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올시즌 KT 위즈는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이 화두였다. 국내 선수들의 면면만 봐선 경쟁력이 충분한데 외국인 선수들이 부진해 좀처럼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지 못했다. 안현민이라는 주목받는 신인이 등장했고, 오원석과 소형준 같은 젊은 투수들이 강력한 선발진을 구축했는데 정작 항상 제몫을 해줬던, 그리고 해줘야 할 외국인 선수들이 발목을 잡았다.
특히 8년 동안 함께한 장수 외인 윌리엄 쿠에바스와 멜 로하스 주니어의 동반 부진이 고민거리였다. 오랫동안 함께한 정이 있다 보니 쉽게 퇴출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두 선수 모두 과거에도 초반 부진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난 경우가 많아서 더 판단하기 쉽지 않았다. 이강철 감독은 "외국인 선수들만 잘해주면 되는데"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상황이 조금씩 정리되고 있다. 일단 외국인 투수 문제는 해결됐다. KT는 전반기 종료를 앞두고 쿠에바스를 퇴출하고 새 외국인 투수 패트릭 머피를 영입했다. 머피는 합류 이후 꾸준히 안정적인 투구로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고영표-소형준-오원석의 강력한 국내 선발진에 외국인 투수까지 안정되면서, 투수 쪽에서는 앞으로 더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타선은 여전히 문제였다. 로하스가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로하스는 올시즌 200타석 이상 외국인 타자 중 WAR 1.11로 9위에 그쳤다. 홈런은 14개로 그런대로 쳐냈지만 타율 2할3푼9리, OPS 0.759로 정확성과 생산성이 크게 떨어졌다. 전반기 내내 이어진 심각한 부진으로 6월 21일엔 1군 엔트리에서 말소당하기도 했다.
7월 복귀 후 타이론 우즈의 외국인 선수 최다 홈런 기록(175개)을 넘어서며 살아나는가 싶었지만 거짓말처럼 다시 부진에 빠졌다. 살아나겠지, 살아나겠지 하며 기다려봐도 이따금 터지는 홈런으로 희망을 줄 뿐이었다. 결국 점점 선발 출전 기회는 줄어들고 대타 요원으로 전락했다. 안현민이라는 뛰어난 신인 타자가 등장했는데, 로하스가 부진하니 좀처럼 시너지가 나지 않았다.
여기에 또 다른 고민이 겹쳤다. 배정대가 7월 30일 주루 도중 왼쪽 발목 인대를 다치며 한 달 이상 공백이 불가피해졌다. 사실상 KT 유일의 전문 중견수 자원이 사라진 셈이다. 배정대는 부상 전까지 팀 내 최다인 89경기를 중견수로 출전했다. 다음으로 많은 안현민과 장진혁은 중견수로 각각 14경기에 출전했다. 안현민은 코너 외야수에 가깝고, 장진혁은 타율 2할에 OPS 0.501로 주전으로 쓰기엔 타격이 낙제점이다.
KT의 고질적 문제인 스피드 부족도 이강철 감독의 골칫거리였다. KT는 올시즌 도루 39개로 10개 구단 최하위다. 9위 키움도 도루를 안 하기로 소문난 팀인데 54개로 KT보다 훨씬 많다. 더구나 키움은 시도는 적지만 성공률 90%로 확실할 때만 뛰는 야구를 한다. KT는 성공률 69.6%로 도루 숫자와 성공률 모두 꼴찌다. 두 자릿수 도루 선수는 한 명도 없다. 김민혁이 9도루로 팀 내 최다고, 다음이 6개의 배정대인데 부상으로 이탈했다.
한 점 싸움에서 런 앤 히트 등 작전을 즐겨 쓰는 이강철 감독은 "빠른 선수가 너무 없다. 주축 1군 선수 중에 뛰어줄 선수가 없고 발이 느려서 고민"이라며 수시로 답답함을 토로했다. 발이 느리니 병살타도 많다. 79개로 롯데(97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병살타를 기록하고 있다. 다른 구단들은 다 적극적으로 뛰는 야구를 하고 있는데 KT만 거북이 걸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KT가 2일 영입한 새 외국인 타자 앤드류 스티븐슨은 마치 맞춤형 해결사 같은 존재다. 이강철 감독이 가려워하는 곳만 정확하게 긁어주려고 나타난 선수 같다. 물론 KT가 스티븐슨을 유력 후보로 검토하고 계약한 가장 큰 이유는 타격 능력이지만, 보너스로 수비와 스피드에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선수라서 더 반갑다.
