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연패를 당했는데 순위가 상승하는 경험을 한 이강철 감독(사진=KT)
2연패를 당했는데 순위가 상승하는 경험을 한 이강철 감독(사진=KT)

 

[스포츠춘추]

이기면 순위가 올라가고, 지면 순위가 내려간다. 돔구장엔 우천취소가 없고, 감독이 손가락 네 개를 펴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며, 선수 넷이 단체사진을 찍으면 다른 팀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이게 원래 우리가 아는 야구 상식이다.

하지만 2025년 KBO리그에서는 이런 전통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이 신묘한 시즌에는 승리해도 순위가 내려가고, 연패해도 순위가 올라가는 일이 벌어진다. 9연패를 당하고도 3위를 지키는 팀이 있는가 하면, 2연패하고도 순위가 상승하는 거짓말 같은 일이 매일 생긴다.

23일 현재 순위표를 보면, 3위 SSG 랜더스(58승 4무 53패)부터 9위 두산 베어스까지의 승차는 6.5경기에 불과하다. '6경기 차는 절대로 못 좁힌다'는 야구 격언이 있긴 하지만, 정규시즌 막바지 3위 팀과 9위 팀의 거리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가까워 보인다.

이게 다가 아니다. 3위 SSG 랜더스와 8위 삼성 라이온즈(56승 5무 60패)의 승차는 고작 4경기 차다. 공동 5위 KT·NC와 9위 두산의 승차도 4경기에 그친다. 잔여경기가 30경기도 안 남은 시점에서 9위 팀도 가을야구를 꿈꿀 수 있는 시즌이 올 시즌 말고 또 있을까. 

10위 키움(38승 4무 77패)을 제외한 나머지 9개 팀 가운데 누구 하나 포스트시즌 진출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연패 한 번, 연승 한 번이면 일주일 안에 3위가 하위권이 되고 8위가 상위권으로 올라서는 것도 산술적으로 가능하다.

순위 싸움이 치열하다 보니 희한한 일도 벌어진다. 연승이 아니라 연패를 했는데 오히려 순위가 올라가는 기이한 일, 마법사 군단 KT 위즈가 최근 겪은 일이다.

KT는 20일과 21일 SSG 랜더스를 상대로 홈에서 2연패를 당했다. 19일 경기에서 이긴 뒤 KT는 56승 4무 55패로 5위 KIA(54승 4무 53패)에 승차 없이 승률에서 뒤진 6위였다. 여기서 2연패를 당했으니 당연히 순위가 추락해야 할 것 같은데, KT는 오히려 단독 5위로 순위가 상승했다.

KT가 KIA보다 경기 수를 4경기 더 많이 치렀기에 가능한 일이다. 20일 경기에 패하면서 KT는 56승 4무 56패 승률 0.500이 됐다. 같은 날 KIA도 지면서 54승 4무 54패로 승률 5할이 됐다. 승률이 똑같아지면서 공동 5위가 됐다.

21일 경기에서도 둘 다 졌다. KT는 56승 4무 57패 승률 0.496이 됐고, KIA는 54승 4무 55패 승률 0.495가 됐다. 같은 2연패를 당했지만 117경기를 치른 KT의 승률이 113경기만 치른 KIA의 승률보다 0.001 높았다. 결국 똑같이 2연패를 당했는데 KT는 단독 5위로 순위가 올라가고, KIA는 6위로 떨어졌다. 지고서 순위가 올라가는, KT 위즈 응원가 가사처럼 정말 '마법같은 기적'이었다.

지난달 31일 NC와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롯데 김태형 감독. (사진=롯데 자이언츠)
지난달 31일 NC와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롯데 김태형 감독. (사진=롯데 자이언츠)

22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이강철 KT 감독도 이 현상이 적잖이 신기한 듯했다. 이 감독은 "우리가 2연패를 했는데 단독 5위가 됐다고 하더라. 오히려 순위가 올라간 거다"라며 "주위에서 '단독 5위 됐다'고 하길래 어이가 없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물어봤다. 6위에서 2경기 졌는데 5위로 올라가는 게 진짜 이해가 안 갔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신기한 일은 이날 또 벌어졌다. 이날 경기에서 KT는 두산과 정신없는 타격전 끝에 13대8로 승리했다. 중견수 앤드류 스티븐슨이 조명에 타구를 놓쳐 3점을 거저 내줬고, 선발투수 엔마뉘엘 데 헤이수스가 올 시즌 최다인 8실점하고 내려갔지만, KT는 황재균의 만루포로 5회 4득점, 김민혁의 3타점 2루타 등을 묶어 6득점하며 역전에 성공했다.

어렵게 이겼으니 순위가 더 올라갔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날 승리로 KT는 57승 4무 57패 승률 0.500에 복귀했다. 그런데 NC 다이노스도 이날 승리로 53승 6무 53패 승률 5할을 맞췄다. 단독 5위였던 KT는 다시 공동 5위가 됐다. 

경기 후 "지는 줄 알았다"며 더그아웃에서 취재진을 맞이한 이강철 감독은 '이겼는데 공동 5위가 됐다'는 말에 정말이냐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황당한 일은 오늘도 생길 수 있다. 만약 오늘 KT가 이기면 58승 4무 57패로 승률 0.504가 된다. 그런데 만약 NC가 같이 이기면 승률이 0.505로 KT보다 0.001 앞선다. KT가 이기고도 6위로 내려갈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KT가 져서 57승 4무 58패가 되면 승률 0.496이 되고, NC가 함께 질 경우 NC는 승률 0.495가 된다. 이 경우 KT는 지고서도 단독 5위가 되는 신기한 경험을 다시 할 수 있다.

롯데 선수단이 22일 패배 후 팬들에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롯데)
롯데 선수단이 22일 패배 후 팬들에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롯데)

기묘한 이야기는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8월 7일부터 19일까지 내리 9연패를 당하고도 3위 자리를 지킨 롯데 자이언츠다. 롯데는 이 기간 승률이 0.563에서 0.518로 추락했는데도 여전히 3위 자리를 지켰다. 롯데의 순위는 10연패를 당한 20일에서야 4위가 됐다.

22일 경기에서는 11연패를 당해 5위 팀과 승차가 1경기까지 좁혀졌다. 8위 삼성과도 2.5경기 차다. 산술적으로 3연전 한 번에 4위에서 8위가 될 수도 있는 처지가 됐다. 8월 6일 94.9%였던 가을야구 확률은 지금 58.7%로 폭락했다. 반면 29.6%였던 SSG의 확률은 83.4%로 상승했다.

이게 바로 2025년 혼돈의 KBO리그다. 상식이 통하지 않고, 예측이 불가능하다. 이겨도 순위가 내려가고 지면 순위가 올라간다. 9연패를 해도 3위를 지키고, 2연패를 해도 순위가 상승한다. 팬들은 매일 아침 순위표를 확인하며 경기 결과와 사뭇 다른 순위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감독들은 이겨놓고도 순위가 내려갔다는 말을 듣고 당황한다.

이대로라면 어쩌면 시즌이 끝났을 때 7~8개 팀이 5할 승률을 기록하는 기막힌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강철 감독은 "KT 부임 첫 해 5할 승률 하고도 5강에 못 갔었다"며 올 시즌도 5할 승률 팀이 여럿 나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 세상에 이런 시즌이 또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KBO 역사상 가장 특별하면서 기이한 시즌을 목격하고 있다. 

저작권자 © 더게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