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수원 한화전을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난 KT 주전 포수 장성우(사진=스포츠춘추 DB)
23일 수원 한화전을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난 KT 주전 포수 장성우(사진=스포츠춘추 DB)

 

[스포츠춘추]

야구만화 'H2'엔 "안경 쓴 포수는 조심해야 한다구"라는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이 대사를 KBO리그에 적용하면, KT 위즈와 상대하는 좌완투수들은 포수 장성우를 특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지명타자로 나오는 날의 장성우도 조심해야 하고, 무엇보다 장성우가 좌투수 상대 지명타자로 나오는 날에는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굳이 상대하지 말고 그냥 거르는 게 상책일지도 모른다.

장성우는 4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LG 트윈스전에 4번타자 포수로 선발 출전해 1안타 1홈런 1타점을 기록했다. 이날 포함 최근 5경기 4홈런 7타점의 대폭발이다. 8월 30일 KIA전부터 9월 4일 LG전까지 연일 장타쇼를 펼치며 KT의 포스트시즌 경쟁에 힘을 보태고 있다.

최근 장성우의 활약에서 눈에 띄는 건 대부분이 좌완투수 상대 혹은 지명타자 출전이라는 점이다. 31일 KIA전에서는 좌완 양현종 선발 경기에 지명타자로 출전해 4타수 4안타 2타점을 기록했고, 3일 롯데전에서는 좌완 알렉 감보아 선발 경기에 지명타자로 나와 4타수 3안타 2홈런 3타점을 남겼다. 4일 LG전 역시 좌완 송승기가 선발투수로 나온 경기였다.

놀라운 건 장성우의 올시즌 좌투수·지명타자 출전 시 타격 스플릿이다. 우완 투수 상대로는 타율 0.225, OPS 0.640로 평범한 타자지만, 좌완과 만나면 타율 0.354, OPS 1.021로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된다. 지명타자 출전 시 성적은 더 무섭다. 타율 0.429, OPS 1.304로 외국인 타자가 따로 없다.

2022년부터 올해까지 4년간의 기록을 보면 갈수록 우완 상대 기록과 좌완 상대 기록, 포수 출전 시와 지명타자 출전 성적의 차이가 벌어지는 게 눈에 띈다. 2022년만 해도 장성우는 우완 상대 타율 0.264, 좌완 상대 0.247로 오히려 우완에게 더 강한 모습이었다. 지명타자 출전 시에도 타율 0.162로 포수 출전(0.276)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그러나 2023년엔 좌완 상대 타율이 0.359로 급상승하며 우완 상대(0.264)를 완전히 압도하기 시작했다. 지명타자 출전 성적도 표본은 많지 않으나 타율 0.333으로 크게 개선됐다. 2024년에는 이런 경향이 더욱 뚜렷해져 좌완 상대 0.319, 우완 상대 0.244의 격차를 보였다. 그리고 올 시즌에는 아예 다른 차원의 모습이다. 좌완투수 상대 지명타자로 출전했을 때는 더욱 강력해져서 타율 0.438(16타수 7안타), 2홈런 5타점, OPS 1.319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시리즈 KT타선의 핵심 장성우(사진=KT)
이번 시리즈 KT타선의 핵심 장성우(사진=KT)

타자들은 연도마다 좌우 스플릿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어떤 해엔 좌완 상대로 강했다가도 다음해에 달라지는 경우가 허다한데, 장성우는 꾸준히 좌완에 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지명타자 역할에 적응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수비와 공격을 오가는 게 익숙한 타자가 타석과 타석 중간에 벤치를 지키면서 감각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는데, 장성우는 이 역할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모습이다.

KT로서도 '지명타자 장성우'의 활약은 나쁠 것 없다. 36세 베테랑 포수 장성우는 여전히 강철체력을 자랑하지만 과거처럼 전경기에 마스크를 쓰기는 어렵다. 지명타자로 출전한 날 요즘 같은 활약을 해준다면, KT는 장성우에게 적절한 휴식을 주면서도 팀 공격력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포수 유망주들에게 실전 기회를 줄 수 있다. 일석삼조의 효과다.

분명한 건, 경기 전 KT 라인업에 '지명타자 장성우'가 표시돼 있으면 상대팀이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선발투수가 좌완인 날은 경계를 넘어 초비상이다. H2의 대사를 다시 한번 인용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봐, KT 포수 장성우는 조심해야 한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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