롭 맨프레드(사진=MLB.com)
롭 맨프레드(사진=MLB.com)

 

[더게이트]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중계권 구도가 미로처럼 복잡해졌다. 한 경기를 보려면 어느 플랫폼에 가입해야 하는지조차 헷갈릴 정도다.

MLB는 20일(한국시간) NBC, 넷플릭스, ESPN과 새 중계권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MLB는 폭스, TNT 스포츠, ESPN, NBC, 애플, 넷플릭스 등 무려 6개 플랫폼과 중계 계약을 맺게 됐다. 미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은 "(플랫폼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복잡한 중계권 구도는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의 판단 착오에서 시작됐다. 디 애슬레틱은 "맨프레드가 거의 10억 달러(1조4000억원)에 가까운 실수를 저질렀다"고 혹평했다.

맨프레드는 ESPN과 중계권을 계약할 때 자신들이 먼저 계약을 해지할 조항을 요구했다. 이에 ESPN도 같은 권리를 달라고 했고, 맨프레드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ESPN이 실제로 그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ESPN은 올해 2월 2026~2028년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원래 3년간 16억5000만 달러(2조3100억원)를 지급하기로 한 계약이었다. 선데이나이트 베이스볼, 플레이오프 1라운드, 홈런더비 중계권이 포함됐다.

맨프레드는 발끈했다. 구단주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ESPN을 "쪼그라드는 플랫폼"이라고 비난했다. 디 애슬레틱은 "10대 청소년이 '네가 나랑 헤어지자고? 내가 먼저 헤어지자는 거야!' 하는 것 같았다"고 비꼬았다.

ESPN의 선데이나이트 베이스볼을 NBC가 가져간다.
ESPN의 선데이나이트 베이스볼을 NBC가 가져간다.

NBC·넷플릭스 새로 계약했지만 그래도 9억불 손실

맨프레드는 ESPN 대신 새 파트너를 찾았다. NBC와 넷플릭스다. NBC·피콕은 선데이나이트 베이스볼과 플레이오프 1라운드를 연간 약 2억 달러(2800억원)에, 넷플릭스는 개막전·홈런더비·꿈의 구장 경기를 연간 5000만 달러(700억원)에 가져갔다.

문제는 금액이다. NBC와 넷플릭스가 3년간 지급하는 돈을 합쳐도 7억5000만 달러(1조500억원)에 불과하다. ESPN이 내기로 했던 16억5000만 달러보다 9억 달러(1조2600억원)나 적다.

맨프레드는 "ESPN, NBC 유니버설, 넷플릭스의 조합이 훌륭하다"며 "도달 범위를 확장하고 수익을 늘릴 것"이라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맨프레드는 결국 ESPN과 재계약했다. 원래 금액인 16억5000만 달러 그대로다. 대신 MLB는 자존심을 구겼다. 수년간 직접 운영해온 'MLB.TV'를 ESPN에 넘긴 것이다.

MLB.TV는 연간 150달러(21만원)에 자기 지역 팀을 제외한 모든 경기를 볼 수 있는 인기 플랫폼이다. MLB가 오랫동안 팔기를 거부했던 알짜 자산이다. ESPN은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미네소타 트윈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콜로라도 로키스, 시애틀 매리너스 등 6개 구단의 지역 중계권과 정규시즌 30경기 독점 중계권도 확보했다.

디 애슬레틱은 "만약 ESPN이 계약을 파기하지 않았다면 MLB는 16억5000만 달러를 받으면서 MLB.TV도 계속 운영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론적으로 지금보다 두 배의 돈을 손에 쥘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NBC 스포츠가 MLB와 새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
NBC 스포츠가 MLB와 새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

넷플릭스로 양키스 개막전 본다

새 계약에 따라 한국을 제외한 전세계 야구 팬들은 2026시즌부터 여러 플랫폼을 오가며 야구를 봐야 한다. 넷플릭스는 개막전인 뉴욕 양키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경기를 독점 중계한다. 넷플릭스의 첫 MLB 독점 중계다.

NBC의 첫 경기는 개막 둘째 날 밤 LA 다저스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경기다. 다저스가 월드시리즈 우승 배너를 게양하는 날이다. 선데이나이트 베이스볼은 NBC가 맡는다. NFL, NBA에 이어 MLB도 NBC의 '선데이나이트' 프랜차이즈에 합류한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는 NBC와 피콕에서 볼 수 있다. 시리즈가 3경기까지 가는지에 따라 8~12경기가 중계된다. 피콕은 일요일 오전 늦은 시간대 경기도 중계한다. 이전에는 로쿠가 연간 1000만 달러(140억원)에 중계했던 경기다.

결국 피해는 팬들에게 돌아간다. 양키스 개막전을 보려면 넷플릭스에, 선데이나이트 베이스볼 경기를 보려면 NBC나 피콕에, 플레이오프를 보려면 또 다른 플랫폼에 가입해야 한다. 월드시리즈는 폭스가, 플레이오프 상당 부분은 TNT 스포츠가 중계한다. 애플은 금요일밤 경기를 맡는다.

디 애슬레틱은 "플랫폼이 너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곳들과 계약했다"고 평가했다. 폭스·NBC·ESPN 같은 메이저 방송사와 넷플릭스·애플 같은 대형 스트리밍 서비스들이다. MLB가 한때 일요일 경기를 로쿠 같은 마이너 플랫폼에 연간 1000만 달러에 팔았던 것에 비하면 진전이라는 의미다.

맨프레드는 2029년 재협상에서 만회할 기회를 갖는다. 폭스, TNT 스포츠, 이번에 새로 체결한 ESPN·NBC·넷플릭스 계약이 모두 2028시즌 후 만료되기 때문이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유튜브, CBS 스포츠 등도 관심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디 애슬레틱은 "맨프레드는 다음 협상에서 올바른 플랫폼을 찾아야 하고, 돈도 제대로 받아야 한다"며 "더 이상 볼넷을 얻을 상황에서 헛스윙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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