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도쿄돔 APBC 결승전을 앞둔 한국 야구대표팀 선수단 모습(사진=KBO SNS 캡쳐)
19일 도쿄돔 APBC 결승전을 앞둔 한국 야구대표팀 선수단 모습(사진=KBO SNS 캡쳐)

 

[스포츠춘추]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1989년 영화 '꿈의 구장'에는 "야구장을 지어라, 그러면 그가 올 것"이라는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이를 KBO리그에 적용하면 "돔구장을 지어라, 그러면 야구단이 올 것"이라고 바꿀 수 있다.

KBO리그가 지난해 프로스포츠 최초 1000만 관중 시대를 열면서 인기가 치솟자,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새 구단 창단 또는 유치 경쟁에 나서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NC 다이노스가 '연고지 이전'을 선언하면서 예기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야구단 유치를 꿈꾸는 지자체들에게는 뜻밖의 기회가 열린 셈이다.

창원과 결별 수순 밟는 NC 다이노스

울산이 발표한 야구장 조감도(사진=울산시)
울산이 발표한 야구장 조감도(사진=울산시)

NC와 창원시의 관계는 사실상 회복하기 어려운 단계에 도달했다. 지난 3월 29일 창원NC파크에서 발생한 관중 사망사고 이후 창원시가 보인 무책임한 태도가 결정타였다. 창단 이후부터 숱한 약속 위반으로 신뢰가 바닥났던 NC가 결정적으로 마음을 돌아선 계기가 됐다.

NC는 창원 복귀전이 열린 날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하겠다"며 연고지 이전도 검토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NC의 선언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엄포가 아닌 진심이다. 이미 KBO와도 상당 부분 교감을 나눴고, 엔씨소프트 본사의 재가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진만 NC 대표이사는 "KBO와 고민을 함께하고 있다"면서 "KBO에서는 전부터 연고지 대안이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고, 지금도 우리에게 현실적인 대안이 있다고 해주셨다"고 시사했다. NC는 연고지 이전에 필요한 법적, 경제적 검토도 이미 마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구장 사용료(330억원)를 선납한 비용을 환수할 수 있는 부분은 고민하겠다"면서도 "선납 비용 때문에 미래 의사 결정이 영향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창원시에 전한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창원시가 고자세로 나오면 NC가 결단을 내릴 것이 확실시된다. 한 NC 관계자는 "우리도 이제 더는 아쉬울 게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결정권자가 없는 창원시로서는 NC의 요구에 대응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연고지 이전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지만 현재 펼쳐진 상황은 NC에게 유리하다. 과거에는 KBO 인기가 지금처럼 높지 않았고 창단을 원하는 지자체도 없어서 연고지 이전의 현실성이 낮았다. 그러나 지금은 프로야구가 2년 연속 1000만 관중을 바라보는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매김한 상황이다. 야구단을 원하는 지자체도 최소 5곳에 달한다.

야구단 창단 원하는 지자체 최소 5곳

성남시가 공개한 야구장 계획 조감도(사진=성남시)
성남시가 공개한 야구장 계획 조감도(사진=성남시)

대표적인 지역이 성남과 울산이다. 성남시는 야구단 유치에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남시는 324억원을 투입해 중원구 성남동에 있는 종합운동장을 2만 석 이상의 야구장으로 리모델링한다는 구상을 내놨다. 필요에 따라 돔구장 전환을 염두에 두고 설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야구장이 완공되면 올스타전과 국가대항전 등 연간 10경기 이상의 프로야구를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성남시는 이미 9, 10구단 창단 때도 유치 의사를 보였던 곳이다. 성남시 분당구 판교 테크노밸리는 NC 본사인 엔씨소프트가 자리한 지역이기도 하다. 성남시 인구는 2025년 3월 말 기준 92만 명이나 광역 인구까지 고려하면 야구단 연고지로는 최적지라고 할 수 있다.

울산광역시도 '남해안 야구 벨트' 중심이 되겠다는 계획을 내걸었다. 울산시는 울산체육공원 부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하고, 유스호스텔과 카누슬라럼센터 등 체육·편의 시설을 확충하는 청사진을 공개했다. 여기에 울산 문수야구장 관람석을 1만2000석에서 1만7000석 규모로 확대하며, 시민 구단 창단을 검토하고 있다.

울산시는 지난 4월 11일 김두겸 울산시장과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울산의 거점 야구 도시 육성과 공동 협력 증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협약에서 울산시는 2025년 10월 15일부터 11월 2일까지 국내 프로팀 5개, 해외 프로팀 5개가 참가하는 국제교육리그를 개최하기로 했다. 울산시는 인구 100만 명 이상의 광역시 가운데 유일하게 프로야구 연고가 없는 자치단체다. 울산시 인구는 2025년 3월 기준 110만 명이다.

파주시도 돔구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김경일 파주시장은 지난해 12월 KBO를 방문해 허구연 KBO 총재와 돔구장 건립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했다. 지난 1월에는 시에 '돔구장 추진 전담팀(TF)'도 신설했다. 파주시는 고양·일산 등 경기 북부를 비롯해 수도권과 접근성이 뛰어난 강점을 살려 스포츠·문화 복합 단지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외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최첨단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경기도 용인시(인구 109만 명)와 동탄 신도시 개발로 고소득-젊은층 인구가 크게 늘어난 경기도 화성시(인구 98만 명), 경기 북부의 대표 도시인 고양시(인구 107만 명)도 프로야구 유치에 적극적이다. 이 가운데 화성시는 올해 인구 100만 특례시로 승격되며 프로 스포츠 육성에 한창 공을 들이고 있다. 

