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수원]
‘벼랑 끝’에 몰린 마법사 군단은 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리그 최하위로 시작해 정규시즌 2위로 마친 것은 물론이고, 플레이오프 2패로 시작해 리버스 스윕을 일궈낸 것마저 그렇다.
KT 위즈는 11월 5일 홈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NC 다이노스를 3대 2로 제압하며 한국시리즈로 진출했다. 이날 경기 종료 후 이강철 KT 감독은 “우리는 꼴찌에서 여기까지 올라온 팀”이라고 말할 정도로 선수단을 향해 강한 믿음을 드러냈다.
이로써, 2023 한국시리즈 대진표가 완성됐다. 144경기 완주 끝에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LG 트윈스와 KT가 오는 7일부터 한국시리즈 트로피를 놓고 7전 4선승제 승부를 치른다.
‘어·우·엘(어차피 우승은 엘지)’은 없다. LG의 우승 숙원을 위협할 최고 난적이 등장했기 때문. KT는 ‘2연패 후 3연승’ 순풍을 타고 잠실로 향한다. 자칫하다간 정규시즌 우승팀인 LG도 그 기세에 휩쓸릴지 모른다.
‘리버스 스윕’ 일궈낸 KT, 제 페이스 찾은 채 KS로 향한다

한국시리즈 진출까지, KT가 탄탄대로를 걷기만 한 건 아니었다. 정규시즌은 논외로 해도, 포스트시즌 시작부터 굴곡이 심했다. KT는 와일드카드 결정전, 준플레이오프를 단 1패도 없이 돌파한 NC 상대로 크게 고전했다. 무엇보다, 홈 수원에서만 2패를 먼저 내주며 탈락 위기에 처한 게 뼈아팠다.
지난 5일 플레이오프 5차전 종료 후 스포츠춘추와 연락이 닿은 이동현 SBS스포츠 야구 해설위원은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놨다. LG 원클럽맨 출신인 이 위원은 KBO리그에서만 통산 113홀드를 기록한 이다.
“양 팀 사이에 ‘경기 감각’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KT는 그간 자체 청백전만 진행했다. 내부에서 스파링 연습을 아무리 해도 실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KT가 상승세를 타던 NC를 만나 플레이오프 1, 2차전을 고전한 이유다.”
이 위원의 말처럼, KT와 NC는 1, 2차전에서 서로 다른 경기력을 보였다. NC가 초반에 점수를 내면서 달아나면 KT가 8, 9회 뒤늦게 만회하는 그림이 거듭 이어진 것.
“두산, SSG를 상대하면서 NC 타선에 좋은 흐름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말한 이 위원은 “하지만 강행군을 거듭한 NC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갔고, KT는 후반기에 보여줬던 제 페이스를 찾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 때문이었을까. KT는 선발 투수들을 앞세워 3, 4차전을 압도했다. 국내 에이스 고영표(3차전)에 이어 ‘4일 턴’ 괴력투를 선보인 윌리엄 쿠에바스(4차전)도 모두 6이닝 무실점 투구를 펼쳐 플레이오프 시리즈를 동률로 이끌었다.

