로는 프레디 프리먼과 제이슨 헤이워드 타석을 들었다. 그는 “프리먼의 전광판을 때린 타구가 기억에 남는다. 그냥 홈런이라서 기억에 남는 게 아니라, 굉장히 어려운 공이었다. 몸쪽 깊게 들어간 공인데 그렇게 때려냈다”고 떠올렸다. 이어 “헤이워드가 완전히 바깥쪽 빠진 공을 당겨서 좌중간으로 친 것도 인상깊었다”고 덧붙였다.
비록 큰 점수 차로 졌지만 김동헌은 기죽기보다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저년차 선수들이 많이 출전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실제 이날 키움은 손현기, 김윤하, 전준표, 김연주, 이재상, 고영우 등 2024 신인 선수들이 대거 출전했다. 김동헌은 “마운드에서 그 친구들에게 ‘다시는 없을 기회다. 후회 없이 하라’고 얘기했다”고 밝혔다.
이날 김동헌은 타석에서 3타수 1안타 1득점을 기록했다. 경기 내용을 자평해 달라는 말에 “제 생각엔 경기 내용도 괜찮았던 것 같다”면서 “다시 못할 경기라는 생각에 후회 없이 하려고 했다. 그 부분을 잘 한 것 같아서 만족하고 있다”고 고갤 끄덕였다.
키움 투수 가운데 좋은 경기를 한 선수로는 0.2이닝을 무실점으로 던진 주승우를 꼽았다. 이어 “제가 볼을 받진 않았지만 전준표도 괜찮았다. 김윤하도 본인은 조금 아쉬워하긴 했지만, 내 입장에선 괜찮았다고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4이닝 4실점 하고 내려간 선발 아리엘 후라도가 오타니를 두 타석 연속 삼진으로 잡아낸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김동헌은 “최대한 경기 전에 말한 플랜대로 하려고 했다. 그전(메이저리그 시절) 오타니와 몇 번 상대해 봤다고 하던데, 후라도가 굉장히 좋은 피칭을 한 것 같다”고 칭찬했다.
이어 “나라도 다르고 팀도 다르지만 (메이저리거도) 같은 야구를 하는 선수들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해온 부분이 있으니까 그에 대한 리스펙트는 있지만, 야구장 안에서는 ‘대단한 선수’라는 것을 크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김동헌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2개 국제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활약했다. 큰 무대에서 다른 야구를 접하고 돌아온 경험은 올 시즌은 물론 앞으로의 야구 인생에 큰 자양분이 될 전망이다. 류중일 감독도 “그때 대표팀 선수들이 올해 다 야구를 잘할 것”이라며 기대를 보냈다.
이에 관해 김동헌은 “제가 (경기에) 많이 나가진 않았지만, 큰 경기를 하고 나면 시야가 넓어지고 좋아지는 부분이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 때문에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고 의젓하게 말했다.
이번 서울시리즈 경험 역시 큰 성장의 도약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동헌은 “투수 볼 배합에 대해 좀 더 생각하게 될 것 같다. 타석에서 직접 쳐봤으니까 ‘이런 볼이 어렵구나’란 생각을 수비에도 적용할 수 있다. 타석에서도 그걸 생각하면서 공격한다면, 작년보다 좀 더 괜찮은 한 해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빅리그 선수들과의 만남을 통해 ‘큰 꿈’이 생겼을까. 김동헌은 “더 큰 무대에서 잘하는 선수들과 상대해보고 싶은 건 항상 갖고 있던 꿈”이라면서 “그러기 위해선 지금 KBO리그에서 과정을 잘 거쳐야 한다. 우리 팀에 좋은 사례가 있으니까, 그 선배들을 잘 따라가려고 생각한다”고 눈을 빛내며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