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컵스 유망주 맷 쇼(사진=MLB.com)
시카고 컵스 유망주 맷 쇼(사진=MLB.com)

 

[스포츠춘추]

프로야구 선수가 정규시즌 경기에 결장하는 이유는 대동소이하다. 부상이거나, 자녀 출산이거나, 가족의 장례식이다. 그런데 시카고 컵스의 신인 내야수 맷 쇼가 22일(한국시간) 신시내티 레즈전을 결장한 이유는 좀 달랐다. 극우 정치 활동가 찰리 커크의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팀이 플레이오프 홈 어드밴티지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막바지 시점에 말이다.

크레이그 카운셀 감독은 이날 0대 1 패배 후 기자회견에서 "맷 쇼는 오늘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고 진실의 일부만을 공개했다. 하지만 그 '친구'가 알고 보니 최근 총격으로 사망한 극우 정치활동가 찰리 커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MAGA 진영에서 마치 역사적 영웅처럼 떠받드는 커크는 반대 진영에서는 인종차별적 발언과 혐오 표현을 일삼아온 문제적 인물로 여겨진다.

커크의 생전 발언을 살펴보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회에서 손가락질 당했을 만한 문제 발언이 수두룩하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인 마틴 루터 킹을 "끔찍한 사람"이라 비하했고, 경찰 폭력에 희생된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쓰레기"라고 불렀다.

"고객 서비스의 멍청한 흑인 여성을 상대할 때면, 그녀가 그 자리에 있는 게 뛰어나서인지 아니면 우대 고용 정책 때문인지 궁금해진다"고 말했고, "흑인 파일럿을 보게 된다면 나는 '와, 얘 자격증 진짜였으면 좋겠네'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현재 메이저리그 선수의 상당수가 흑인과 라틴계, 아시아계 등 다양한 인종 출신인 마당에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발언들을 일삼았다.

커크는 또한 "영국 식민주의가 실제로 세계를 품위 있게 만들었다"며 제국주의를 옹호했고, 1964년 시민권법을 "실수"라고 불렀다. 흑인 여성 정치인들을 겨냥해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만한 두뇌 처리 능력이 없다. 백인의 자리를 훔쳐야 그나마 진지하게 대접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지난 8월 쇼가 커크와 함께 찍은 사진이 SNS에 올라왔을 때부터 조짐은 있었다. 리글리 필드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채 웃고 있는 쇼의 모습이 담긴 그 사진은 이제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힌다. 커크가 총격으로 사망한 9월 10일 밤에도 쇼는 '개인적인 사유'를 이유로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됐다가 대타로 투입됐다.

이 소식을 보도한 스포츠 매체 댓글란에선 쇼의 행동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한 팬은 "정치와 상관없이 이건 너무 미성숙해 보인다. 프로선수로서 팀스포츠를 하고 있고, 플레이오프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라며 "가까운 친척이나 평생에 걸친 깊은 친구도 아닌데 팀을 버리고 팟캐스터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가다니"라고 지적했다.

팀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을 묻는 비판도 이어졌다. "맷 쇼가 팀을 실망시켰다"며 "그가 컵스보다 MAGA 팀을 우선시한다면, 팀에서도 그에게 똑같은 예의로 애리조나에 영원히 머물라고 말했으면 좋겠다"는 격한 반응이 나왔다. 또 다른 네티즌은 "팀 전체가 장례식에 갔다면 어쩔 건가. 이건 바보 같은 일이다. 그냥 자신의 일이나 해라"고 비난했다.

보수 진영의 이중잣대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팬은 "보수주의자들이 전에는 정치를 스포츠에서 분리하고 자신의 일을 하라고 말하지 않았나"라고 비꼬았다. 실제로 NFL 선수 콜린 캐퍼닉이 흑인 탄압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경기 전 미국 국가 연주 시간에 무릎을 꿇었을 때 보수 진영의 반응은 훨씬 적대적이었다.

시카고 컵스 유망주 맷 쇼(사진=MLB.com)
시카고 컵스 유망주 맷 쇼(사진=MLB.com)

커크와 쇼가 정말 개인적 친구 관계였는지도 의문이 제기됐다. 커크는 시카고 교외 출신이지만 쇼는 매사추세츠 출신이고, 나이 차이도 8살이나 난다. 한 네티즌은 "이건 대부분 정치적인 결정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번 추도식은 단순한 장례식이 아니라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의 스테이트 팜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규모 정치 집회에 가까웠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까지 참석해 연설했다. 한 네티즌은 "그 멍청이는 클럽하우스에서 TV로 봐도 됐을 텐데"라며 "이건 TV용으로 제작된 이벤트였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팬은 "팀 전체가 온 주말 내내 엉망으로 경기했다. 아무도 그놈한테 정신 차리고 선수 본분이나 지키라고 말 못했나"라고 비난했다. 타율이 그리 높지 않은 선수가 특별 대우를 받는다며 "완전히 엉망진창인 쇼"라고 혹평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시카고 컵스는 현재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톱 시드 자리를 놓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경쟁하고 있다. 3게임 차로 앞서 있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더구나 팀은 이날까지 4연패를 당하며 올해 들어 최장 연패를 기록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주전급 선수가 빠진 것이다.

쇼는 2023년 메릴랜드대에서 1라운드로 지명받은 23세 유망주다. 그의 부재로 컵스는 저스틴 터너를 3루에 배치했고, 9회 1점 차 상황에서 모이세스 바예스테로스의 대주자를 쓰지 못했다. 경기력에 미친 실질적 타격이 있었던 셈이다.

컵스 팬들의 실망은 더욱 깊다. 한 팬은 "컵스 팬으로서... 아"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또 다른 팬은 "리글리 필드에 가는 이유는 정치 얘기나 연예인 얘기에서 벗어나려는 건데, 이런 것까지 야구장에 들어오다니"고 한탄했다.

쇼는 24일 경기부터 복귀 예정이지만, 이번 일로 생긴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 것 같다. 한 팬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남긴 말이 이번 사태를 요약한다. "내가 좋아하는 팟캐스터가 죽으면, 나도 직장에 휴가 신청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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