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무대에 도전하는 송성문(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미국 무대에 도전하는 송성문(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스포츠춘추=고척]

"오히려 제가 역질문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9월 30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의 정규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송성문이 취재진 앞에서 던진 말이다. 자신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송성문은 오히려 기자에게 되물었다. 본인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미래. 이날 경기는 어쩌면 송성문에게 키움 유니폼을 입고 치르는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었다.

올겨울 송성문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도전한다. 하지만 앞서 진출한 이정후나 김혜성과 달리, 송성문의 미국행은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다. 내년 이맘때는 미 프로야구 무대를 호령하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여전히 키움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에서 뛰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미국 재도전'을 선언하고 비슷한 인터뷰를 다시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송성문 본인도, 취재진도, 아무도 알 수 없다.

키움 팬들은 이미 이런 식의 이별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과거 강정호, 박병호, 김하성이 이렇게 떠났고 2년 전에는 이정후와, 지난해에는 김혜성과 작별을 고했다. 또 다른 예비 메이저리거의 마지막을 배웅하려는 듯 이날 고척에는 월요일 경기임에도 16,000명의 만원 관중이 찾았다. 경기 전 전광판에는 송성문의 활약상을 담은 영상이 흘러나왔다. 마치 고별 영상처럼.

2년 전 이정후의 고별전에는 ML 5개 구단 스카우트가 고척돔을 찾아 이정후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다. 샌프란시스코 단장이 직접 방문해 이정후의 플레이에 환호했고, 시즌 뒤 초대형 계약으로 이어졌다. 김혜성 때도 한국은 물론 미국 현지에서 많은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반면 송성문의 미국행을 둘러싼 분위기는 냉정하게 말해 당시만큼 뜨겁지는 않은 게 사실이다. 이날 고척돔에는 보스턴 레드삭스 1개 구단 스카우트만 찾았다. 이미 충분히 관찰한 뒤라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미국 현지의 미지근한 온도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이유를 설명했다. "김하성은 유격수, 이정후는 중견수, 김혜성은 2루수라는 포지션이다. 이 포지션은 미국에서도 매우 중요하고 가치 높은 포지션이다. 이 포지션에서 일정 수준 이상 공격력을 갖춘 선수를 찾기 쉽지 않다." 반면 송성문의 주포지션은 3루수다. 이 스카우트는 "3루수는 미국에서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들의 포지션이다. 평균을 훨씬 능가하는 공격력을 증명해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데, 이 때문에 구단마다 송성문을 보는 평가가 엇갈린다."

20홈런-20도루를 기록한 송성문. (사진=키움 히어로즈)
20홈런-20도루를 기록한 송성문. (사진=키움 히어로즈)

그렇다고 송성문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미국에서 오퍼하는 팀이 반드시 나올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앞의 스카우트는 "관심을 보이는 팀은 있다. 오퍼하는 팀이 있을 거다. 다만 앞서 진출한 이정후나 김하성, 김혜성 수준의 조건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제시받은 조건을 키움과 선수 본인이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일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송성문은 키움과 6년 총액 120억원의 연장계약을 맺은 상태다. 미국에 진출하면 기존 연장계약은 자동으로 파기된다. 미국에 다녀온 뒤 비슷한 조건의 계약을 다시 맺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송성문 입장에서는 최소한 비슷한 수준의 조건은 되어야 명분과 실리를 챙길 수 있다. 구단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송성문은 도전을 선택했다.

"미국에 정말 갈 수 있을 것 같나"는 질문에 송성문은 난감한 듯 미소부터 지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오히려 내가 물어보고 싶다. 어떻게 말해야 하나? 참 어렵다." 송성문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미국) 가는 것처럼 말했다가 이제 또 하나의 흑역사가 생성되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된다. 어쩌면 건방진 말인 것 같지만, 아무튼 후회는 없다."

송성문은 겸손하게 말했지만, 올해 송성문이 보여준 활약을 보면 결코 저평가될 선수가 아니다. 9월 30일까지 스탯티즈 기준 WAR(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 8.54승으로 리그 전체 1위를 기록했다. 괴물투수 코디 폰세(8.16승)보다도 높다. 지난해 MVP 김도영의 WAR 8.59승과 거의 같은 수치다. 지난해 김도영이 슈퍼스타였다면, 올해 송성문 역시 슈퍼스타다. 팀 성적 부진으로 충분한 인정을 못 받고 있지만, 송성문이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김도영급이고 폰세급이다.

