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FIFA가 사우디아라비아를 2034년 월드컵 개최국으로 최종 확정하면서, 국제기구의 도덕성과 책임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FIFA는 '역대 최고 평가'라는 찬사를 보내며 개최 결정을 정당화했지만, 인권단체들은 "중대한 인권침해를 은폐하는 명백한 실패"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FIFA는 12일(한국시간) 온라인 특별총회에서 211개 회원국 투표를 통해 사우디의 월드컵 단독 개최를 승인했다. 노르웨이만이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FIFA는 평가보고서에서 사우디의 유치 계획에 5점 만점에 4.2점이라는 최고 점수를 부여하며, "다음 세기를 위한 혁신적 비전"이라고 극찬했다.
국제앰네스티는 "FIFA의 평가는 사우디의 참혹한 인권 현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충격적인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스티브 콕번 국제앰네스티 노동권·스포츠 담당 책임자는 "노동자 착취, 차별, 정치적 탄압을 방지할 어떠한 실질적 조치도 없다"고 지적했다.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사우디의 이주노동자 1340만 명(전체 인구의 42%)이 심각한 인권침해에 노출돼 있다. 올해 1~7월에만 884명의 방글라데시 노동자가 사망했으며, 80%가 '자연사'로 기록됐다. 마이클 페이지 휴먼라이츠워치 중동 부국장은 "법적 구속력 있는 인권 보장 없는 월드컵 개최는 상상할 수 없는 인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FIFA는 2016년 존 러기 교수의 보고서를 근거로 "일반적 인권 상황이 아닌 대회 관련 인권 위험 대처 계획만을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1개 주요 인권단체는 사우디가 제출한 '독립 인권평가 보고서'가 "심각하게 결함이 있다"고 반박했다.
노르웨이축구협회는 공식 서한을 통해 "2030년, 2034년 월드컵 유치 과정이 FIFA의 2016년 개혁 원칙에 위배된다"며 "투명성과 공정성이 결여됐다"고 비판했다.
여성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사우디의 여성 후견인 제도도 문제다. 2018년 여성 운전 금지는 해제됐지만, 여성인권 운동가들을 향한 탄압은 더 심해졌다. 루자인 알하틀룰이 "국가 안정 위협" 혐의로 체포됐고, 그의 자매 리나는 인권단체 ALQST를 통해 사우디의 인권 상황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환경 문제도 심각하다. 분석기관 LINGO는 사우디의 석유·가스 프로젝트로 4300만 명의 사망자와 800억 달러(104조원)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FIFA가 2030년까지 배출량 50% 감축, 2040년까지 넷제로 달성을 약속했음에도 이를 평가에서 제외했다.
전문가들은 사우디의 월드컵 유치가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의 '비전 2030' 프로젝트의 일환이자 전형적인 '스포츠워싱'이라고 지적한다.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 등 인권침해 논란을 희석시키려는 시도라는 분석이다.
FIFA는 이미 1934년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1978년 군사독재 시절의 아르헨티나, 2018년 푸틴의 러시아,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통해 반인권 국가들의 개최를 지속적으로 허용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2019년 푸틴으로부터 '러시아 우호훈장'을 받았으며,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는 "나는 카타르인이며, 아랍인이고, 아프리카인이다"라며 개최국의 인권 문제를 정당화해 국제적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FIFA의 행보는 인권과 윤리를 강조하는 자체 개혁안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11개의 신규 경기장 건설이 예정된 가운데, 노동자 인권과 환경 파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FIFA는 구체적인 감독 방안이나 제재 수단을 제시하지 않은 채 사우디의 "자발적 개선 의지"만을 강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