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와! 라경아, 너 어깨 진짜 많이 커졌다. 운동 열심히 했구나?"
4년 만에 만난 대표팀 동료가 깜짝 놀라며 건넨 말에 그간의 설움과 고됨이 씻은 듯 녹아내렸다. 내심 뿌듯함과 함께 매일 차곡차곡 묵묵히 쌓아갔던 훈련이 이렇게 드러나는가 싶었다고 했다. 그간의 과정을 스스로 자조하며 '4년간 똬리를 튼 이무기'로 표현한 그는 "독기를 품었다. 이제는 용이 될 차례"라고 했다. 4년 만에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에 전격 복귀한 김라경(25·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얘기다.
김라경이 최근 한국 여자야구 대표팀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15년 최연소 여자야구 국가대표로 이름을 올린 뒤 6년간 꾸준히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2021년 이후로는 학업과 부상을 이유로 한동안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2022년 6월, 일본 여자야구팀 '아사히 트러스트'에 입단 직후 인대 파열로 인대재건술(토미존)을 받은 게 컸다. 당시 꿈에 그리던 일본 무대에 진출했지만, 한 경기 만에 불의의 부상으로 쓸쓸히 귀국한 김라경이다.
김라경은 2년 넘게 재활에만 매진했다. 혹독한 재활이 끝난 뒤 지난 2월 일본 프로야구(NPB) 세이부 라이온즈 산하 여자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하며 일본 재진출에 성공했다. 지난 5월 3일 드디어 꿈에 그리던 일본 무대 첫 승을 따내기도 했다. 당시 최고 구속은 시속 118㎞. 날이 더워지면 구속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고 단언했던 그다.

어릴 때부터 '천재 야구 소녀'로 주목을 많이 받아왔던 그지만, 큰 부상과 수술 이후 4년 만의 대표팀 복귀는 남달랐다고 한다. 김라경은 7일 스포츠춘추와 통화에서 "감격스럽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며 "너무나 어렵게 돌고 돌아 대표팀에 재승선하게 됐다.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지면 그저 '감격적'"이라고 했다.
지난 2일엔 4년 만에 대표팀 훈련에도 참가했다. 일본에서 약간의 근육 뭉침 증세로 귀국해 재활을 받고 있는 중이기에 공만 주우러 다녔지만, 오랜만에 대표팀 동료들과 반갑게 조우했고, 4년 만에 만난 대표팀 외야수 안수지로부터 "라경아, 너 어깨 진짜 많이 커졌다. 훈련 열심히 했구나?"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김라경은 "그 말을 들은 순간, 지난 4년 간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너무 뿌듯하고 기분이 정말 좋았다"며 웃었다. 근육량이 약 4㎏ 증가했다고 밝힌 김라경은 "지난 4년 간의 눈물과 땀이 나를 그래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준 것 같아 좋았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10년 전 최연소 국가대표로 언니들 뒤만 졸졸 따라다녔지만, 어느덧 중고참이 됐다. 올해 대표팀엔 김진선, 곽소희, 이민서 등 젊고 유망한 투수들이 많다. 김라경은 "좋은 후배들이 많이 들어왔더라. 후배들과 부상 방지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너무나 큰 부상을 당했기에 그저 부상만 꼭 주의하라 조언했다"고 전했다.

김라경은 이제 오는 10월 말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2025 아시아야구연맹(BFA) 여자야구 아시안컵에 출전한다. 보직은 선발투수이며, 1선발이 유력하다. 허일상 여자야구 대표팀 감독은 "(김)라경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여자 선수 아닌가. 중요한 역할을 맡길 것"이라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김라경도 오랜만에 나서는 국제대회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2023년 여자야구 대표팀이 아시안컵에서 사상 두 번째 동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김라경은 부상으로 집에서 부러운 눈길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때 지켜보며 축하의 마음과 함께 같이 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긴 재활 끝에 드디어 기회가 왔다. 이번에 메달 색 한번 바꿔보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김라경은 "지금껏 난 이무기였다고 생각한다. 지난 4년간 독을 품고 똬리를 틀어왔다. 이제 이무기가 승천해 용이 될 날만 남았다. 그간 갈고 닦은 것을 모두 보여드릴 것"이라며 전의를 불태웠다. 김라경의 시계가 본격적으로 다시 흐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