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2022년 가을이 끝났다(사진=LG)
LG의 2022년 가을이 끝났다(사진=LG)

[스포츠춘추]

구단 역사에서도 손꼽을 만큼 유리한 조건에서 시작한 LG 트윈스의 가을이 충격적인 플레이오프 탈락으로 끝났다. 시리즈 내내 장점은 전혀 살리지 못했고 약점만 더 크게 부각됐다. 유리한 링을 굳이 불리하게 만들어놓고 부담과 불안에 쫓기다 스스로 무너졌다. ‘가을 호구’라는 놀림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된 LG는 2년 연속 업셋의 희생양이 되는 아픔을 맛봤다.

이번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절대 다수의 전문가는 LG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예상했다. LG는 정규시즌 87승 2무 55패로 프랜차이즈 최다승 기록을 세웠다. 1위 SSG보다도 높은 기대승률(0.635)을 기록했고 팀 평균자책, 득점, 장타율 등 거의 모든 팀 기록에서 최상위권에 오르며 압도적 전력을 과시했다.

플레이오프를 앞둔 모든 조건도 LG 쪽에 유리했다. LG는 정규시즌 마지막날 의도된 총력전으로 KT 위즈를 4위로 떨어뜨리고 키움을 3위로 만들었다. 키움이 KT와 준플레이오프 5차전 혈투 끝에 에이스 안우진 카드를 소모한 것도 LG 쪽엔 호재였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키움이 실책으로 자멸하면서 LG는 2002년 이후 20년 만에 첫 판을 승리했다. 우주의 기운이 LG로 몰렸다. 일부러 지고 싶어도 지기 힘든 조건이 완성됐다.

하지만 2차전을 어이없게 내주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정규시즌 때 에이스였던 아담 플럿코가 1.2이닝 6실점으로 무너졌다. 뒤늦게 불펜을 총동원해 추격전을 펼쳐봤지만 6대 7 한 점 차로 무릎을 꿇었다. 3차전 키움 선발이 안우진인 것을 감안하면 반드시 2차전을 잡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3차전에선 김윤식-안우진의 선발 싸움에서 이겼지만 믿었던 불펜이 무너져 역전패했다. 경기후 류지현 감독의 인터뷰에서 ‘부담’이란 단어가 처음 나왔다. 4차전에서도 에이스 케이시 켈리의 생애 첫 3일턴 초강수를 띄웠지만 결과는 패배로 끝났다.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류 감독은 “꼭 이겨야 한단 선수단 부담감이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며 다시 LG의 금지어인 ‘부담’을 말했다.

1차전 때만 해도 분위기 좋았는데...승리의 하이파이브(사진=LG)
1차전 때만 해도 분위기 좋았는데...승리의 하이파이브(사진=LG)

플레이오프 기간 LG는 자신들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 정규시즌 LG 불펜은 리그 최강이었다. 그 불펜이 3차전과 4차전에서 와르르 무너졌다. 정규시즌 팀 OPS 2위(0.746)였던 최강 타선도 시리즈 들어 0.619로 저조했다. 외국인 타자 없는 LG 타선은 키움 야시엘 푸이그가 시리즈 내내 맹타를 휘두르는 모습과 대조를 이뤘다.

반대로 LG의 약점은 포스트시즌에 와서 극대화됐다. LG 선발진의 약점은 산천초목이 다 아는 사실. 켈리, 플럿코 외엔 확실하게 믿음 가는 선발이 없는 LG는 1, 2차전을 반드시 다 잡으면서 3차전 이후를 풀어가는 전략이 필요했다.

그런데 플럿코가 시즌 막판 등 부상 여파로 실전 투구를 건너뛰고 시리즈를 맞이하며 변수가 생겼다. 연습경기에서 했어야 할 실전 투구를 중요한 포스트시즌에서 한 안일함의 결과는 ‘제 2의 갈베스’였다. 확인할 길 없는 에이스의 마음 챙기느라 교체 타이밍도 늦었다. 만약 6실점이 아니라 3, 4실점으로 끊었다면 2차전 결과는 달랐을지 모른다.

가뜩이나 3선발 이후가 불확실한 전력에 2선발까지 흔들리면서 LG의 선발 약점은 더 크게 부각됐다. 만약 4차전을 켈리 카드로 잡았다고 해도 5차전은 어떻게 할 것이며, 한국시리즈는 어떻게 치를 생각이었을까. 

전력도 키움보다 강하고, 1차전을 이겼는데도 LG는 이상할 정도로 키움에게 심리적으로 지고 들어갔다. 류 감독은 2차전 패배 뒤 플럿코 교체 타이밍 질문에 ‘5차전’을 언급했다. 1차전을 먼저 잡은 팀 입장에서 시리즈가 5차전까지 가는 건 최악의 상황이다. 

4차전 켈리 기용을 일찌감치 정해둔 것도 우리 팀 선발진에 자신이 없다고 미리 자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키움은 시즌 때 버리는 카드였던 타일러 애플러를 포스트시즌에서 요긴하게 활용해 2승을 챙겼다. LG 3선발 이민호는 포스트시즌 1경기도 나오지 못했고 임찬규는 패전처리로 소모됐다. 

4차전 켈리 카드를 생각했다면 2차전에서 더더욱 플럿코 교체를 결단할 필요가 있었다. LG는 2차전 에이스를 배려하느라 초반 대량실점을 방치했고, 경기에 패하면서 유리한 링을 스스로 불리하게 만들었다. 포스트시즌에 좋은 기억이 없는 팀 LG의 힘은 한번 상대 쪽으로 넘어간 흐름을 다시 뺏어올 만큼 강하지 못했다. 

LG는 강자이자 유리한 링에서 싸우면서도 자신감 있게, 과감하게 시리즈를 주도하지 못했다. 상대와 상황에 끌려다니며 자꾸만 스스로 코너로 향했다. 시계 세리머니도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심리적 압박에 취약한 LG는 결국 갈수록 커지는 부담과 불안을 극복하지 못했다. 시리즈 탈락 위기와 난생 처음 경험하는 3일턴의 압박은 에이스 켈리에게조차 무리였다. 

물론 LG가 올 시즌 144경기에서 거둔 성과를 단 4경기 만으로 깎아내리고 부정할 순 없다. 류지현 감독은 “올 시즌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투수진이 많이 어려졌다. 야수진은 30대들이 몰려 있는데 4년 연속 가을야구를 경험하면서 많이 느끼고 배운 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쌓인 경험이 팀 내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에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할 수 있다”고 희망을 찾았다.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두산 베어스도 2001년 우승 이후 2015년 다시 정상에 서기까지 수많은 가을야구 실패를 경험한 바 있다. 최근 4년 연속 가을야구에 진출하며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나가는 팀이 된 건 분명 수확이다. 올시즌의 아픔을 발판으로 내년 시즌에는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유리한 조건을 살리지 못하고 스스로 부담감이란 괴물을 만들고 키운 LG의 포스트시즌 전략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비시즌 선발투수, 포수 포지션에 전력 보강도 필수다. 현장에만 책임을 돌릴 게 아니라 외국인 타자 없이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상황을 만든 프런트 오피스도 통렬한 자기반성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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