송성문은 144경기 전 경기에 출전해 타율 0.315에 26홈런 90타점 103득점 25도루 OPS .917을 기록했다. 안타, 득점 2위, 2루타 3위(37개), 장타율 6위(.530), OPS 6위, 타율 7위, 타점 8위 등 각종 타격 지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KBO리그 역대 58번째 20홈런-20도루 클럽에도 가입했다. 평범하고 별 것 아닌 선수가 미국 진출 헛꿈을 꾸는 게 아니다. 현재 한국야구 최고의 선수가 최고의 무대에 도전하는 것이다.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송성문은 올 시즌을 돌아보며 "초반 출발은 좋지 않았다. 그것까지 이겨내면서 3할 타율도 했고 작년에 못한 20-20도 해봤다"며 "타격 성적만 보면 '월등하게 뛰어나다, 최고의 선수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전 경기에 출전했고 수비도 주루도 열심히 했다. 그런 점들이 수치로 반영된 것 같아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도전은 선수 본인의 선택이다. 모든 선수가 이정후처럼 대형 계약을 따내고 엄청난 스타로 주목받으며 가야 하는 건 아니다. 일본프로야구만 해도 오타니 쇼헤이, 사사키 로키 등 대형 선수들도 있지만 소규모 계약으로 도전해서 조용하게 활동하는 선수도 많다. 야구선수로서 더 높은 무대에 도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미국야구에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설사 미국 진출에 실패하거나 대형 계약을 받지 못해도 결코 비난하거나 손가락질할 이유는 없다.

본인은 '흑역사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지만, 이는 흑역사가 아닌 자랑스러운 도전이다. 송성문은 "내년에 미국에 가든 한국에 남든, 2년간 시즌을 치르면서 느낀 아쉬운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런 부분을 채워나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할 거다. 불확실한 미래지만 어디서든 야구하는 건 똑같다. 노력하다 보면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29일 잠실 LG-키움전 송성문이 3루타를 치자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는 MLB 스카우트들. (사진=티빙 중계 갈무리)
29일 잠실 LG-키움전 송성문이 3루타를 치자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는 MLB 스카우트들. (사진=티빙 중계 갈무리)

송성문은 2015년 신인드래프트 2차 5라운드 49순위로 키움(당시 넥센) 유니폼을 입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그는 주장이자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그 10년 중 8년은 팀에 큰 보탬이 되지 못했다면서 "팬들에게 항상 죄송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송성문은 "사실 팀에 큰 보탬이 되지 못하는 선수였다가 이제 2년 좋은 시즌을 보냈는데, 또 이렇게 떠날 수도 있다는 선택지가 생긴 거니까 팬들에겐 죄송하고, 감사하기도 하다"면서 "내가 거기에 보답하는 선수였나라는 질문을 했을 때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래서 감사하면서도 죄송한 마음이 더 크다"고 털어놨다.

주장이자 선배로서 후배들을 향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주장으로서는 사실 좀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내가 아닌 누구든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최하위 팀 주장은 더욱더 힘들다는 걸 많이 느꼈다. 잘 이끌어갈 수 있는 형이나 동생, 동료가 주장을 하면 그래도 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키움이 비록 올해는 최하위를 했지만, 비시즌 때 잘 준비하면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생각한다"며 "에이스 안우진이 돌아오지만 우진이를 받쳐줄 타자들도 중요하고, 우진이 뒤에 나가는 투수들도 중요하다. 모든 구성원들이 긴 비시즌을 잘 활용해야 할 것 같다. 나부터도 비시즌에 열심히 훈련할 생각이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정후, 김혜성에 대해 "잘 될 걸 예상한 후배들이었지만 멋있다고 생각했고, 응원하는 마음이 컸다"는 송성문은 이제 그 자리에 자신이 서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안 믿긴다. 이렇게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조차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열심히 한 해를 뛰었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괜찮은 시즌을 보낸 것 같다. 후회 없는 시즌인 건 확실한 것 같다." 후회 없는 도전을 선택한 송성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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