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깜짝 카드를 위한 연막작전인가, 여론을 의식한 몸조심인가. 애초 1라운드 지명이 유력하다고 알려졌던 고려대 투수 김유성을 둘러싼 구단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학교폭력’ 전력이 있는 선수의 상위 지명에 반대하는 여론이 여전해, 3라운드 이후에나 지명이 이뤄질 거란 예상까지 나온다.
올해 KBO 신인드래프트는 9월 15일에 열린다. 대부분의 주요 고교 전국대회가 끝난 가운데, 10개 구단은 이번 주부터 자체 회의와 시뮬레이션을 통해 지명 후보를 추릴 예정이다. 일부 구단은 이미 1라운드 지명자를 확정하고 2라운드 이후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전체 1, 2순위는 사실상 확정적이다. 서울고 우완 김서현과 충암고 좌완 윤영철이 99.99% 확실하다는 게 대다수 야구 관계자와 스카우트의 예상이다. 둘의 순서가 바뀔 수는 있어도 3순위 이하로 내려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편 3순위 지명권을 가진 롯데 자이언츠는 투수는 물론 야수 지명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4순위부터가 안갯속이다. 한 구단 스카우트는 “올해는 투수들의 기량이 빅 3(심준석, 김서현, 윤영철)을 제외하고는 고만고만하다. 140km/h 이상 던지는 투수는 많은데 눈에 확 띄는 매력적인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고 고민을 전했다.
1라운드 지명선수는 구단들끼리 미리 공유하던 전통도 올해부터 없던 일이 됐다. 스카우트 질서를 지키지 않는 특정 구단에 대한 나머지 9개 팀의 반감이 원인이다. 모 구단 스카우트는 “다른 구단은 다 첫 번째 지명 선수를 공유하는데, 정작 자기들 차례에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안 그래도 스카우트 사이에 비매너로 원성이 자자했는데 결국 올해 큰 사고를 쳤다”고 불만을 표했다.
이 스카우트는 “하도 매년 같은 일이 반복돼서 아예 올해부터는 전혀 공유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구단이 누굴 지명할지 전혀 모른다”고 밝혔다.
“1라운드 지명 확실”→”2라운드도 어렵다” 김유성 둘러싼 분위기 급변 이유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연히 ‘즉시 전력감’ 대학 투수 쪽으로 눈길이 향한다. 드래프트를 몇 달 앞두고 일부 구단 사이에서 고려대 2학년 우완 김유성의 1라운드 지명 가능성이 제기된 것도 그래서다. 김유성은 2년 전 신인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의 1차지명을 받았지만, 지명 직후 과거 학교폭력 가해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명이 취소됐다. 이후 고려대에 진학해 2학년인 올해 대학 에이스 투수로 올라섰고, 신설된 ‘얼리 드래프트’ 제도를 통해 프로 입단을 노린다.
애초 구단들은 김유성의 1라운드 지명을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던지는 공만 놓고 보면 1라운드는 물론 전체 1순위도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140km/h 후반대 강속구에 변화구, 제구력, 경기운영 등 모든 면에서 즉시 전력감이란 평을 받았다. 다들 ‘우리는 아니다’라면서도 “1라운드에서 뽑는 팀이 반드시 나올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드래프트를 보름 앞두고 분위기가 또 바뀌었다. 8월 29일 스포츠춘추의 취재에 응한 한 구단 관계자는 “김유성의 지명 순번이 예상보다 뒤로 밀릴 것 같다”면서 “상위 라운드에서 지명하기는 부담스럽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라고 전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스카우트들도 비슷한 의견을 전했다.
과거 학폭 이슈가 100% 말끔하게 해결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한 스카우트는 “학폭 이력이 있는 선수를 지명하는 기준은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라며 “지난 2년만 봐도 학폭 이슈가 있는 선수를 구단이 지명한 사례가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피해 학생 쪽과 합의하고 각서를 작성한 경우다. 프로 지명 이후 문제가 불거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기에 지명이 가능했다”고 전했다.
반면 김유성은 아직 피해자의 ‘용서’를 받지 못한 상태다. 한 구단 관계자는 “김유성 측이 2년 전 NC의 지명 철회 이후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결과는 무혐의였다. 그 이후 진심 어린 사과나 문제 해결 의지를 보였다는 얘기를 들은 바가 없다”면서 “지명 이후 언제든 문제가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구단은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1라운드 지명은 물론 2라운드 지명도 부담스럽다는 게 대체적인 구단들의 분위기다. 다른 구단 관계자는 “신인 전체 1순위 지명은 구단의 10년 농사를 좌우하는 중요한 결정이다. 구단 고위층은 물론 그룹까지 보고가 올라간다. 만약 1번 지명이 실패로 돌아가면 여러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과거 1차지명 기준 2차 1라운드에 해당하는 2라운드 지명권도 마찬가지. 이 관계자는 “1라운드, 2라운드까지는 실패할 위험성이 적고 실링이 높은 선수에게 지명권을 사용하는 게 상식적”이라는 생각을 전했다.
모 구단 스카우트는 “만약 김유성을 지명하는 구단이 나온다면 3라운드 이후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2년전 미국행을 선언한 나승엽을 롯데가 ‘도박성’으로 지명한 순번도 2차 2라운드로 전면드래프트 기준 3라운드였다. 몇몇 구단 관계자는 “2라운드 지명권 2장을 보유한 키움의 선택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물론 드래프트까지 2주가 남은 만큼 변수는 있다. 한 구단 스카우트 책임자는 “지명 전까지 김유성 측이 피해자와 진심어린 사과와 화해를 한다면 다르게 생각할 여지가 있다. 선수의 미래를 위해 부모가 올바른 판단을 하길 바란다”고 했다.
또 말로만 몸을 사리는 척하다가 실제 지명 때는 김유성을 ‘얼리픽’하는 구단이 나올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실제 한 스카우트는 “다들 연막작전을 펴는 것 아닌가. 나는 여전히 2라운드 전에 김유성이 지명될 거라고 본다”며 소수의견을 제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