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키움 투수 윤석원.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박민성. (사진=키움 히어로즈, 스포츠춘추 황혜정 기자)
(왼쪽부터) 키움 투수 윤석원.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박민성. (사진=키움 히어로즈, 스포츠춘추 황혜정 기자)

[스포츠춘추]

어릴 적엔 여자가 남자를 동경했다. 자신도 야구가 하고 싶어, 매일같이 훈련에 매달리는 그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꿈을 놓지 않았다.

15년이 흐른 지금, 이제는 남자가 여자를 동경한다. 여자가 남자의 목표였던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뛰는 국가대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부산 대연초등학교 1학년, 같은 반에서 처음 만난 윤석원(키움히어로즈 투수)과 박민성(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투수). 두 사람은 15년의 시간을 지나 서로를 응원하는 ‘야구 선수’가 됐다.

22세 동갑내기인 두 사람의 인연은 초등학교 1학년, 7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은 희미했다. 윤석원은 박민성의 사진을 보고 “누군지 모르겠다”고 했다가 이름을 듣고서야 “아!” 하고 무릎을 쳤다. “민성이가 야구를 하는 건 알았는데, 지금까지 계속해온 줄은 몰랐다”는 놀라움이 뒤따랐다.

박민성의 기억은 조금 더 선명했다. “1학년 6반이었는데, 석원이랑 저만 끝까지 남아서 급식을 먹었다. 석원이가 밥을 잘 안 먹었다"고 웃으며 옛일을 꺼냈다. “2학년부터는 다른 반이었는데, 어느 날 복도에서 마주쳤더니 ‘나 이제 밥 잘 먹는다’며 자랑하더라”는 추억도 덧붙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윤석원은 대연초 야구부에 들어갔다. 이 학교는 양상문 한화 투수코치, 김태룡 두산 단장, 전 롯데 마해영 해설위원, 전 NC 투수코치 손민한 등을 배출한 야구 명문 초교다.

그러나 박민성은 야구부에 들어갈 수 없었다. ‘남자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대신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에 서서 야구부 훈련을 지켜보는 게 그의 일상이었다. “항상 학교 수업 끝나면 운동장에서 야구부 훈련을 지켜보는 게 제 일상이었다. 석원이는 그때도 공을 잘 던졌다.”

키움 윤석원. (사진=키움 히어로즈)
키움 윤석원. (사진=키움 히어로즈)

동경은 결국 실천으로 이어졌다. 박민성은 부산 남구 리틀야구단 취미반에 들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겨우 야구를 시작했다. 늦게 시작했지만 지독했다. 집 옥상에 올라가 혼자 하루 천 번 스윙을 휘두르며 야구를 붙잡았다.

두 사람은 초등학교 2학년 이후 반이 갈라지고, 왕래도 끊겼다. 졸업 이후엔 서로를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 다시 윤석원의 이름을 본 건 2022년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날이었다. 박민성은 “2021년 가을에 신인 지명 결과를 보는데 석원이가 있더라. ‘나 쟤 아는데!’ 하면서 반가웠다. 그때부터 가끔 찾아봤다”고 말했다.

그 무렵 박민성은 이미 한국 여자야구 대표팀 주축으로 성장해 있었다. 2019년 고교 1학년 때부터 태극마크를 달았고,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2023년 여자야구 아시안컵과 월드컵에서는 양상문 감독(현 한화 코치)의 신뢰 속에 선발 투수로 등판해 마운드를 지켰다.

박민성이 캐나다에서 열린 2023 여자야구 월드컵에서 선발 등판한 모습. (사진=스포츠춘추 황혜정 기자)
박민성이 캐나다에서 열린 2023 여자야구 월드컵에서 선발 등판한 모습. (사진=스포츠춘추 황혜정 기자)

윤석원은 2022 키움 2차 4라운드 36순위로 프로에 입단했다. 데뷔는 2023년이었다. 그해 9월 1일 구원등판해 1.1이닝 무실점으로 첫 승리를 따내며 가능성을 보였지만, 2024시즌은 11경기 1패, 평균자책점 11.42라는 좌절이었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2025시즌이 시작되기 전, 윤석원은 근육량을 3kg 정도 늘리고 웨이트 트레이닝 훈련량을 크게 늘렸다. 그래고 마침내 올 시즌 후반기에는 20이닝 16탈삼진, 18경기 중 13경기 무실점이라는 호성적을 내며 영웅군단의 ‘필승조’로 자리 잡았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윤석원에게 박민성을 아냐고 묻자 그는 잠시 눈을 반짝이며 “여자야구 국가대표인가요?”라고 되물었다. 박민성의 유니폼에 새겨진 태극마크를 한참 바라보던 그는 “저도 꿈이 국가대표다. 정말 멋지다. 올해 10월말에 열릴 여자야구 아시안컵에서 좋은 투구 보여주길 바란다. 저도 더 열심히 해 민성이처럼 꼭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민성도 화답했다. “어릴 적부터 키도 크고, 장난꾸러기에 항상 웃고 다녔던 석원아! 프로야구 선수가 된 거 늦었지만 축하해. 나는 야구를 놓지 않고 결국 국가대표 선수가 됐어. 너도 곧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무대에서 멋진 호투 보여주길 기대할게.”

지난 8월 31일, 두 사람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서로를 팔로우하고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15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동창생이자, 똑같이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하는 야구 선수인 두 사람은 이제 서로의 길을 응원하는 동료로서 같은 꿈을 향해 나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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