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 딘(사진=LG)
오스틴 딘(사진=LG)

 

[스포츠춘추]

리그에서 가장 홈런치기 힘든 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소총부대가 하루아침에 최강의 대포군단으로 변신했다. 창단 이래 전통적으로 홈런과는 거리가 멀었던 LG 트윈스가 올 시즌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29일 잠실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전에서 LG는 0대 1로 뒤진 6회말 문보경의 시즌 12호 홈런으로 동점을 만든 뒤 역전에 성공해 3대 1 승리를 거뒀다. 큰 것 한 방으로 분위기를 바꾸는 흐름은 올 시즌 LG 경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패턴이다. 이전 LG 야구에서는 거의 보기 어려웠던 모습이기도 하다.

30일 현재 LG는 팀 홈런 62개로 KBO리그 역대 최다 홈런팀 삼성(61개)을 제치고 리그 1위로 올라섰다. 홈런 개인 랭킹에서도 1위 삼성 르윈 디아즈(21홈런)에 이어 2위 오스틴 딘(16개), 3위 박동원(13개), 4위 문보경(12개)까지 2~4위를 LG가 독식하고 있다.

MBC 청룡 시절부터 오랫동안 LG 야구를 응원해온 팬들에게는 생소한 광경이다. LG는 전통적으로 홈런과는 거리가 먼 팀이었다. 2024년까지 LG의 역대 누적 홈런은 3807개로 원년 팀 중 최소다. 1986년 창단한 한화 이글스(4385개)보다도 적고, 2000년 창단한 SSG 랜더스(3479개)와도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지금까지 팀 홈런 1위를 기록한 시즌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난 시즌에는 115홈런으로 10개 팀 중 9위에 그쳤고, 거의 전 부문을 휩쓸었던 2003년 통합 우승 시즌에도 93홈런으로 홈런은 전체 6위였다. 통산 홈런 랭킹 30위 안에 LG 프랜차이즈 선수는 30위 박용택(213홈런)이 유일할 정도다. 그 박용택도 오랜 기간 뛰어서 30위에 오른 것이지 홈런을 치는 타자는 아니었다.

LG 선수가 시즌 30홈런을 기록한 것도 단 3차례뿐이다. 2020년 로베르토 라모스 38홈런, 2024년 오스틴 32홈런, 1999년 이병규 30홈런이 전부다. 40홈런 타자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고, 국내 선수로는 이병규가 유일하게 30홈런을 기록했다.

그랬던 LG에서 올 시즌에는 30홈런 타자가 한꺼번에 3명 나올 분위기다. 현재 성적을 144경기로 환산하면 오스틴 42홈런, 박동원 34홈런, 문보경 31홈런 페이스다. 팀 사상 거의 없었던 30홈런 타자가 2명 이상 나오는 건 물론 40홈런 타자도 탄생할 수 있다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3점 홈런을 날린 박동원(사진=LG)
3점 홈런을 날린 박동원(사진=LG)

더 놀라운 건 LG가 리그 최악의 홈런 환경에서 최고의 홈런 공장을 제압하고 있다는 점이다. LG의 홈구장 잠실야구장은 올 시즌 홈런팩터 779로 사직야구장(701) 다음으로 홈런이 적게 나오는 구장 2위다. 다년간 데이터로 보정한 홈런팩터는 809로 전 구장 중 가장 홈런이 적게 나오는 야구장이라고 봐야 한다.

홈런에 너무 목마른 나머지 2009년과 2010년에는 잠실 홈경기 때 홈런 생산을 목적으로 외야 그라운드의 원래 펜스 앞에 간이 펜스, 이른바 '재박존'을 설치하기도 했다. 당시 사령탑 김재박 감독의 제안으로 시행된 이 기괴한 시설물은 별 효과는 보지 못하고 놀림감만 되다가 2011시즌을 앞두고 철거됐다.

이처럼 홈런치기 힘든 잠실과 달리 삼성의 홈구장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는 메이저리그로 치면 쿠어스필드에 해당하는, 최고의 홈런 공장이다. 올 시즌 홈런팩터 1992로 1위, 다년간 데이터 반영 홈런팩터도 1414로 단연 1위다. 

최적의 홈런 환경을 가진 삼성보다 최악의 홈런구장을 쓰는 LG가 더 많은 홈런을 때려내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올해 LG는 잠실 홈경기에서 33홈런을 기록했다. 한지붕 라이벌 두산 홈경기로 열린 잠실 원정 2홈런을 포함하면 잠실에서만 35홈런을 때려냈다. 원정 27홈런보다 오히려 홈에서 더 많은 홈런을 생산하고 있다.

잠실 경기에서 리그 전체 타석당 홈런이 56.54개인 반면 LG는 33.91개를 기록 중이다. LG를 제외한 타 구단의 잠실 경기 타석당 홈런은 75.40개로, LG는 홈에서 다른 팀의 두 배 가량 많은 비율로 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개별 선수들을 보면 박동원이 홈에서 10홈런, 원정에서 3홈런을 기록했고, 문보경도 홈에서 9홈런, 원정에서 3홈런을 쳤다. 오스틴만 홈에서 4홈런, 원정에서 12홈런으로 반대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른 팀 선수들은 홈런 꿈도 못 꾸는 넓은 잠실야구장에서 홈런을 펑펑 치는 LG다.

홈런이 늘면 삼진이 늘어난다는 일반적인 상식도 LG에는 통하지 않는다. LG의 올 시즌 삼진률은 18.3%로 리그 최소 3위에 해당하고, 컨택률도 81.3%로 전체 3위다. 팀 타율도 0.265로 전체 3위를 기록하면서 이론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파워와 정확성을 전부 잡는 데 성공했다.

리그에서 가장 홈런치기 힘든 구장을 홈으로 쓰는 팀이 가장 많은 홈런을 때려내고 있다. 한때 소총부대였던 팀이 어느새 대포군단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전통적으로 컨택 위주의 야구를 구사했던 LG가 파워와 컨택을 모두 잡으며 새로운 전성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통계출처=스탯티즈(www.stat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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