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수원]
똑같은 무대와 똑같은 주연 배우들로도 전혀 다른 결말을 써내려갈 수 있다. 6일 전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팽팽한 투수전을 펼쳤던 롯데 자이언츠와 KT 위즈가 3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다시 만났지만, 이번엔 숨 막히는 타격전 끝에 정반대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KT는 이날 롯데를 9대 8로 꺾으며 시즌 16차전 마지막 대결에서 승리를 거뒀다. 63승 4무 61패(승률 0.508)를 기록한 KT는 롯데(62승 6무 61패·승률 0.504)를 제치고 삼성과 함께 공동 4위로 뛰어올랐다. 롯데는 5위에서 6위로 한 계단 내려앉았다.
경기는 알렉 감보아와 엔마뉴엘 데 헤이수스의 좌완 선발 리턴매치로 막을 올렸다. 두 투수는 지난달 28일 사직야구장에서도 맞대결을 펼친 바 있다. 당시 감보아는 KT 상대 첫 등판에서 6이닝 무실점 호투를 선보였고, '롯데 킬러' 헤이수스도 6이닝을 비자책 1실점으로 버텨내며 치열한 투수전을 연출했었다.
하지만 6일 만의 재대결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KT가 1회부터 감보아의 제구 난조를 파고들었다. 만루 기회에서 황재균의 2타점 적시타와 강현우의 희생플라이로 3점을 먼저 빼앗았다. 롯데도 2회 손호영의 2타점 적시타로 즉각 반격하며 1점 차로 좁혔다.
5회 장성우의 솔로포로 점수차를 벌린 KT는 6회 안현민의 적시 2루타와 장성우의 연타석 홈런으로 3점을 추가해 7대 2로 승부를 굳히는 듯했다. 헤이수스는 6이닝 2실점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고, 감보아는 5.1이닝 4실점으로 일찍 강판됐다.
하지만 경기는 7회부터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롯데 타선이 7회부터 맹렬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손호영과 박찬형의 연속 2루타로 1점을 따라붙은 뒤, 볼넷 두 개로 만든 만루 기회에서 빅터 레이예스가 2타점 적시타를 작렬시켰다.
김민성의 좌익선상 2루타로 한 점차까지 추격한 롯데는 2사 후 터진 한태양의 좌중간 2타점 적시타로 마침내 역전에 성공했다. KT 승리조 손동현과 이상동을 상대로 7회 한 이닝에만 6점을 뽑아내며 8대 7로 경기를 뒤집었다.
KT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7회말 공격에서 지난해와 올시즌 단 한 개의 홈런도 없던 유격수 장준원이 윤성빈을 상대로 극적인 동점 솔로포를 날렸다. 올 시즌 첫 홈런을 가장 중요한 순간에 터뜨리며 8대 8 동점을 만들었다.
8회를 무득점으로 지나간 양 팀은 9회부터 마무리 투수 대결에 돌입했다. 9회초 마운드에 오른 박영현은 롯데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하며 실점 없이 넘겼다. 반면 롯데의 김원중은 흔들렸다. 1사 후 안치영과 허경민에게 연속안타를 허용한 김원중은 이정훈과 9구 승부 끝에 볼넷을 내주며 1사 만루의 위기를 자초했다.
3번 장진혁과의 승부에서 2-1 카운트 상황, 4구째 빗맞은 땅볼 타구가 전진수비를 하고 있던 3루수 박찬형 쪽으로 굴러갔다. 박찬형은 타구를 잡아 홈으로 송구했지만, 불안정한 자세로 던진 공은 포수가 잡을 수 없는 먼 곳으로 빗나갔다. 악송구와 함께 3루 주자가 홈을 밟으며 경기는 그대로 KT의 9대 8 승리로 종료됐다.
9회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박영현은 시즌 5승째를 거뒀고, 0.1이닝 1실점(비자책)으로 결승점을 내준 김원중은 시즌 2패째를 기록했다.
KT 타선에서는 허경민이 올시즌 두 번째 5안타 경기를 기록하며 6타석 5안타 1볼넷으로 100% 출루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이날 5안타와 함께 8시즌 연속 100안타 달성이라는 개인 기록도 세웠다. 장성우는 연타석 홈런을 포함해 3안타 3타점으로 펄펄 날았고, 9번 대타로 나온 안치영도 멀티히트로 힘을 보탰다.
롯데에서는 빅터 레이예스가 5타수 4안타로 안현민을 제치고 타율 단독 1위에 올라섰지만 팀 패배로 아쉬움을 남겼다.

이날 경기에서 KT는 승리 외에도 또 다른 경사를 누렸다. 이날 총 관중 1만4910명으로, 시즌 누적 관중수 84만4161명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기록했던 84만3942명을 넘어선 프랜차이즈 한 시즌 최다 관중 신기록이다. 승리와 공동 4위 도약, 그리고 관중 신기록까지 달성하며 KT는 세 배의 기쁨을 누렸다.
경기 후 이강철 KT 감독은 "선발 헤이수스가 좋은 투구를 하며 자기 역할을 다했고, 불펜에서 김민수와 박영현이 추가 실점 없이 잘 막으며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타선에서 역전을 허용한 후에도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중력을 보여줬다"며 "장준원의 동점 홈런 후 마지막 공격에서 안치영, 허경민이 찬스를 만들고 장진혁이 끝내기 타점을 올리면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5안타 경기의 주역 허경민은 "힘든 경기였다. 야구에서 빗맞은 안타 하나로 흐름이 이렇게 바뀐다는 걸 또 한번 느꼈다"면서 "우리는 정말 뒤가 없고 무조건 승리를 해야 하는 팀이다. 오늘도 역전당했지만 다시 역전할 수 있다는 데서 우리가 강팀이라는 걸 느꼈다"고 소감을 전했다.
8년 연속 100안타에 대해서는 "제 스스로가 정말 화려한 선수가 아니라는 걸 저도 잘 알고 있다"면서도 "홈런 타자가 아니지만 지금까지 야구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저 같은 선수를 보면서 꿈꿀 수 있는 2군 선수들과 어린 유망주들이 있는 것 같아 책임감을 느낀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