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두산베어스가 새로운 출발점 앞에 섰다. '국민타자' 이승엽 감독이 자진 사퇴하고, 오래전부터 차기 감독감으로 기대를 모았던 조성환 코치가 대행을 맡은 가운데 남은 시즌 대반전을 노린다.
6월 2일 현재 두산의 성적은 비참하다. 58경기 23승 3무 32패 승률 0.418로 9위까지 추락해 있다. 8위 NC와 3경기차, 5위 KT와는 6.5경기차로 벌어진 상황이다. 5월 31일과 6월 1일 최하위 키움 히어로즈를 상대로 이틀 연속 0대 1로 패배하며 루징시리즈를 기록한 것이 이승엽 감독 사퇴의 마지막 트리거를 당겼다.
하지만 두산이 지금처럼 9위를 할 전력은 아니다. 멤버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좋지 못한 성적을 내고 있는 게 미스터리다. 류선규 전 SSG 단장의 저서 '야구X수학'에 따르면 올시즌 두산 선수단 WAR(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 상위 30명의 합계는 49.61승으로 삼성, LG, KIA에 이은 전체 4위였다. 상위 40명 합계도 49.46승으로 역시 4위다. 선수 구성만 보면 적어도 4위는 하고 있어야 할 전력이라는 얘기다.
피타고라스 기대승률로 봐도 마찬가지다. 두산의 기대승률은 0.484인데 실제 승률은 0.418로, 득실점으로 나타나는 팀 전력만 봐선 5할에 가까운 승률을 거두고 있어야 한다. 팀 OPS 0.708로 6위, 팀 평균자책도 4.12로 6위인 팀이 실제로는 9위를 하고 있다는 건 가진 전력의 합을 현장에서 승리로 바꾸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다.
올시즌 두산은 도깨비 팀이다. 한창 12연승을 달리던 한화의 연승을 끊은 팀이 두산이다. 내친 김에 대전 원정 3연전을 싹쓸이했다. 단독 선두 팀 LG와 3연전에서도 예상을 깨고 2승을 거뒀다. 정말 형편없는 전력이면 불가능한 결과다. 그런 팀이 남들은 다 3승 내지 2승 1패가 기본인 최하위 상대로는 루징시리즈를 기록했다. 경기력이 꾸준하지 못하고 팀이 불안정하다는 인상을 준다.
'멤버는 좋다'는 말은 앞으로 더 올라갈 여지가 충분하다는 의미도 된다. 외국인 투수 듀오, 마무리 투수, 불펜 에이스 등 투수진의 경쟁력은 다른 팀에 뒤지지 않는다. 타선도 김재환, 강승호, 양석환 등 시즌 초반 죽을 쑨 주축 타자들이 살아나서 제몫을 해준다면 상대에게 충분한 위협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 선발과 불펜에 천군만마가 가세할 예정이다. 부상으로 시즌 초반 자리를 비웠던 토종 에이스 곽빈과 핵심 불펜 홍건희가 연습경기에서 무난한 피칭으로 1군 복귀에 청신호를 켰다. 두 선수 모두 6월 초 1군 복귀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3선발과 불펜 에이스가 가세하면 그때부터는 해볼 만하다.
전문가들도 두산을 올라갈 팀이라고 평가한다. 이택근 SBS 스포츠 해설위원은 "두산은 앞으로 시즌을 치르면서 올라갈 여력이 충분한 팀"이라며 "에이스 곽빈이 돌아오고 불펜투수 홍건희가 돌아오면 기회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류선규 전 단장도 "순위표가 4위부터 9위까지는 혼전 양상이다. 앞의 팀들이 아주 멀리 있는 건 아니라서 충분히 해볼 만하다. 부상 선수들이 돌아오는 5월 말이 승부처"라고 분석했다.

조성환 감독대행으로선 그간 야구계로부터 들었던 '차기 감독감' 평가를 입증할 절호의 기회다. 롯데 자이언츠 출신으로 1999년부터 2014년까지 간판 스타로 활약한 조성환은 이전부터 여러 구단에서 감독 후보로 거론되며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코치로서 지도력이 뛰어나고 선수단과 관계를 잘 형성하며, 스마트하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준비된 감독'이란 평도 있다.
올시즌 두산은 좋은 구슬을 갖고도 제대로 꿰지 못한다는 느낌을 주는 경기가 많았다. 사령탑 교체가 이런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조성환 감독대행도 정식 감독으로 임명되려면 남은 시즌 역량을 보여줘야 하는 만큼 동기부여는 충분하다. 팀이 바닥을 쳤을 때 지휘봉을 잡은 만큼 앞으로 올라갈 일만 남은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이런 바람이 이뤄지려면, 감독대행이 눈치보지 않고 소신껏 야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지난 3월 두산베어스 구단주 박정원 회장은 일본 미야자키 스프링캠프를 방문했을 때 "4위, 5위 하려고 야구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한 메시지를 전했다. 경쟁 구단 관계자는 "현장에 상당히 부담을 주는 말인데, 구단에서 그 말을 외부에 대대적으로 널리 알린 게 상당히 의외였다"고 했다.
최근 야구계에선 두산 구단 최고위층의 간섭이 예전보다 지나치다는 지적이 많았다. 두산 사정에 밝은 야구인은 "전임 전풍 사장 시절까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작년 부임한 새 대표이사는 과할 정도로 의욕적"이라고 평가했다. 구단주의 측근으로 알려진 새 대표이사가 부임하자마자 팀의 여러 영역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구단 안팎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두산 출신 야구 원로는 "야구를 모르는 경영자가 너무 나서면 팀이 산으로 간다"며 "감독의 영역이나 경기 운영에 대해 구단 내에서 여러 소음이 많다 보니 이승엽 감독으로선 괴로웠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원로는 "구단 고위층이 현장에 불필요한 간섭은 자제하고 감독이 소신껏 야구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조언은 조성환 대행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