하나 더 있다. 과거 프로야구 쌍방울 레이더스의 연고지였고, KT 위즈 창단 당시 유치전에 참가했던 전북도 프로야구 11구단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전북발전연합회는 "높은 야구 열기와 관중 동원 능력을 갖춘 전북이 11번째 구단을 유치해 지역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유치전을 공식화했다. 전북이 올림픽 개최에 발맞춰 야구단 유치를 추진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애초 이들 지자체 대부분은 새 야구단 창단을 목표로 내세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야구단 창단이나 리그 확장은 쉬운 프로젝트가 아니다. 신규 구단을 KBO에 승인받는데는 가입금과 야구발전기금 등 초기 비용만 200억원 이상 든다. NC는 가입금으로 30억원, 야구발전기금으로 20억원을 냈고 KT도 가입금 30억원, 야구발전기금 200억원을 냈다. 야구단 운영에 매년 들어가는 300억원 가까운 운영비를 충당하는 것도 문제다.

KBO와 기존 구단들도 신규 구단 창단에는 신중한 입장이다. 한 KBO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새 구단을 창단하거나 리그를 확대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본다”고 밝혔다. 10구단 체제가 겨우 안정을 찾은 단계에서 구단을 늘리는 건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게 중론이다. 그것도 10개 팀 중에 한 팀이 2할대 승률로 강등권 성적을 내는 상황에선 더 그렇다.

야구단에 관심있는 지자체는 많지만 야구단을 새로 만들기는 어려운 상황. 그렇다면 자연히 기존 구단의 연고지 이전이 대안이 될 수 있다. KBO나 NC가 자신 있게 연고지 이전을 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돔구장 지으면 야구단 유치전 승자 된다?

잠실 돔구장 조감도(사진=서울시)
잠실 돔구장 조감도(사진=서울시)

물론 실제 야구단을 운영할 능력과 자격을 갖췄는지는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문제다. 온갖 장미빛 약속을 해놓고 10년 넘게 지키지 않은 지자체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내년 지방선거 득표를 위해 무책임한 공약을 남발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계획의 현실성과 구체성, 얼마나 야구단에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지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야구계에서는 만약 돔구장 건립을 약속하는 지자체가 하나라도 나온다면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관측 나온다. 돔구장 건립은 KBO의 숙원사업 중 하나다. 전 세계적 기상이변으로 인한 폭우와 폭염, 구장 건설 뒤 다목적 활용과 수익사업을 위해서도 돔구장은 앞으로 피할 수 없는 대세로 여겨진다.

물론 돔구장 건립은 일반 옥외 야구장에 비해 훨씬 큰 돈이 드는 사업이다. 잠실에 신축 예정인 돔구장은 서울시 추산 5000억원짜리 야구장이 될 전망. 재정 자립도가 떨어지는 지자체들이 감당하기 쉽지 않은 액수다. 다만 서울시 사례처럼 지역 일대를 개발하는 큰 사업과 연관해서 추진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카드는 아니다.

돔구장이 아니라도 최신식 야구장 건립과 주변 인프라 개선, 야구단 지원을 좋은 조건으로 약속하는 지자체가 나오면 우선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 NC가 연고 이전을 공식화했고 지방선거가 1년 뒤로 다가오는 만큼 지자체들도 본격적으로 방안을 검토하고 조건을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한 야구 고위 관계자는 "굉장히 유리한 구도가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임시 연고도 대안…야구계 ‘애슬레틱스’ 사례 주목

애슬레틱스의 임시 홈구장 서터 헬스 파크(사진=MiLB.com)
애슬레틱스의 임시 홈구장 서터 헬스 파크(사진=MiLB.com)

새 구장을 지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착공에서 완공까지 최소 2년, 그 이전 준비단계까지 하면 적어도 5년은 걸리는 신축구장 건립이다. 그렇다고 그때까지 꼭 창원에 남을 필요는 없다. KBO와 구단들은 메이저리그 애슬레틱스의 연고 이전 사례를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다. 지난해까지 오클랜드를 연고로 했던 이 팀은 라스베이거스 이전을 앞두고 3년간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서 임시 연고 경기를 치른다.

국내도 프로 경기가 가능한 시설을 갖춘 지역 가운데 야구에 목마른 곳이 많다. 임시 연고를 흔쾌히 받아들일 만한 지역이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다. 프로야구 저변 확대 차원에선 해 볼만하 시도. 이렇게 임시 연고로 프로야구를 운영해본 지역이 실제 연고지가 되거나, 미래 리그 확장 시에 정식으로 연고지에 도전하는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NC의 연고지 이전 선언은 결코 농담이나 블러핑이 아니다. 야구계에서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연고지를 이전하는 팀이 한 팀은 나와야 다른 지방자치단체에도 경종을 울릴 수 있다는 분위기다. 향후 다른 구단들이 지자체와 협상하고 관계를 설정하는 데 연고지 이전 사례가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창원시도 전력을 다해서 NC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 요구사항을 전부 수용하기 어려우면, 최소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줘야 NC와 야구계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 뒤에서 야구단 험담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는 2019년 신설한 최신식 야구장이 사회인 야구의 성지가 되는 날이 올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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