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의 안방마님 김형준(사진=NC)
NC의 안방마님 김형준(사진=NC)

 

[스포츠춘추=창원]

10월 19일 2023 신한은행 SOL KBO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 결정 1차전이 열린 창원NC파크는 내내 흥분과 열기로 들썩들썩했다. 개장 이후 첫 가을야구를 직접 보려는 12,299명의 관중이 NC파크를 찾았다. 서호철의 역전 만루홈런이 나온 순간엔 야구장이 뒤집어질 듯한 함성이 터졌고, 이 함성은 이후 서호철이 등장할 때마다 반복됐다. 

이날 서호철만큼이나 여러 차례 환호와 박수를 받은 선수가 있다. NC의 젊은 안방마님 김형준이다. 첫 환호성은 4회초 수비에서 나왔다. 2사 후 볼넷으로 나간 두산의 도루왕 정수빈이 김재호 타석 2구째에 빠르게 2루로 달렸다. 그러나 김형준은 이를 완벽한 레이저 송구로 잡아냈다. 두산 벤치가 비디오 판독의 ‘비’자도 꺼낼 수 없는 완벽한 아웃. 0대 3으로 뒤진 상황인데도 NC 관중석에선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두산 쪽으로 넘어갈 뻔한 경기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플레이였다. 이날 NC 선발 태너 털리는 1회부터 흔들리면서 매이닝 점수를 내줬다. 3회까지 3점만 준 게 다행일 정도로 제구와 구위가 모두 좋지 않았다. 만약 4회에도 또 점수를 줬다면, 3회까지 곽빈에게 꽁꽁 묶인 NC로선 추격 의지가 꺾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김형준이 정수빈을 잡아내며 두산의 좋은 흐름을 막았고, NC는 바로 4회말 공격에서 한꺼번에 5점을 뽑아 점수를 뒤집었다. 서호철이 역전 만루포를 쏘아 올렸고, 김형준이 백투백 홈런으로 치명타를 안겼다. 곽빈의 슬라이더 실투를 놓치지 않고 좌측 담장으로 날려 보낸 김형준이다. 

“곽빈 공을 많이 쳐보지 못해서 생소하고 처음 보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첫 타석에선 공을 보는 데 초점을 맞췄고, 두 번째 타석에선 빠른 볼이 워낙 좋으니까 거기에 초점을 맞췄는데, 나가다가 걸렸습니다. 홈런 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는데, 솔직히 나가다 맞은 느낌이에요.”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김형준의 말이다. 

김형준의 홈런은 하나로 그치지 않았다. 8회에는 승부에 완전히 대못을 박는 홈런을 날렸다. 11대 6으로 앞선 2사 1, 2루에서 홍건희의 -이번에도- 슬라이더를 잡아당겨 좌측 담장 너머로 보냈다. 야구장에 펄럭이는 두산 깃발이 백기처럼 보인 순간이다. 

“점수를 낼 수 있을 때 많이 내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김형준의 말이다. “그때도 홈런을 노리고 친 건 아니지만, 제가 노리는 코스 구종을 보고 자신 있게 돌렸는데 또 홈런이 나왔죠. 저 자신도 놀랐고 기뻤어요. 그게 우리 쪽으로 다시 분위기를 갖고 올 수 있었기에 정말 기뻤습니다.”

이날 김형준의 홈런 2개는 역대 와일드카드 결정전 최연소 홈런 기록이다. 김형준은 23세 11개월 17일에 홈런을 터뜨려, 종전 NC 정진기가 2017년 세운 24세 11개월 25일 기록을 깨뜨렸다. 또 2017년 정진기, 2018년 KIA 이범호에 이어 역대 와일드카드 세 번째 멀티홈런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김형준의 첫 홈런 장면(사진=NC)
김형준의 첫 홈런 장면(사진=NC)

 

4년전 양의지 백업 포수가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최연소 기록의 주인공이니 이번이 첫 출전일 것 같지만, 사실 김형준은 4년 전에도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경험한 적이 있다. 입단 2년 차인 2019년, 그해 NC가 5위로 와일드카드 게임에 진출하면서 김형준에게도 가을 향기를 맡을 기회가 주어졌다. 다만 당시엔 양의지라는 절대자가 있어 실제 경기에 출전할 기회는 얻지 못했다. 김형준은 벤치에서 선배들의 플레이를 눈으로 보고 느끼며 경험의 시간을 가졌다. 당시 NC가 탈락한 뒤 경기장을 벗어나면서 김형준은 “오늘 경험을 잊지 않고 더 성장하겠다”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4년 뒤인 이날, 김형준은 양의지와 선발 포수로 맞대결을 벌이는 위치에 올라섰다. 양의지가 지난 시즌 뒤 두산으로 복귀하고, 김형준이 상무 복무를 마치고 NC에 합류하면서 4년 전엔 상상할 수 없던 장면이 현실화됐다. 강인권 NC 감독은 1차전 선발 포수로 김형준을 기용하면서 “태너 선수와 호흡이 좋았고 시즌 막판에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아시안게임에서) 큰 경기를 경험하고 온 것도 분명히 있다”고 밝혔다. 

