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우승 마무리' 바비 젠크스가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사진=MLB.com)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우승 마무리' 바비 젠크스가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사진=MLB.com)

 

[스포츠춘추]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우승 마무리' 바비 젠크스가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화이트삭스 구단은 젠크스가 7월 5일(한국시간) 거주지인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위선암 투병 끝에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키 193cm, 몸무게 125kg의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160km/h대 강속구로 '빅 펠라'라는 별명을 얻었던 젠크스는 올해 2월 자신의 암 투병 사실을 공개하며 생의 의지를 다졌지만 끝내 병마를 이겨내지 못했다.

젠크스의 별세 소식에 화이트삭스 구단과 동료들은 깊은 애도를 표했다. 제리 라인스도프 구단주는 "휴스턴에서의 4차전 9회, 바비가 해낸 모든 일들을 우리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며 "그는 영원히 우리 마음속 특별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추도했다.

젠크스는 야구선수로서는 결코 순탄하지 않은 길을 걸었다. LA 에인절스 마이너리그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혀 방출된 그는 2004년 12월 웨이버 공시를 통해 화이트삭스와 단돈 2만 달러에 계약했다. 당시에는 아무도 이 신인이 시카고 야구 역사를 바꿀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우승 마무리' 바비 젠크스가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사진=MLB.com)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우승 마무리' 바비 젠크스가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사진=MLB.com)

2005년 7월 6일 US 셀룰러 필드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젠크스는 첫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낸 후 두 타자를 연속 삼진 처리하며 존재감을 알렸다. 당시 구장 스피드건이 측정한 그의 패스트볼은  158km/h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10배는 더 좋았다"며 소감을 밝힌 젠크스는 그해 정규시즌 6세이브를 기록하며 팀의 주요 불펜으로 자리잡았다.

9월 말 아지 기옌 감독이 젠크스를 마무리 투수로 지명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젠크스는 포스트시즌에서 4세이브를 기록하며 화이트삭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10월 26일 휴스턴에서 열린 4차전에서 9회 말 애스트로스의 올랜도 팔메이로를 땅볼로 처리하며 우승을 확정지은 순간은 시카고 야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기억된다.

기옌 감독은 불펜에서 젠크스를 부를 때 손목을 두드리는 대신 두 팔을 벌리는 몸짓을 했다. 젠크스의 거대한 체격을 표현한 이 독특한 사인은 팬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젠크스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젠크스는 화이트삭스에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시즌 동안 329경기에 등판해 173세이브와 334삼진을 기록했다. 구단 역사상 구원투수 부문에서 세이브 2위, 삼진 7위, 등판 6위에 이름을 올렸다. 2006년과 2007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됐고, 2007년에는 41명의 타자를 연속으로 아웃 처리하며 메이저리그 기록을 타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화려한 선수 시절과 달리 은퇴 후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2011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젠크스는 보스턴에서 받은 등 수술이 잘못되면서 진통제 중독에 빠졌다. 이후 510만 달러의 의료 과실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이미 그의 야구 인생은 끝나있었다.

젠크스는 약 15년 전 애리조나의 재활센터에서 현재 아내인 엘레니 치치바코스를 만났다. 그는 진통제 중독으로, 그녀는 섭식장애로 치료받고 있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결혼 후 포르투갈로 이주해 엘레니의 가족과 함께 살며 두 자녀 제노(11세)와 케이트(4세)를 키웠다.

올해는 젠크스에게 특히 시련의 해였다. 1월 캘리포니아의 자택이 팰리세이즈 산불로 전소되면서 야구를 하며 얻은 모든 기념품을 잃었고, 같은 달 말에는 4기 위선암 진단을 받았다. 몇 해 전 의료보험료가 부담돼 보험을 해지한 뒤라 천문학적인 치료비 청구서와 마주해야 했다. 젠크스는 치료비 마련을 위해 병상에서 야구공과 카드 등 기념품에 사인하는 온라인 판매 행사를 진행했다. 

바비 젠크스와 아내 엘레니, 그리고 아들.
바비 젠크스와 아내 엘레니, 그리고 아들.

그럼에도 젠크스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44번째 생일에 가족에게 텐트를 선물해달라고 부탁한 것도 언젠가 몸이 나아지면 유럽을 여행하며 가족과 캠핑을 하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었다. 그는 의사들에게 7월 초에는 절대 예약을 잡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하기도 했다. 다음 주에 예정된 화이트삭스 2005년 우승팀 20주년 기념행사에 꼭 참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4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젠크스는 "6개월이 될 수도 있고, 3년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하지만 준비됐다. 얼마나 오래 걸리든,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 말은 선수 시절 보여준 불굴의 투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동료들은 젠크스를 거대한 체구와 달리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화이트삭스 1루수 출신 폴 코너코는 "모든 사람이 그를 160km/h를 던지는 거대하고 강인한 승부사로 기억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큰 테디베어 같은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포수 출신 A.J. 피어진스키는 "월드시리즈 마지막 아웃 후 그의 품에 뛰어들었던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옌 전 감독은 "바비 젠크스는 시카고의 영웅"이라며 "그가 없다면 2005년 우승팀 기념행사가 뭔가 이상할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젠크스는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4명의 자녀와 엘레니와의 사이에서 낳은 2명의 자녀, 그리고 아내 엘레니를 남기고 떠났다. 생전 그가 꿈꿨던 가족과의 유럽 여행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가 시카고에 남긴 영광의 순간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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