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잠실]
해가 지고 어스름이 깔릴 무렵, 우리는 그 시간을 ‘황혼’이라 부른다. 누군가는 선수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한 이들이라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마운드 위에서 꺼지지 않는 빛을 내는 선수들이 있다. SSG 랜더스 노경은(41), LG 트윈스 김진성(40), 그리고 두산 베어스의 고효준(42)이 그렇다.
2025시즌 KBO리그 1군 무대에서 한 경기 이상 등판한 불혹(40세)의 투수는 단 7명. KT 우규민(40), 삼성 송은범(41), 오승환(43), 그리고 노경은, 김진성, 고효준이 그 주인공이다.

특히 올 시즌 SSG의 필승조로 활약한 노경은은 77경기에서 80이닝을 던지며 35홀드, 평균자책 2.14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다. 팀 내 젊은 투수들과 함께 리그 최고 불펜진을 이끌었고, 이로운과 함께 KBO 최초 ‘단일팀 30홀드 듀오’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노경은은 지난 9월 30일 경기에서 홀드를 하나 더 올려 '홀드왕'을 확정짓기도 했다.
LG 구원투수 김진성 역시 대단했다. 77경기에서 69.2이닝, 33홀드, 평균자책점은 3.49를 기록했다. 40세의 나이에도 불펜 투수 중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팀을 지탱했다. 신인 김영우가 59.2이닝을 던진 것을 감안하면, 베테랑의 존재감은 더 크게 다가온다.

고효준은 이들보다 한 발 앞선 선배다. 지난해 SSG에서 방출된 뒤 올해 4월 두산에 입단하며 다시금 마운드에 섰다. 지난 30일 잠실에서 열린 LG와의 원정경기를 앞두고 스포츠춘추와 만난 그는 여전히 건재한 동년배들의 활약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자극이 많이 된다. 두 선수는 원래부터 몸 관리를 잘하는 선수들이다. 솔직히 피지컬부터 다르다고 느낀다. '강골' 같다고 해야 하나. 확실히 체격 자체가 다르다.”
존경의 마음도 숨기지 않았다. “노경은, 김진성은 정말 대단하다. 존경을 넘어 그냥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지금 있는 고참들이 야구를 얼마나 더 오래 할지는 모르겠지만, 저 두 선수만큼 활약할 수 있는 선수가 과연 또 나올까 싶다.”
그러면서도 고효준은 더 많은 ‘노경은·김진성’ 같은 이들이 나오길 바랐다. “이제는 이런 선수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동안 이렇게 오래 활약한 선수가 많지 않았잖나. 두 선수 덕분에 구단들이 베테랑을 보는 시선도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한 그는 "의학과 트레이닝 방법이 발전한 것도 40대 이상 선수들이 리그에 많아진 큰 이유"라고 했다.
특히 한솥밥을 먹었던 노경은의 '루틴'은 고효준에게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는 웃으며 “노경은의 몸 관리는 무서울 정도”라고 표현했다. 그는 “경기 끝나고도 루틴을 끝까지 지켜내는 걸 후배들이 꼭 배웠으면 한다. 요즘은 경기만 끝나면 빨리 퇴근하려는 젊은 선수들이 꽤 많은데, 우리는 야구를 업으로 삼는 직장인 아닌가. 돈을 받는 만큼 자기 발전을 위해 연습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계를 넘어서는 노력도 역설했다. 고효준은 “휴식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노경은은 휴식보다 연습을 더 중시한다. 본인의 한계가 분명히 있을 텐데도 계속 넘어가려 하잖나. 같은 선수로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 속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후배들이 이런 베테랑들의 자세와 태도를 보고 배워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KBO 리그에 오랫동안 활약하는 선수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꺼지지 않는 불빛처럼, 노경은, 김진성, 고효준의 ‘황혼’은 쉽게 어스름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파장으로 리그를 밝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