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한국야구 레전드 이종범의 최강야구행 논란이 커지자 30일 방송사를 통해 해명이 나왔다. 하지만 해명에도 야구계와 팬들의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야구계에서 많은 혜택을 받은 레전드가 시즌 중에 팀을 관두고 예능행을 택한 데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종범의 해명은 크게 두 가지 논리로 압축된다. '후배들'과 '한국야구 발전'이었다. "처음에는 제안을 거절했다"고 밝힌 이종범은 "몇몇 은퇴한 후배들에게 연락이 와서, 내가 구심점이 되어 '최강야구'를 이끌어 주길 부탁받았다"며 "야구 예능이 인기를 얻으면서 몇몇 후배들은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후배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또 "'최강야구'를 살리는 것은 한국 야구의 붐을 더욱 크게 할 수 있다고 본다"며 "새로 출범하는 '최강야구'는 유소년 야구 등 아마 야구에 대한 지원도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결국 자신의 ‘욕 먹을’ 선택에 명분을 만들고 정당화하기 위해 후배들과 한국야구 발전이라는 거창한 대의를 들고 나온 셈이다.
그러나 야구 예능에 출연하면서 이런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는 건 이상한 일이다. 이는 요즘 야구예능 일부 관련자들이나 팬들이 내세우는 논리와도 닮아있다. 2022년 첫 방영한 JTBC '최강야구'는 단순히 은퇴한 스타들이 모여 팀을 만들고 1승을 위해 사력을 다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순수한 '엔터테인먼트'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한국야구 흥행의 주역' '야구 발전'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들을 위해' '아마야구를 위해서' 등의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웃자고 시작한 야구 예능의 처음 출발점을 생각하면 어색한 변화다. 한 구단 마케팅 담당자는 "연예인들이 해외여행 프로그램을 찍으면서 '한국 문화의 세계 전파'를 운운한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럽겠나. 그런데 왜 요즘 야구 예능들은 하나같이 한국야구의 메시아 행세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한국야구가 과연 예능 때문에 흥행하고 천만 관중을 달성했을까. 물론 일부 예능팬의 유입이 있었을 수 있지만 수많은 이유 중 하나일 뿐이다. 2024년 KBO 설문조사에서 야구팬들이 꼽은 야구장 방문 이유를 보면 야구장 먹거리, 응원 문화, 야구장에서의 다양한 체험 등이 주를 이뤘다. 예능 때문에 한국야구가 흥행했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비대한 자의식의 산물이다. 실제로 한 야구예능과 같은 PD가 비인기 종목을 소재로 만든 프로그램은 큰 반향 없이 막을 내렸다. 야구 인기가 예능 덕분인지, 예능 인기가 야구 덕분인지는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이종범이나 야구예능 출연진이 후배들과 한국야구를 위해 무료봉사를 하는 것도 아니다. 업계에 따르면 야구 예능 1회 출연료는 보통 300만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1, 2주에 한 번 경기만 뛰면 되니 월 수입이 상당한 수준이다. 여기에 각종 부대 수익까지 더하면 현장 코치 연봉을 훌쩍 뛰어넘는다. 한 중견 야구인은 "후배들과 야구 발전을 내세우지만 결국 돈이 되는 일 아닌가. 거기 나오는 선수들 대부분이 현역 시절 고액 연봉을 받았던 스타 출신들이고, 출연료도 엄청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코치, 스카우트 등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현실적으로 그만한 대우가 주어지지 않는다. 프로팀 코치의 초봉은 대개 5천만원 수준에서 시작한다. 신인급 선수면 몰라도 가정이 있고 자녀가 있는 코치들에게는 빠듯한 금액이다. 능력 있는 코치는 다년계약도 하고 억대 연봉도 받지만 고생인 건 마찬가지다. 하루 온종일을 야구장에서 보내고, 경기 없는 월요일이 유일한 휴일이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밤새워 상대팀 분석자료를 찾는 코치도 있다. 팀이 조금만 못하거나 선수가 부진해도 담당 코치를 향해 온갖 입에 담지 못할 비난이 쏟아진다.
한 지방구단 관계자는 "코치들은 정말 극한직업이다. 그러다 보니 스포트라이트를 피해서 2군 코치를 선호하는 분들도 있다"고 전했다. 일부 코치들은 사설 연습장을 차리거나 개인 레슨을 하면 더 큰돈을 벌 수 있지만, 팀에 대한 사랑이나 사명감으로 현장을 지키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일부 스타 출신들은 "힘들다"는 이유로 지도자의 길을 기피한다. 어떻게 하면 편하게 사는지 알지만 그러지 않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묵묵하게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야구 예능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은퇴 선수들에게 새로운 활로를 제공하고, 야구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순기능도 분명하다. 일부 야구 인기 확산에 도움이 된 측면도 있다. 최근 구단들이 지도자를 보는 기준이 까다로워진 가운데, 지도자 스타일이 아닌 야구인들이 예능으로 진출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과거처럼 스타라는 이유만으로 지도자에 무임승차하는 것보다는 건전한 일이다.
문제는 과도한 '의미 부여'다. 애초에 엔터테인먼트로 시작된 일에 굳이 거창한 명분을 덧씌울 필요가 있을까. 진짜 후배들을 위하고 야구발전을 위해 일하는 건 폭염 속에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모든 것을 바쳐 일하는 현장의 코치들이다. 밤새워 상대팀을 분석하는 스태프들이고, 전국을 돌며 고생하는 스카우트들과 아마야구 지도자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현장을 지키고 있는데 시즌 중 예능프로그램에 가는 사람이 '후배들'과 '야구발전'을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상대적으로 편한 일을 하며 많은 돈까지 버는 사람들이 대의와 명분까지 가져가려는 건 지나친 욕심이다. 그냥 솔직하게 "재미있는 방송 만들어 시청자들 즐겁게 해드리겠다"고 하면 안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