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미국 여자야구 프로리그(WPBL)가 출범합니다. 그리고 그 역사적인 무대에 한국 여자야구 선수 5명이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아직 프로는 물론 실업 무대조차 없는 한국 여자야구 현실 속에서, 이들의 도전은 단순한 이적이나 진출을 넘어 '가능성의 증명'이자 '미래를 향한 선언'입니다. 스포츠춘추는 WPBL 트라이아웃에 나서는 다섯 명의 선수를 중심으로, 그들의 도전과 성장, 그리고 여자야구의 오늘과 내일을 조명하는 특별 연재를 이어갑니다. <편집자주>

[스포츠춘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마세요. 그것이 비로소 여러분을 이끄는 힘이 될 겁니다.”
미국 워싱턴 내셔널스 파크에서 열린 미국 여자 프로야구 리그(Women’s Pro Baseball League·WPBL) 최종 트라이아웃 후 한국 국가대표 포수 김현아(25)가 남긴 이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는 단순한 소감이 아니라, 현장에 모인 수많은 여성 선수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선언이었다.
한국에서 여자야구 선수로 살아간다는 것은 ‘리그 없는 현실’ 속에서 끝없는 기다림과 싸우는 일이었다. 김현아는 이번 무대를 통해 “실업리그조차 없는 현실에서 드디어 야구선수라는 꿈을 꿀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이 사실이 너무 벅차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어 “각자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이 순간은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시간”이라며 가슴 벅찬 소감을 남겼다.
그의 마지막 한마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마세요”라는 말은 곧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위로이자,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모든 여성 선수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였다.
최종 단계까지 올라 드래프트 지명을 기다리고 있는 국가대표 내야수 박주아(21) 역시 같은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귀국 후 SNS에 “야구를 사랑하는 전 세계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언어도 환경도 달랐지만, 눈빛 하나와 손짓 하나만으로 우리는 그라운드에서 하나가 됐다”며 “간절한 만큼 준비했고, 후회 없는 도전이었다. 이제 더 큰 무대를 향해 계속 달려가겠다”고 남겼다.

비록 1차전에서 탈락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한 내야수 장윤서(20)도 이번 경험을 값지게 받아들였다. 그는 “트라이아웃을 준비하며 하루 종일 야구에만 몰두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얼마나 야구를 사랑하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며 “탈락은 아쉬웠지만 미국이라는 큰 무대에 도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앞으로 더 부딪히며 단단한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현장은 치열한 경쟁 못지않게 뜨거운 연대와 지지의 분위기로 가득했다. MLB닷컴은 “여성 선수들 대부분은 그동안 남자 선수들 속에서 홀로 뛰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여성끼리 함께 경기장을 누빈 경험은 그들에게 더욱 특별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파울볼 하나에도 환호가 터지고, 더블플레이 하나에도 박수가 쏟아지는 풍경은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여는 듯했다.
이날 시구자로 나선 전설 메이블 블레어(Maybelle Blair)의 존재는 현장을 더욱 벅차게 만들었다. 1940~50년대 전미여자프로야구리그(AAGPBL)에서 활약했던 그는 “1954년 AAGPBL이 문을 닫은 뒤 다시는 여자 프로야구가 생길 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눈앞에서 새로운 세대가 그 꿈을 이어가고 있다”며 뜨거운 감정을 전했다.

이번 WPBL 최종 트라이아웃은 단순히 선수를 가려내는 자리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열정을 확인하고, 각자의 꿈을 나누는 연대와 희망의 축제였다.
이제 WPBL은 본격적인 출범 준비에 나선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여성 코치'로 기록된 저스틴 시걸(Justine Siegal)과 사업가 키스 스타인(Keith Stein)이 공동으로 창설한 리그인 WPBL은 내년 상반기 출범을 목표로 오는 9월 말 미국 북동부 지역 6개 구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어 10월 첫 드래프트, 연말에는 프런트 인사 발표 등을 통해 본격적인 출범에 나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