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12년 전 경북고 마운드를 빛냈던 형제가 다시 뭉쳤다. 투수 박세진이 6월 2일 KT 위즈에서 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됐다. 롯데는 외야수 이정훈을 KT로 보내고 좌완 투수 박세진을 영입했다. 롯데 에이스 박세웅의 친동생이 12년 만에 형과 같은 롯데 유니폼을 입게 됐다.
"처음 트레이드를 통보받았을 때는 좀 싱숭생숭한 마음이었어요." 2일 오후 스포츠춘추와 연락이 닿은 박세진은 "휴식일이라 친구들과 밥을 먹다가 연락을 받았다"면서 "전혀 예상 못한 소식이라 기분이 묘했다"라고 당시 심경을 털어놨다.
프로 데뷔 때부터 뛴 KT를 떠나는 아쉬움과 함께, 형과 함께 뛸 수 있다는 반가움이 교차했다. 박세진은 "형이 올시즌 너무 잘하고 있으니까, 롯데에서 형과 함께 뛰면 더 좋은 시너지가 발휘되지 않을까 기대를 해 본다"라고 말했다.
1997년생 박세진과 1995년생 박세웅은 두 살 터울 형제지간이다. 아주 어릴 적부터 함께 캐치볼하며 놀던 형제는 중학교(경운중)와 고등학교(경북고)를 함께 다니면서 대구경북지역 최고의 투수 유망주 형제로 이름을 날렸다.
우완투수인 형이 힘 있는 속구와 슬라이더로 긴 이닝을 책임지는 완투형 투수였다면, 동생은 제구력과 다양한 구종을 바탕으로 경기운영 능력이 장점인 기교파였다. 당시 목동야구장에서 만난 한 스카우트는 박세진을 향해 "게임을 할 줄 아는 투수다. 나이는 1학년인데 3학년처럼 던진다"며 "나중에 형보다 더 좋은 투수가 될 수도 있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형제가 마지막으로 함께 뛴 것은 박세웅이 3학년, 박세진이 1학년 때인 2013년이었다. 이후 형은 KT 위즈 창단 첫 1차 지명으로 프로에 입단했고, 박세진은 2년 뒤 2016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으로 KT에 입단했다.
다만 형제가 같은 KT 유니폼을 입고 뛸 기회는 없었다. 박세진이 입단하기 1년 전인 2015년 초, KT와 롯데 간 선수 9명이 오가는 초대형 트레이드로 박세웅의 롯데행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박세진이 프로에 입단했을 때 형은 이미 롯데에서 차세대 선발 유망주로 자리잡은 뒤였다.

비록 소속팀은 달라도 형제의 우애엔 변함이 없었다. 올시즌을 앞두고도 박세진은 형 박세웅과 함께 훈련했다. 겨울에는 미국 시애틀의 드라이브라인까지 함께 다녀올 정도로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프로 입단 때만 해도 130km/h대 느린 구속으로 애를 먹었던 박세진은 형과 함께 훈련한 뒤 최고구속은 물론 평균구속까지 빨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에는 구속이 145km/h까지도 나온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 평균구속이 크게 떨어지곤 했는데, 이제는 컨디션에 관계없이 평균구속이 유지된다"고 했다.
"함께 미국도 다녀오고, 같이 캐치볼을 하면서 형이 해주는 여러 조언을 받아들였습니다. 투구폼이 전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정립된 느낌이에요. 드라이브라인에서는 구속 향상 외에도 피치 디자인 등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요." 박세진의 말이다.
박세진은 올시즌 퓨처스리그에서 22경기 23.2이닝 1승 1패 2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 3.04를 기록 중이다. 비록 KT 1군 마운드의 높은 벽 때문에 아직 1군 등판 기회는 얻지 못했지만, 언제든 부름을 받으면 올라갈 준비는 돼 있다고 했다. 박세진은 "5월부터 투구 밸런스가 조금씩 다시 돌아오고 있다. 작년보다 훨씬 좋은 밸런스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KT에서는 1군 벽을 뚫기 어려웠지만 롯데라면 사정이 다를 수 있다. 롯데는 시즌 초반 3위를 달리고 있지만 불펜진 과부하로 마운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일 현재 2연투 78회로 리그 최다, 3연투 13회로 최다, 멀티이닝 53회로 최다를 기록하며 주축 불펜투수들이 한계에 가까워진 상황이다. 불펜에 투입할 새로운 카드가 필요했던 롯데가 박세진을 영입한 배경이다.
롯데에서 많은 등판 기회가 주어질 것 같다는 질문에 박세진은 '대환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많이 던지는 건 전혀 상관없습니다. 감독님이 나가라고 하시면 언제든 나갈 준비가 돼 있어요. 자주 올라가서 던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아요."
무엇보다 형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함께 야구할 수 있다는 게 반갑다. 트레이드 통보를 받은 뒤 박세진은 형에게 전화를 걸어 알렸다. "제가 먼저 전화했어요. '형, 나 트레이드 됐어' 하니까 '어, 알고 있었어'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무뚝뚝한 경상도 장남, 박세웅다운 반응이 돌아왔다. 그러면서도 이내 "부산에 오면 내 집으로 들어와"라며 동생의 걱정을 덜어줬다고 했다.
박세진은 "당분간 형과 함께 지내게 될 것 같다"면서 "형과 함께 살면 야구 얘기도 많이 나누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 생기면 서로 얘기하면서 풀 수 있다. 그래서 좋다"는 말로 부산 생활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롯데 팬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박세웅이 선발로 던지고 박세진이 불펜으로 이어 던지는 '형제 계투'에 대한 기대가 높다. 이 질문에 박세진은 "솔직히 나도 그런 상상을 해봤다"고 털어놨다. "어렸을 때부터 했던 상상이에요. 단지 제 상상 속에서는 제가 선발투수로 나가고, 형이 뒤에서 등판하는 그림이었는데...이제는 제가 형의 뒤에서 열심히 던져야죠."
만약 형의 승리가 걸린 중요한 상황에서 마운드를 이어받는다면, 어떤 마음일까. "아마도 형이 던진 다음에 투수로 올라가면, 다른 투수 다음에 던지는 것보다는 좀 더 긴장감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래도 잘 막아야죠." 박세진이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박세진은 롯데에서 팀의 상위권 싸움에 도움이 되는 투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요즘 롯데가 워낙 잘하고 있잖아요. 제가 가면 확실히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돼야죠. 팀의 순위 싸움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박세진의 다짐이다.
KT 팬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박세진은 "입단 때부터 KT에 오래 있었는데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지 못했다. 1차 지명이라 기대를 많이 하셨을 텐데, 그 기대만큼 기량을 보여드리지 못하고 떠나게 돼서 죄송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경북고를 고교 정상급 마운드로 이끌었던 형제가 긴 시간을 넘어 12년 만에 롯데에서 다시 만났다. 형이 선발 마운드에서 역투하고 동생이 중요한 순간 등판해 승리를 지키는 장면. 그 감동적인 장면이 정규시즌은 물론 포스트시즌에서도 펼쳐지는 순간을 롯데 팬들도, 박세웅-박세진 형제도 그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