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리버풀(사진=리버풀 FC SNS)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리버풀(사진=리버풀 FC SNS)

 

[스포츠춘추]

FIFA 지아니 인판티노 회장과 프리미어리그가 선수들의 과부하 문제를 둘러싼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올 여름 클럽 월드컵의 성공에 힘을 얻은 인판티노 회장이 글로벌 대회 확장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반면, 프리미어리그는 선수 혹사와 국내리그 파괴 우려를 제기하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스포츠 전문 매체 디 애슬레틱은 15일(한국시간) "30년간 20팀 380경기를 유지해온 프리미어리그 체제가 FIFA의 무분별한 대회 확장으로 붕괴 위기에 처했다"며 "이런 형태의 시즌이 얼마 남지 않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갈등의 발단은 올 여름 미국에서 열린 클럽 월드컵이다. 첼시가 파리 생제르맹을 꺾고 우승한 이 대회에서 인판티노 회장은 글로벌 확장 정책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관중 동원력과 중계권 수익에서 예상보다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향후 계획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인판티노 회장은 이미 2029년 클럽 월드컵을 48팀으로 확대하고 격년제로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48개국 104경기로 확대된 월드컵까지 고려하면 국제 대회만으로도 선수들의 일정이 포화상태에 이른다.

문제는 FIFA가 이런 확장 계획을 추진하면서도 기존 국내리그와의 조율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최소한 각국 리그와 선수조합 대표들을 회의에 초청해 의견을 듣지만, FIFA는 보도자료 발표와 포토 세션만으로 일방적 통보를 대신하고 있다.

맨시티의 클럽 월드컵 경기 장면(사진=클럽 월드컵 SNS)
맨시티의 클럽 월드컵 경기 장면(사진=클럽 월드컵 SNS)

이에 맞서 리처드 마스터스 프리미어리그 CEO는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그는 영국 BBC 인터뷰에서 "1994년 이후 프리미어리그는 380경기, 20개 클럽 체제를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며 "그런데 이제 유럽과 글로벌 확장의 제단에서 국내 일정을 재설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마스터스 CEO는 특히 선수들의 과부하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선수들에게 더 많은 경기를 요구하고 있는데, 게임 최상위에서 FIFA와 모든 이해당사자 간의 적절한 대화가 없었다"며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현재 유럽 주요 리그와 국제대회를 병행하는 선수들은 11개월 연속 경기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챔피언스리그 예선이 7월 초 시작돼 다음해 여름 월드컵까지 이어지는 무휴식 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하위리그는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잉글랜드 리그 1·2부는 8월 1일 시즌을 시작했고, 일부 팀들은 7월 말부터 컵대회 예선까지 치렀다. 선수들이 제대로 된 여름휴가를 보내기도 전에 새 시즌이 시작된 셈이다.

FIFA와 UEFA가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것은 18팀 리그 체제로의 전환이다. 독일 분데스리가(1965년부터)와 프랑스 리그1(2023년부터)이 이미 18팀 체제를 도입했고, 현재 20팀을 유지하는 곳은 잉글랜드·이탈리아·스페인뿐이다.

주목할 점은 빅클럽들의 변화하는 태도다. 이탈리아 세리에A가 작년 18팀 축소안을 논의할 때 AC밀란, 인터밀란, 유벤투스, 로마 등 전통 강호들이 찬성표를 던졌다. 국내 경기 수를 줄이는 대신 수익성이 높은 국제 대회 참가 기회를 늘리려는 속셈으로 해석된다.

이는 빅클럽들이 더 이상 국내리그를 핵심 수익원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해외 팬층과 글로벌 스폰서십이 국내 관중보다 중요해진 상황에서 FIFA가 제시하는 국제 대회의 경제적 가치에 더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

축구계의 태양왕 인판티노.
축구계의 태양왕 인판티노.

결국 갈등은 법정으로 옮겨졌다. 프리미어리그는 유럽의 다른 주요 리그들 및 선수조합과 연대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FIFA를 정식 고발했다. EU 경쟁법 위반을 근거로 FIFA의 독점적 대회 확장 정책을 견제하겠다는 전략이다.

고발장에서 이들은 "축구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선수들은 한계점에 달했으며, 더 이상 줄일 수 있는 경기 일정도 없다"며 FIFA의 정책 변화를 요구했다. 특히 "선수들의 건강과 경기력 유지를 위해서는 적절한 휴식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인판티노 회장은 이런 반발을 의식한 듯 "모든 대륙의 축구 발전을 위해서는 글로벌 대회 확충이 필수"라며 확장 정책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는 "유럽 중심의 축구에서 벗어나 진정한 월드 와이드 스포츠로 발전시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결국 이번 갈등의 핵심은 선수들의 건강과 경기력 보호 대 FIFA의 글로벌 사업 확장이라는 대립 구도로 요약된다.

FIFA는 아시아·아프리카·남미 등 신흥 시장 개척과 중계권 수익 극대화를 위해 대회 수와 규모를 지속 확대하려 하고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자본의 적극적 투자 의지에 힘입어 더욱 과감한 확장 계획을 추진 중이다.

반면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한 유럽 주요 리그들은 선수들이 이미 한계 상황에 도달했다며 브레이크를 요구하고 있다. 연간 60~70경기를 소화하는 주전급 선수들의 부상 위험과 경기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경우 전통적인 국내리그 체제는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18팀은 물론 16팀 리그까지도 검토해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프리미어리그와 FIFA 간 이번 대립은 단순한 일정 조율 문제를 넘어 미래 축구계의 판도를 결정할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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