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수원]
KT 위즈 좌완 에이스 웨스 벤자민이 달라진 모습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개막 초 부진을 잊게 하는 두 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QS)가 그 방증이다.
KT는 4월 12일 홈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열린 SSG 랜더스전을 8대 3으로 이겼다. 이날 KT의 승리엔 마운드를 지킨 벤자민의 역할이 컸다. 그도 그럴 게 팀 최다 홈런(23개)을 자랑 중인 SSG 강타선을 6이닝 동안 93구를 던져 4피안타(1피홈런) 2볼넷 6탈삼진 2실점(1자책)으로 봉쇄했기 때문이다.
특히 평소와 다른 투구가 이목을 끌었다. 당초 벤자민은 속구의 비중이 50%를 넘지 않는 유형이다. 대신 컷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높은 빈도로 활용해 타자들의 범타, 헛스윙을 끌어내는 게 전매특허다. 그런데 12일 SSG전만큼은 ‘속구파’ 파워피처로 변신한 벤자민이다.


야구통계사이트 ‘스포키-스탯티즈’에 따르면, 앞선 3차례 등판에서 벤자민은 모두 50% 이하로 속구 비중을 가져간 바 있다. 이번 SSG전은 속구(62구), 슬라이더(15구), 컷패스트볼(13구), 커브(2구), 체인지업(1구) 등을 던진 가운데 최고 150km/h까지 나온 속구 비중의 경우 66.7%에 달했다. 물론 효과도 좋았다. 속구를 앞세운 공격적 투구에 SSG 타선은 허를 찔린 듯 대응했고, 배트를 내지 못한 채 스트라이크를 번번이 내주는 장면이 속출했다.
이로써, 벤자민은 개막 첫 두 경기 부진(8이닝 평균자책 16.88)을 뒤로 하고 지난 6일 잠실 LG 트윈스전부터 두 차례 등판 모두 QS 달성에 성공했다. 또 최근 12이닝 2자책 활약 덕분에 시즌 평균자책을 7.65로 대폭 낮출 수 있었다. 경기 후 벤자민은 “어렵게 거둔 첫 승리였지만, 무엇보다 팀이 승리해서 기분이 좋다”면서 “오늘 승리로 팀 분위기가 점점 더 좋아지길 바란다”고 경기 소감을 밝혔다.
또한 벤자민은 부진을 딛고 달라진 비결로 ‘팔 각도 수정’을 손꼽았다. 이날 속구 비중을 높인 것도 팔 각도가 올라간 영향이 있었던 것. 벤자민은 “최근 팔 높이를 올린 게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된 것 같다”면서 “모든 구종이 그렇지만, 오늘 속구가 더 그랬다. 작년(2023년) 시즌 후반에도 팔 각도를 수정하고 경기력이 좋아졌던 기억이 떠오른다”고 설명했다.
이날 현장에서 방송 중계를 맡은 이동현 SPOTV 해설위원은 지난 3월 31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 벤자민의 투구를 본 뒤 “낮아진 팔 각도로 인해 공의 위력이 줄어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KT와 벤자민 역시 그런 부분을 인지하고 있었고, 한 달이 채 지나질 않아 수정 및 보완을 마친 것으로 풀이된다. 향후 더 좋아질 벤자민의 모습이 기대되는 까닭이다.

한편 올 시즌 벤자민만큼이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불펜진도 마찬가지다. KT 불펜은 개막 후 18경기에서 평균자책 7.65로 10개 구단 가운데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다. 9위인 롯데(4.99)와도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시즌 초부터 선발투수들이 다소 이른 시점에 마운드를 내려오는 등 피로도와 중압감이 많았던 것도 그 원인 중 하나로 손꼽힌다.
12일 SSG전에선 벤자민이 내려온 뒤엔 이상동(1이닝 1실점)-김민수(1이닝 무실점)-이채호(1이닝 무실점)로 이어지는 불펜이 KT와 벤자민의 승리를 지켰다. 이를 두고 이강철 KT 감독은 “선발 벤자민이 좋은 컨디션으로 스타트를 잘 끊었고, 위기 상황에서 불펜이 잘 이겨내며 승리할 수 있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중간 투수들의 컨디션이 올라오고 있어서 고무적”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벤자민 역시 그런 불펜을 향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심지어 ‘마음의 짐이 있다’고 말할 정도. 이와 관련해 벤자민은 “오늘(12일) 내 투구에 점수를 매긴다면 75점”이라면서 “1회, 6회에 안 좋은 투구가 나와 아쉽고, 불펜 투수에게 부담감을 준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그래도 결국 팀이 승리할 수 있어 다행이고 만족스럽다.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동료들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전했다.
개막 후 5승 13패(승률 0.278)로 리그 9위에 위치한 KT는 잇따른 악재를 마주하고 있다. 반등을 위해 갈 길이 먼데, 투·타 핵심 선수들마저 부상으로 전력에서 잠시 이탈하는 일까지 겹쳤다. 그러나 12일 SSG전은 선수들이 팬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타자들이 출루할 때마다 다음 베이스를 향해 거침없이 달렸고, 벤자민을 비롯한 투수들은 그 어떤 위기에도 포기하지 않고 마운드를 지켰다. ‘달라진’ 벤자민, 그리고 ‘달라진’ 마법사 군단을 기대해도 좋을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