말 그대로 ‘뒤가 없는’ 5차전에서는 열띤 접전 끝에 KT가 웃었다. 경기 초부터 0대 2로 끌려다닌 KT는 귀중한 역전 기회를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KT 벤치의 재빠른 판단 하나하나가 모두 주효했다. 외국인 선발 벤자민을 내린 뒤 손동현을 조기 투입한 게 5차전 분위기를 바꿨다. 또 동점을 만든 김민혁 대타 카드도 결정적이었다.” 이 위원이 손꼽은 승부처 두 곳이다.
NC의 ‘빠른 발’을 제대로 억제한 것도 KT의 한국시리즈 진출 비결 가운데 하나. NC는 지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두산 상대로 3도루를, 준플레이오프에선 SSG에 4도루를 기록했다. 그중 도루 실패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하지만 NC의 발야구는 플레이오프 들어 자취를 감췄다. KT 상대로 지난 5경기에서 NC가 도루를 1개도 성공하지 못한 것. 실패는 한 차례 있었다.
이와 관련해 이 위원은 “실은 KT 포수진의 도루 저지 역량이 그렇게 뛰어난 건 아니”라며 “다만 KT 투수들의 견제 능력이 이를 만회하고도 남는다. 또 투구 인터벌(간격) 역시 주자를 묶어 두는 데 일품이다. NC 주자들은 뛰는 것에 중압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이 위원은 “5차전에 등판한 벤자민만 하더라도 평소와 달랐다. 달라진 투구 템포와 견제 타이밍으로 NC의 주루 플레이를 막아내더라. 그런 디테일이 KT가 가진 강점”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동현 해설위원의 한국시리즈 전망 “LG의 창 vs KT의 방패”

KT의 다음 상대는 정규시즌 챔피언 LG다. 이에 이동현 해설위원은 “창과 방패 싸움”이라며 웃었다. LG의 매서운 창끝이 KT의 철벽 방패와 격돌한다.
그도 그럴 게 투수진만 보면 KT는 결코 ‘언더독’이 아니다. 고영표-윌리엄 쿠에바스-웨스 벤자민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3선발에 더해 리그 최고 필승조인 손동현, 박영현, 김재윤이 뒷문을 책임진다. ‘지키는 야구’에 있어 단연 으뜸인 팀이 바로 KT다.
다만 LG는 외국인 에이스 애덤 플럿코의 한국시리즈 출전이 부상으로 인해 불발됐고, 시즌 내내 잔부상에 시달린 마무리 고우석도 최근 허리 통증으로 우려를 낳았다. 야구에는 ‘단기전은 투수 싸움’이란 말이 있다. 마운드의 안정성만 따지면 단연 KT가 앞선다.
이어 ‘선발야구’의 중요성을 역설한 이 위원은 “KT, NC가 5차전까지 맞붙은 이번 플레이오프가 대표적”이라며 “아무래도 시리즈가 길수록 선발야구의 강점이 빛난다. 1~3선발이 확실한 건 KT가 가진 강점”이라고 했다.

야구통계사이트 ‘스탯티즈’에서 제공하는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로는 LG 타선 총합이 28.96으로 10개 팀 가운데 1위다. 마운드에서는 KT(23.82)가 최고다.
이처럼, 한국시리즈를 앞둔 양 팀의 최우선 과제는 서로의 강점을 파훼하는 것. LG의 막강한 화력이 KT 마운드를 공략하느냐, 혹은 KT 투수진이 LG 타선을 잠재우느냐의 싸움이다. 이 위원 역시 고갤 끄덕이는 대목이다.
한편, 이 위원이 주목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이 위원은 “승패를 떠나 올해 한국시리즈 승부는 야구팬들이 꽤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관전 포인트가 많다”고 했다.
먼저 양 팀 ‘홈구장의 크기’ 차이다. LG는 리그에서 가장 큰 구장인 잠실을 홈으로 쓰는 반면에, KT는 비교적 외야가 작은 수원 KT 위즈파크를 사용 중이다. 이 때문에 시리즈 내내 승부의 향방이 구장별로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로는 앞서 언급된 ‘발야구’다. 올해 정규 시즌 동안 가장 많은 도루(166)를 성공시킨 팀이 바로 LG다. 향후 한국시리즈에서도 LG의 뛰는 야구는 분명히 큰 변수가 될 전망. 지난 플레이오프에서 NC의 발을 효과적으로 묶은 KT가 LG 상대로도 그런 면모를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끝으로 이 위원은 “양 팀 모두 경기 도중 벤치의 작전 개입이 잦은 편이다. 시리즈 내내 이어질 사령탑들의 지략 대결도 흥미로울 듯싶다. 이번 한국시리즈는 KBO리그 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야구의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빅 매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