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챔피언 리버풀이 독일 바이어 레버쿠젠의 플로리안 비르츠(22)를 최대 1억1600만 파운드(약 2148억원)에 영입했다(사진=리버풀 공식 SNS)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챔피언 리버풀이 독일 바이어 레버쿠젠의 플로리안 비르츠(22)를 최대 1억1600만 파운드(약 2148억원)에 영입했다(사진=리버풀 공식 SNS)

 

[스포츠춘추]

"급진적인 변화는 아마 보지 못할 겁니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 직후 아르네 슬롯 감독이 한 말이다. 리그 우승팀이 도전보다 수성을, 파격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올 여름 리버풀의 행보는 슬롯 감독의 말과는 정반대다.

플로리안 비르츠, 제레미 프림퐁, 밀로스 케르케스, 위고 에키티케. 네 명을 데려오는 데만 2억5000만 파운드(약 4608억원)가 들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뉴캐슬의 알렉산더 이사크까지 데려온다면 영국 이적료 신기록도 각오해야 한다. 비르츠 영입에 쓴 1억1600만 파운드를 훌쩍 넘어서는 돈이다.

우승팀의 이런 대규모 투자는 얼마나 드문 일일까.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에 따르면 전 시즌 우승팀이 다음 해 여름 이적시장 지출 1위에 오른 경우는 2019년 맨체스터 시티가 마지막이다. 그 전으로는 2007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트랜스퍼마르크트 자료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디펜딩 챔피언이 여름 지출 상위 3위 안에 든 경우는 고작 세 차례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렇다. 우승했다면 현재 전력에 만족해야 하는 것 아닌가. 조금의 보강은 있을 수 있어도 이 정도 규모는 상상하기 어렵다. 전 리버풀 수비수 제이미 캐러거가 디 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내게는 리버풀답지 않게 느껴진다"며 당황한 것도 이해가 간다.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리버풀(사진=리버풀 FC SNS)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리버풀(사진=리버풀 FC SNS)

그간의 리버풀은 이러지 않았다. 매 시즌 1군 스쿼드에 많아야 서너 명 정도만 보강했다. 지난 여름엔 페데리코 키에사 한 명, 2021년엔 이브라히마 코나테 한 명이 전부였다. 2018년 버질 반 다이크와 알리송으로 세계 이적료 기록을 세웠지만, 그것도 예외적인 일이었다. 펜웨이 스포츠 그룹은 기본적으로 '가성비'를 추구하는 구단주였다.

놀라운 건 돈을 쓰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점이다. 디 애슬레틱 분석에 따르면 지난 6년간 리버풀의 이적 지출은 첼시,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물론 웨스트햄, 뉴캐슬, 브라이튼보다도 적었다. 그런데도 위르겐 클롭 시대를 거쳐 슬롯까지 우승을 차지했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는 진리를 보여준 클럽이었다.

그런 리버풀이 올 여름 왜 갑자기 돈지갑을 열었을까. 디 애슬레틱의 올리버 케이 기자는 여기엔 그들만의 절박한 사정이 숨어 있다고 분석했다.

첫 번째 이유는 '시간'이었다. 안정 추구도 좋지만, 너무 안주하는 순간 퇴보가 시작되는 법이다. 리버풀이 바로 그런 함정에 빠져있었다. 가장 뼈아픈 실수는 미드필드 세대교체를 미룬 것이다. 파비뉴, 조던 헨더슨, 제임스 밀너의 노화는 이미 2021년부터 눈에 띄었지만 리버풀은 손을 놓고 있었다. 이들이 팀의 중추 역할을 해왔고, '아직은 괜찮다'는 안일한 생각이 지배했다.

결국 2023년 여름에야 대대적인 리뉴얼에 나섰다. 파비뉴, 헨더슨, 밀너가 한꺼번에 떠나고 엔도 와타루, 알렉시스 맥 알리스터, 라이언 흐라벤베르흐, 도미닉 소보슬라이가 들어왔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너무 늦었다. 안주하며 미루다 보니 점진적 교체 대신 전면 개편이라는 위험한 선택지만 남았다.

수비진은 더 심각했다. 반 다이크가 2018년 1월에 왔고, 올 여름 프림퐁과 케르케스가 오기까지 사실상 코나테와 코스타스 치미카스가 유일한 보강이었다. 7년 가까이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셈이다. 34세가 된 반 다이크와 30대에 접어든 앤디 로버트슨의 나이를 생각하면 벌써 늦었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 이유는 예상치 못한 비극이었다. 7월 3일, 스페인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디오고 조타와 그의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조타의 등번호 20번은 영구결번됐다. 설상가상으로 루이스 디아스와 다윈 누녜스까지 각각 바이에른 뮌헨과 알 힐랄로 떠났다. 지난 시즌 6명이던 공격수가 단숨에 3명이나 빠지면서 4명으로 줄었다.

키에사마저 떠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19세 벤 도크와 16세 리오 은구모하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조타 없는 빈자리는 그 누구도 쉽게 메울 수 없는 상처였지만, 그렇다고 공격진을 텅 비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상에 오른 리버풀(사진=리버풀 FC SNS)
정상에 오른 리버풀(사진=리버풀 FC SNS)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리버풀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결단했다. 미루고 안주하다 위기를 맞은 만큼, 이번엔 선제적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슬롯 감독은 커뮤니티 실드 후 "지난 시즌 우리는 볼 점유율은 높았지만 득점 기회 창출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제는 더 많은 결정적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미 강력했던 우승팀에 대규모 투자까지 더해진 결과는 상상만으로도 무섭다. 리버풀은 지난 시즌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을 기록한 맨체스터 시티보다 14골을 더 넣었다. 여기에 비르츠, 에키티케, 이사크까지 더해진다면 어떨까. 모하메드 살라의 파트너로 비르츠가 뛰는 장면은 팬들에겐 행복한 상상이지만, 상대팀들에겐 악몽일 거다.

물론 위험도 있다. 전통적으로 우승팀은 급진적 변화를 피한다. '이미 완성된 팀을 굳이 흔들 필요가 없다'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리버풀은 반대로 갔다. 지난 여름 키에사 한 명만 데려오며 안정을 택했던 것과 정반대다.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새로운 선수들이 빨리 적응할 수 있을까. 기존 선수들과의 화학작용은 어떨까. 더 공격적인 축구가 수비에 구멍을 내지는 않을까.

하지만 리버풀의 판단은 이렇다. 안주하면 무너진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하겠느냐. 리버풀은 우승팀의 여유 대신 도전자의 절박함을 택했다. 과연 이 도박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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