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카와이 레너드와 LA 클리퍼스의 뒷돈 계약 의혹이 일파만파로 번지는 가운데 아담 실버 NBA 커미셔너가 신중론을 펼쳤다.
ESPN에 따르면 실버는 11일(한국시간) 뉴욕에서 열린 구단주 회의 후 "단순한 의혹만으론 처벌하기 어렵다"며 "철저한 조사를 통해 실제 부정행위가 있었는지 밝혀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팀이나 구단주, 선수를 징계하려면 입증 책임은 리그에 있다"고도 했다.
문제는 실버의 이런 발언이 클리퍼스와 구단주 스티브 발머를 사실상 두둔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점이다. 4800만 달러짜리 뒷거래 의혹이 터진 마당에 "겉보기에 의심스럽다고 해서 섵불리 행동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게 과연 적절한가.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카와이는 클리퍼스 스폰서인 아스피레이션으로부터 2800만 달러를 받았다. 계약서엔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는 홍보 활동은 거부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있었다. 실제로 카와이는 이 회사를 위한 활동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냥 돈만 받았다는 얘기다.
여기에 회사 공동창업자로부터 직접 받은 2000만 달러 상당의 지분까지 합치면 총 4800만 달러다. 일 한 번 안 하고 챙긴 돈이 665억원에 달한다.
타이밍도 이상하다. 발머가 이 회사에 5000만 달러를 투자한 직후 카와이가 거액을 받았다. 게다가 발머는 카와이보다 높은 가격에 주식을 샀다. 뒷거래가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실버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스포츠에서 대중이 내린 결론이 나중에 완전히 틀린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발머든 카와이든 다른 누구든 똑같이 대우받아야 한다"며 "만약 내가 그런 의혹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우받고 싶은지 생각해본다"고도 했다.
듣고 보니 뭔가 이상하다.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상황인데 대중이 성급하게 판단한다는 식으로 몰고 간다. 커미셔너가 할 소리가 이런 건가.
실버는 화이트슈 로펌을 고용해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전 피닉스 선즈 구단주 로버트 사버의 성희롱 사건도 담당했던 곳이다. 실버는 "최고 수준의 로펌"이라며 조사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말로는 그렇게 해도 이미 징계에 필요한 기준을 높게 잡아놓은 상태다.

클리퍼스는 이미 샐러리캡 관련 전과가 있다. 2015년 디안드레 조던 영입 과정에서 무허가 제3자 후원을 제안해 25만 달러 벌금을 받았다. 2019년에는 카와이의 삼촌이 샐러리캡 우회 혜택을 요구했다는 의혹으로 조사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규모가 다르다. 4800만 달러는 역대 최대다. 만약 유죄가 확정되면 벌금은 물론 드래프트픽 박탈, 심지어 카와이 계약 무효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실버의 태도를 보면 그런 중징계가 나올지는 의문이다.
현행 단체협약(CBA)도 문제다. 선수가 이미 최대 연봉을 받고 있으면 "계약이 시장 가치보다 낮다"는 조항을 적용하기 어렵다. 카와이는 맥스 계약을 받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구단주가 "몰랐다"고 하면 처벌하기 더 어렵다.
실버는 "적법 절차와 공정성을 믿는다"며 "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결국 적당히 뭉개고 무마하겠다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생각해보자. 발머는 NBA에서 손꼽히는 거물 구단주다. 마이크로소프트 전 CEO에 자산이 1000억 달러가 넘는다. 그런 사람을 건드리기가 쉬울까. 게다가 클리퍼스는 새 경기장까지 지었다. NBA 입장에서도 함부로 건드리기 어려운 상대다.
결국 체면치레용 조사를 하고 "증거 불충분"으로 마무리할 가능성이 크다. 기껏해야 벌금 몇 백만 달러 내고 끝날 일이다. 발머에게는 푼돈이다.
실버의 신중론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국 기득권 보호막일 뿐이다. 4800만 달러짜리 뒷거래가 확실해 보이는 상황에서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게 과연 공정한 규정 집행일까.
NBA는 샐러리캡으로 경쟁 균형을 맞춘다고 한다. 하지만 돈 많은 구단주가 뒷돈으로 스타를 사올 수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 이번 사건이 제대로 처벌되지 않으면 다른 구단주들도 비슷한 수법을 쓸 것이다.
문제는 실버가 이미 방향을 정해놓은 것 같다는 점이다. "확실한 증거"를 운운하며 처벌 기준을 높게 잡았다. 이런 식이면 웬만한 증거로는 처벌이 어렵다.
카와이와 클리퍼스 입장에서는 다행일 수도 있다. 하지만 NBA의 공정성과 신뢰는 또 한 번 땅에 떨어질 것이다. 돈이면 다 되는 리그라는 인식만 더 굳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