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잠실]
‘코리안 몬스터’의 완벽투에 모든 이가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한화 이글스 베테랑 좌완 류현진이 3전 4기 끝에 시즌 첫 승리 및 KBO리그 통산 99승을 거머쥐었다.
한화는 4월 11일 잠실 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을 3대 0으로 승리했다. 이날 선발 투수 류현진은 4.2이닝까진 노히트를 기록하는 등 압도적인 투구 내용을 보였고, 최종 6이닝 94구를 던져 1피안타 2볼넷 8탈삼진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경기 종료 후 최원호 한화 감독이 “류현진이 완벽한 피칭으로 상대 타선을 막아주면서 복귀 첫승과 함께 팀 연패를 끊어줬다”면서 “정말 노련한 피칭이었다”고 칭찬을 거듭 아끼지 않은 까닭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팀 동료들, 나아가 프로 무대 후배들에게도 많은 귀감이 된 경기였다. 특히 경기 뒤 더그아웃에서 만난 데뷔 2년 차 신예 김서현이 승리 인터뷰 중인 류현진을 향해 선망의 눈빛과 함께 “제구도 제구지만, 순간순간 공이 들어가는 로케이션이 모두 다른 게 대단하시다”고 말할 정도였다. 김서현은 최근 1군에서 제구 문제와 맞서 싸우고 있는 이다. 그렇기에 이날 류현진의 투구를 통해 많은 걸 보고 또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심지어 둘 다 일리가 있는 분석이었다. 실제로 이날 류현진은 속구(32구), 체인지업(31구), 커브(19구), 컷패스트볼(12구) 등을 토대로 두산 타선을 노련하게 요리했다. 또 평균 145km/h, 최고 148km/h를 기록한 속구의 경우 71.8%에 육박하는 스트라이크 비율을 자랑할 정도로 좋았다. 변화구를 포함해 전체 투구로 봐도 스트라이크 비율 71.2%다.
그런데 이날 류현진이 유독 크게 신경 쓴 부분은 따로 있었다. 공들인 만큼 결과는 주효했다. 바로 두산 타선 상대로만 헛스윙 9차례, 탈삼진 3개를 끌어낸 ‘체인지업’ 구종 얘기다.
류현진의 달라진 체인지업, 두산전 우타 봉쇄 일등공신

“한국에 돌아온 뒤 체인지업이 말썽이었어요” 경기 뒤 취재진과 만난 류현진의 고백이다.
류현진은 개막 후 3경기에 등판해 0승 2패 평균자책 8.36을 기록하면서 부진에 헤맸다. 해당 기간에만 경기당 평균 7.7안타 및 피안타율은 0.359에 달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9개의 안타를 와르르 내주면서 4.1이닝 9실점 투구에 그친 4월 5일 고척 키움 히어로즈전은 선수 본인에게도 큰 충격을 줬다. 이때를 기억한 류현진은 “그날 하루 동안 충격이 좀 있었다”면서 “다음 경기들을 준비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다”고 밝힌 대목이다.
무엇보다, 5일 키움전은 오랜 시간 류현진을 대표하던 주무기인 체인지업도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던 날이었다. 5회 말 빅이닝의 시작이었던 선두타자 김휘집의 안타부터 끝내 역전을 허용한 김혜성의 적시타, 타자 일순 뒤 다시 타석에 들어선 김휘집의 2타점 쐐기타까지 체인지업이 허용 구종이었던 게 대표적이다.
그전까지 연승가도를 질주 중이었던 한화는 공교롭게 류현진의 시즌 2패째 이후 5연패 늪에 빠지기도 했다. 이에 류현진은 6일여 휴식 기간 내내 절치부심을 품은 채 잠실 등판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전 호텔 사우나에선 박승민 투수코치를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저 때문에 잘못 시작된 연패니까, 제가 끊어내는 게 맞다.”


이어 류현진은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비결로 곧장 ‘개선된’ 체인지업 구종을 손꼽았다. 2006년 프로 데뷔 후 어느새 19년 차 베테랑이 된 류현진이다. 그간 던져온 세월을 믿기 때문이었을까. 체인지업의 그립 자제를 바꾸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대신 투구 디테일에 변화를 줬다. 이를 두고 류현진은 “한국에 와서 체인지업이 말썽이었는데, 평소와 다르게 팔 스윙을 빠르게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야구통계사이트 ‘베이스볼서번트’에 따르면 지난해 메이저리그(MLB)에서 류현진이 던진 체인지업은 11경기 동안 22.8% 구사율로 던져 평균 78.1마일(125.7km/h), 최고 81.0마일(130.4km/h)을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11일 두산전은 여느 때와 달랐다. 이날 체인지업(31구)을 속구(32구) 다음으로 많이 던진 가운데 투구 비중은 무려 33.0%에 달했다. 또 볼 스피드도 훨씬 빨라졌다. 평균 132km/h, 최고 136km/h까지 나왔고, 가장 느린 체인지업의 경우 128km/h를 기록했을 정도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다른 이름의 투수가 마운드 위에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팔 스윙에 변화를 주면서 볼 스피드도 빨라졌습니다. 또 던지는 각도를 속구와 비슷하게 한 게 시너지를 내면서 더 많은 헛스윙과 범타를 유도할 수 있었죠.” 류현진의 설명이다.


많은 변화구 중에서도 유독 체인지업은 ‘터널링’이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구종이다. 터널 구간이 길수록 타자가 스윙 여부를 결정하는 시간이 지체되고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투수는 우위를 가져간다. 그런 의미에서 볼 스피드 차이가 적당히 있는 체인지업은 속구와 좋은 케미를 자랑하는 사이다.
류현진의 경우도 MLB에서 속구와 체인지업의 궁합이 좋았던 이유가 비슷한 릴리즈 포인트를 활용해 일정한 궤적에서 나오는 차이가 큰 시너지를 냈기 때문이다. 이번 등판에선 그런 모습을 되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각에선 제기된 몸 상태 및 컨디션 문제엔 선을 그은 류현진이다. 지난 3차례 등판에서 70구 이후 투구 내용이 좋지 않았기에 체력과 관련해 물음표가 붙기도 했다. 이에 류현진은 “몸 상태는 개막 때부터 지금까지 문제가 없다”면서 “몸이나 구위보다도, 오히려 제구가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부분을 더 신경 썼고, 오늘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했다.
좋아진 체인지업의 위력도 로케이션의 힘이 컸다. 류현진의 체인지업이 스트라이크 존 상단 가운데로 몰리고, 오른손 타자 바깥쪽으로 미묘하게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대량실점의 원인으로 지적된 게 불과 6일 전 키움전이었다. 그때의 체인지업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마침내 빅리그를 호령하던 괴물 투수의 ‘필살기’가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류현진은 오는 17일 창원 원정길에서 NC 다이노스 상대로 KBO리그 무대 100번째 승리에 도전할 전망이다. NC는 지난해부터 좌완 투수에 맞서 계속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팀이기도 하다. 다만 ‘마구’ 체인지업의 위력을 되찾기 시작한 류현진이라면 얘기가 또 다를지 모른다. 돌아온 코리안 몬스터의 다음 등판을 향해 벌써부터 많은 이목이 쏠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