우러러만 보던 대선배와 포수 맞대결을 펼친 김형준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는 “엄청 좋았다”며 미소를 보였다. “같은 팀에서 제가 많이 배웠던 선배와 이렇게 한 경기장에서 중요한 경기를 했다는 게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의지 선배한테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날 김형준은 NC가 자신을 일찌감치 ‘양의지 후계자’로 낙점한 이유를 증명해 보였다. 홈런 두 방을 날린 타격과 도루 저지처럼 화려한 플레이 때문만이 아니다. 여기엔 기록이나 맨눈으로 잘 보이지 않는 부면도 있다. 이날 NC는 류진욱을 제외하곤 제대로 자기 공을 던지는 투수가 없었다. 스트라이크를 못 던져서 애를 먹거나, 계속 공이 높은 쪽으로 제구돼 위태위태한 투구를 이어갔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투수들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고 타자들을 ‘어렵게’ 만들어서 최소한으로 실점을 억제하는 게 좋은 포수의 능력이다. 물론 9점을 주긴 했지만 공을 던지는 건 포수가 아닌 투수다. 같은 논리라면 양의지가 있는 두산은 무려 14점을 허용했다. 난타전이 벌어진 이날 밤은 역설적으로 ‘포수 김형준’이 부쩍 성장했음을 보여준 경기였다.

“선취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선취점을 내줬잖아요. 그래서 최소 실점으로 끌고 가려고 생각했습니다.” 김형준의 말이다. “오늘 힘들었죠. 태너도 경기 전에는 공이 나쁜 건 아니었는데 경기 들어가니까 실투가 조금씩 들어오더라고요. 너무 잘하려다 보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

“와일드카드에서 느낀 것들을 잘 생각해서 준플레이오프에 임하려고 합니다. 점수를 많이 안 주게끔, 투수가 최소 실점할 수 있도록 리드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도는 김형준(사진=NC)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도는 김형준(사진=NC)

 

창단 11년 만에 마침내 대형 포수 얻은 NC

타석에선 홈런을, 수비에선 안정적인 리드와 프레이밍, 도루 저지를 보여주는 안방마님. 이는 NC가 처음 김형준을 지명했을 때 그렸던 바로 그 모습이다. 당시 한 스카우트는 “U-18 야구월드컵에 뽑힌 포수들보다 김형준의 수비력이 더 뛰어나다”며 “1라운드 지명도 충분히 가능한 선수”라고 칭찬했다. 다른 구단 스카우트 역시 “김형준 외에는 A급으로 분류할 만한 포수는 없다"고 찬사를 보냈고 유영준 당시 NC 단장은 “올해 포수 중에 송구와 수비에서 보여주는 안정감이 가장 좋다. 특히 어깨가 정말 강한 선수다. 뜻밖에 프로에 적응하는 속도가 빠를 수 있다”고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김형준은 입단 첫해부터 바로 미국 애리조나 1군 스프링캠프에 참가했고, 넥센(현 키움)과 연습경기에서 끝내기 안타를 때려내는 등, 신인답지 않은 활약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6월 28일 1군 콜업 이틀 뒤엔 이재학과 배터리를 이뤄 KT 타선을 4회까지 퍼펙트로 막는 데 힘을 보탰다. 

NC가 4년 총액 150억 원을 투자해 양의지를 영입했을 때도 김형준을 향한 기대엔 변함이 없었다. 당시 NC 관계자는 “양의지의 합류로 김형준이 차세대 주전포수로 성장할 시간을 벌었다”며 기뻐했다. 양의지의 2차 FA가 다가왔을 때는 내부적으로 김형준을 ‘1순위 대안’으로 고려하기도 했다. 만약 양의지를 잡지 못하더라도 상무에서 돌아오는 김형준에게 주전 포수를 맡기면 된다는 계산이었다. 십자인대 파열로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지만, 박세혁과 안중열이 합류하면서 급한 불을 껐다. 부상에서 돌아온 김형준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주전포수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포스트시즌 1차전에서 선발 마스크를 쓰며 마침내 NC의 안방마님으로 우뚝 섰다.

“아시안게임에 다녀온 뒤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때 중요한 경기에서 긴장감을 느껴봐서 그런지, 와일드카드 경기에서 떨리거나 붕 뜨는 느낌이 하나도 없었어요.” 아시안게임 경험이 큰 경기를 차분하게 치르는 데 도움이 됐다는 김형준이다. “제가 떨지 않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할 수 있는 게 아시안게임 덕분인 것 같습니다.” 

김형준을 선발 포수로 기용해 성공을 거둔 강인권 감독은 “기대 이상으로 좋은 역할을 해줬다”고 칭찬했다. “타격은 당연하고, 수비에서도 선발부터 중간 투수들을 잘 이끌었습니다. 젊은 선수임에도, 앞으로 항상 기대를 할 수 있는 선수라고 보고 있습니다.”

창단 이후 11년 만에 마침내 NC는 양의지 후계자를 얻었다. 10월 19일 와일드카드 1차전은 NC 프랜차이즈 역사에 ‘대형 포수’의 탄생을 알린 날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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