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선발승 기념구를 손에 들고 포즈를 취한 문용익(사진=KT)
첫 선발승 기념구를 손에 들고 포즈를 취한 문용익(사진=KT)

 

[스포츠춘추=수원]

"져도 괜찮으니까 네 공을 던지고 믿고 던지라는 말씀대로 던지니까,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KT 위즈 우완투수 문용익이 프로 데뷔 9년 만에 잡은 첫 1군 선발등판 기회에서 인생투를 펼쳤다. 이강철 감독과 코치들의 말처럼 자신있게 자기 공을 던졌고, KIA 타이거즈 강타선에 단 하나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레전드 타자 최형우를 두 타석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운 장면은 압권이었다.

문용익은 30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KIA전에 선발등판, 5이닝 동안 피안타 없이 볼넷 하나만 내주고 삼진 8개를 잡아내는 환상적인 무실점 피칭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문용익을 시작으로 8회까지 팀 노히트 행진을 이어간 KT는 8대 2로 승리하며 전날 1대 10 대패를 설욕했다.

경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조건은 KT에게 불리해 보였다. 상대는 최근 2경기 연속 10득점을 올린 KIA의 폭발적인 타선이었고, KIA 선발로는 외국인 투수 애덤 올러가 나섰다. 반면 KT는 1군 선발 경험이 전무한 문용익이 소형준의 대체 선발로 마운드에 올랐다. 여기에 KT 주포 강백호와 주전 2루수 김상수마저 부상으로 빠지면서 유준규, 강현우, 강민성 등 백업 야수들이 대거 선발 출전하는 상황이었다.

이강철 감독도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았다. 경기 전 이 감독은 "투구수는 크게 상관이 없으니, 적어도 70구 던질 때까지만 잘 던져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초반부터 대량실점으로 무너지지 않고 팀이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정도의 피칭만 바랐던 셈이다.

하지만 문용익은 모든 예상을 뒤엎는 완벽한 피칭을 선보였다. 1회 김호령과 나성범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2회에는 더욱 압도적이었다. 선두타자 최형우까지 세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처리했다. 특히 최형우를 상대로 0-2에서 151km/h 속구 승부로 3구 삼진을 잡아낸 장면은 압권이었다. 문용익은 3회까지 5개 삼진을 잡아내며 퍼펙트 피칭을 이어갔다.

4회에는 수비의 도움도 받았다. 선두 박찬호의 중견수 쪽 안타성 타구를 앤드류 스티븐슨이 다이빙 캐치로 막아냈다. 2사 후 나성범에게 이날 첫 볼넷을 내줬지만, 최형우를 다시 4구만에 삼진으로 처리하며 위기를 넘겼다. 5회에도 세 타자를 깔끔하게 정리하며 5이닝 노히트 무실점을 완성했다.

문용익의 호투에 KT 타선도 화답했다. 4회말 장성우가 애덤 올러를 상대로 솔로홈런을 터뜨려 선제점을 뽑았다. 장성우는 이 홈런으로 6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 행진을 이어갔다. 5회말에는 황재균의 적시타를 시작으로 대거 5점을 쓸어 담으며 6대 0으로 달아났다. 경기 전 예상과는 정반대 전개였다.

6회부터는 불펜진의 릴레이가 시작됐다. 김민수, 이상동, 손동현이 차례로 완벽한 피칭을 이어가며 8이닝까지 팀 노히트노런을 유지했다. KBO리그 역사상 다섯 번째, KT 프랜차이즈 사상 첫 번째 기록까지 아웃카운트 3개가 남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9회초 주권이 박찬호에게 중전안타를 허용하며 기록은 아쉽게 무산됐다. 그래도 8대 2 완승으로 전날의 굴욕을 씻어낸 KT다. 

5이닝 노히트 피칭을 선보인 문용익(사진=KT)
5이닝 노히트 피칭을 선보인 문용익(사진=KT)

이날 전까지 통산 100경기를 모두 불펜으로만 소화한 문용익에게는 특별한 의미의 승리였다. 2017년 삼성 지명으로 프로에 입단해 이날 전까지 통산 4승 2패 1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 5.26만 기록한 '평범한' 투수. 김재윤의 삼성 FA 이적 보상선수로 KT에 합류한 지난해엔 25경기에서 평균자책 12.18을 기록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올 시즌은 달랐다. 퓨처스에서 평균자책 2.78을 기록하며 좋은 흐름을 탔고, 최근 2경기에서는 연속 6이닝을 소화하며 선발 경험을 쌓았다. 스트라이크 위주의 공격적인 피칭과 KT 이적 후 장착한 신무기 포크볼을 앞세워 호투를 펼치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마침내 1군 선발 기회까지 잡았다.

이날도 문용익의 핵심 무기는 포크볼이었다. 73구 중 44구를 포크볼로 구사해 전체 투구의 60.3%를 포크볼로 던졌다. 최고구속이 151km/h인 투수가 패스트볼보다 변화구를 더 높은 비율로 던지는 건 쉬운 선택이 아니다. 이전 1군 등판에서도 문용익은 50% 이상이 패스트볼이고 포크볼은 35% 정도 수준만 구사했다. 그러나 이날은 전혀 다른, 기존 상식에서 벗어난 패턴으로 KIA 타자들의 허를 찔렀다.

"포크볼이 가장 자신 있는 공이어서 많이 던졌다. 제일 좋은 공을 던져야 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용익의 설명이다. 그는 "포크볼은 삼성에서도 던지긴 했는데 그땐 나한테 안 맞는다고 생각했었다. KT에 온 뒤 코치님의 권유로 던지게 됐고, 손에 잘 맞아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 시절 슬라이더가 주무기였던 문용익은 KT에서 포크볼을 장착한 뒤 새로운 투수로 거듭났다. 선발 준비 과정에 대해선 "투구수를 천천히 늘려갔고, 초구 스트라이크 점유율과 4구 안에 승부를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코치님 말씀에 따라 연습한 게 좋은 결과로 나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형우 상대 두 타석 연속 삼진이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 문용익은 "포수 강현우를 믿고 던졌다. 현우와는 퓨처스에서도 배터리를 자주 해봐서, 그냥 하던 대로 하자고 했다"며 "최형우 선배님을 잡은 뒤부터 자신감이 붙었다. 그냥 타자 이름 신경 안 쓰고 바로바로 붙는다는 생각으로 던졌다"고 밝혔다. 

등판 전만 해도 적지 않게 긴장했다는 문용익은 "막상 올라가니까 긴장이 덜 되더라"면서 "등판 전에 코칭스태프가 볼넷에 대한 생각을 없애주셔서, 그 부분이 잘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강철 감독은 문용익에게 "져도 괜찮으니 네 공을 믿고 자신있게 던지다"고 주문했다고. 경기 후 이 감독은 "선발 문용익이 정말 좋은 투구를 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프로 데뷔 첫 선발 승리를 축하한다"고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으로 문용익은 특별한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우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올해 12월에 결혼할 예정인데, 미래 와이프한테 감사하다고 하고 싶다"며 수줍게 웃었다. "계속 기회를 주시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던지겠다. 팀이 이기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좋을 것 같다." 101번째 등판에서 인생 경기를 펼친 문용익의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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