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지아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유착 관계를 노골적으로 강화하며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성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인판티노 회장은 지난 28일(현지시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열린 국제축구평의회(IFAB) 총회에 참석해 트럼프 대통령과의 밀착 행보를 방어하며 "월드컵의 성공을 위해 개최국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인판티노와 트럼프의 관계는 최근 몇 주간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인판티노는 지난 1월 트럼프의 취임식에 깜짝 손님으로 참석했으며, 트럼프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복제 월드컵 트로피를 배경으로 두는 정치적 제스처를 보였다. 트럼프는 여러 공개 석상에서 인판티노를 "조니"라 부르며 "축구의 왕"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러한 정치적 편향성은 인판티노 회장이 과거 월드컵 개최국 지도자들과 맺은 관계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 문제점이다. 54세 스위스 출신의 이 축구 행정가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카타르의 타밈 빈 하마드 알 타니 국왕과도 비슷한 유착 관계를 구축했다. 반면 트럼프의 전임자인 조 바이든과는 거의 관계를 맺지 않았던 점은 그의 정치적 성향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특히 우려되는 점은 인판티노가 트럼프의 정치적 논란을 묵인하거나 심지어 옹호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주 마이애미 연설에서 트럼프가 러시아의 침략 피해국인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난했음에도 인판티노는 트럼프가 "평화와 단결"의 메시지를 전파한다며 찬사를 보냈다.
이러한 노골적인 정치 개입은 국제 스포츠계의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트럼프가 월드컵 공동 개최국인 캐나다와 멕시코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고, 멕시코 이민자들에 대한 부정적 발언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인판티노의 편향적 행보는 월드컵 자체의 공정성과 포용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축구계 내부에서도 인판티노 회장이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보다 현명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FIFA의 핵심 가치인 '다양성, 형평성 및 포용성(DEI)'이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정책적으로 배제되고 있음에도, 인판티노 회장은 이에 대한 언급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인판티노 회장은 논란이 된 사우디아라비아의 2034년 월드컵 개최권 획득에 대해서도 "전체 세계를 통합하는 총회 결정"이라며 옹호했다. 인권 단체들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스포츠 워싱" 시도를 강하게 비판하고, 단독 입찰로 진행된 과정에 대한 우려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를 "축구에 매우 긍정적인 발걸음"이라고 평가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인판티노 회장이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FIFA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의 축구계 복귀 가능성까지 시사했다는 점이다. 그는 "우리는 모든 국가가 경기하기를 원한다"며 러시아의 제재 해제에 호의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FIFA와 같은 국제 스포츠 기구의 정치적 중립성은 글로벌 스포츠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가치다. 그러나 인판티노 회장의 일련의 행보는 이러한 근본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월드컵의 성공"이라는 명목 하에 정당화되는 그의 정치적 편향성은 궁극적으로 축구라는 세계적 스포츠의 보편성과 통합성을 위협하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
국제 축구계는 인판티노 회장이 특정 정치 세력과의 유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단기적 이익보다, FIFA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근본 가치를 수호하는 책임감 있는 행보를 보여줄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