KT 관계자는 "가장 필요한 게 타격 능력이었기 때문에, 잘 치는 후보군 가운데 외야 자원을 중점적으로 찾으려고 했다"며 "정확한 타격으로 강한 타구를 치면서 중장거리 타격을 해줄 수 있는 타자"라고 설명했다. 스티븐슨은 기본적으로 컨택 능력이 뛰어난 타자다. 마이너리그 유망주 시절부터 수준급 컨택으로 많은 2루타를 쳐내는 유형으로 평가받았다.
트리플A 통산 타율만 봐도 2할8푼9리, OPS 0.799로 나쁘지 않다. 메이저리그에서도 6시즌 통산 타율 2할4푼3리를 기록했다. 2019년 워싱턴 빅리그에선 30경기 타율 3할6푼7리를, 2020년엔 15경기 타율 3할6푼6리를 기록한 적도 있다. 파워는 다소 아쉽지만 정확하게 맞히고 라인드라이브를 치는 능력은 검증됐다. 올해도 트리플A에서 57경기 타율 2할9푼5리를 기록했으니, 2할대 초반 타율에 허덕일 염려는 없다고 봐도 된다.
스티븐슨의 매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KT 관계자는 "타격도 타격이지만, 중견수 수비도 가능하고 발도 빠른 선수라서 팀 입장에서는 금상첨화"라고 소개했다. 일부러 중견수나 발 빠른 선수를 찾은 게 아니라 타격을 최우선으로 고려했지만, 유력 후보군에 올려놓고 보니 수비와 발에도 장점이 많은 선수였다는 설명이다.
스티븐슨은 외야 모든 포지션에서 좋은 수비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이저리그 5시즌 중견수로 58경기, 좌익수로 68경기를 뛰었다. 마이너에서는 중견수 476경기, 좌익수 209경기 출전했다. 전문 중견수에 가까운 경력이다. 2023년 기준 스탯캐스트 수비 스탯인 OAA(Outs Above Average) 스탯에서 +1을 기록하기도 했다. 배정대의 중견수 공백을 메울 적임자다.
스피드는 더욱 인상적이다. 2023년 빅리그에서 스프린트 스피드 29.2피트/초를 기록했는데, 이는 백분위수 93%에 해당하는 최상위권이다. 2021년에도 초당 29.3피트로 96% 백분위수를 기록했다. 올해는 트리플A에서 53경기 18도루를 성공했다. KT의 고질적 문제였던 스피드 부족을 단숨에 해결해줄 발 빠른 선수다.

스티븐슨 영입으로 KT는 이강철 감독의 고민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정확한 타격 능력으로 상위 타선에서 많은 찬스를 만들고, 안현민 집중 견제를 분산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배정대가 빠진 중견수 수비도 메꿀 수 있다. 빠른 발을 바탕으로 한 폭발적인 주루는 안타 3개가 나와야 득점이 가능했던 KT의 답답했던 공격 흐름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을 것이다.
KT 관계자는 "스카우트 파트의 평가에 따르면, 리그에 잘만 적응하면 과거 제러드 호잉의 좋았을 때 모습을 기대할 수 있는 타자"라고 했다. 유망주 시절 리포트에선 좋은 성격과 리더십, 야구 센스가 뛰어난 선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일본프로야구 경험까지 있으니, 한국야구와 KT 위즈 선수단 적응은 걱정없을 듯하다.
스티븐슨이 KT의 기대대로 빠르게 적응해서 안착한다면, 팀 상승의 동력을 얻는 데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물론 로하스와의 작별은 아쉽다. 긴 세월 함께하며 KT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레전드였다. 하지만 야구에선 때로 비즈니스가 필요한 때가 있는 법이다. 스티븐슨이 기대대로 활약한다면, 로하스를 떠나 보낸 아쉬움은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