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NC 다이노스의 가을 랠리가 한국시리즈 문턱에서 멈췄다. 플레이오프에서 KT 위즈에 2연승 뒤 3연패로 역대 3번째 ‘리버스 스윕’을 허용했다. 물론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출발해 플레이오프까지 온 것도 굉장한 결과지만, 딱 1승만 더하면 한국시리즈 진출이 가능했기에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논리로 설명하기 힘든 재앙이 닥치면 희생양부터 찾는 건 인간사회의 오랜 습성이다. 이번엔 NC의 슈퍼 에이스 에릭 페디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페디는 이번 포스트시즌 기간 1경기 등판에 그쳤다. 시즌 후반 생긴 어깨 뭉침과 타구에 맞은 오른 팔꿈치 타박상 탓에 와일드카드부터 준플레이오프까지 벤치를 지켰다.
뒤늦게 플레이오프 1차전에 등판해 눈부신 호투(6이닝 1실점 12탈삼진)를 펼쳤지만 페디의 가을야구 등판은 이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4차전은 물론 5차전에서도 나오지 않은 페디는 1차전 패전 뒤 4차전에 다시 나와 역투한 KT 윌리엄 쿠에바스와 비교가 됐다.

페디가 태업? “NC 선수단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없다”
일각에선 페디가 내년 메이저리그 복귀를 염두에 두고 몸을 사린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올해 KBO리그에서 20승-200탈삼진을 달성한 페디는 일본프로야구는 물론 여러 메이저리그 팀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NC 에이스로 뛰다 미국에 돌아간 드류 루친스키급 대우(2년 총액 800만 달러)를 받을 거란 예상도 나온다. 이를 근거로 야구계 일각에선 ‘이미 마음이 미국에 가 있는 것 아니냐’ ‘에이전트가 등판을 만류한 것 아닌가’ ‘팀은 안중에 없고 자기만 생각하는 선수’라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NC 선수단 내의 시각은 다르다. NC 관계자는 “페디 태업설은 외부에서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며 “사정을 알면 그렇게 얘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우선 페디의 등판 불발은 페디 혼자 마음대로 정한 게 아니다. 트레이너, 코치, 강인권 감독이 공 던지는 모습을 확인하고 ‘어렵다’고 판단해서 기용하지 않은 것이다. 감독이 페디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 등판을 예고했다가 번복(“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다”)한 것도 본인 의사만이 아니라 훈련하는 모습과 병원 검진 결과(팔꿈치 충돌 증후군)를 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왜 쿠에바스처럼 4차전에 나오지 않았느냐”는 비판은 공정하지 않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쿠에바스는 75구를 던지고 조기 강판당했다. 투구 수가 많지 않아 사흘 휴식 뒤 선발 등판이 가능했다. 이강철 KT 감독도 “쿠에바스의 1차전 후 4차전 등판은 앞 경기의 투구 수가 적다는 사정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밝혔다. 1차전에서 페디는 6이닝 동안 98구를 던졌다. 사흘 휴식 후 등판은 몸 상태가 100%일 때도 쉽지 않은 일정이다.
이후 5차전에 맞춰 준비하려 했지만 끝내 몸 상태가 올라오지 않으면서 선발 등판이 불발됐다. 혹시 불펜이라도 가능한지 보려고 했지만 확인 결과 무리라고 결론 내렸다. 만약 충분히 던질 수 있는데도 선수가 거부하고 몸을 사렸다면 비판받아야 하지만, NC의 판단은 달랐다. NC 관계자는 “페디에 관해 나오는 여러 얘기를 알고 있지만, 정작 선수단 내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 전했다.
다른 구단의 외국인 선수 담당자는 “유독 외국인 선수에게만 부상 투혼을 요구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전했다. 이 담당자는 “외국인 선수는 대부분 단년계약을 맺고 한국에 온다. 만약 부상을 입거나 기량이 떨어지면 가차 없이 퇴출당한다. 국내 선수가 부상을 입고 수술하면 구단에서 지원하고 기다려 주지만, 외국인 선수는 그렇지 못하다”면서 “국내 선수에게도 강요하지 않을 투혼을 외국인 선수에게 기대하는 건 과도한 요구”라고 지적했다.
한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트는 “페디의 시즌 막판 컨디션 난조는 어느 정도 예정된 결과”라며 “올해 페디가 던진 투구이닝(180.1이닝)은 프로 데뷔 이후 한 시즌 최다 이닝이다. 이전까지는 마이너-메이저를 합쳐 150이닝을 던진 적도 없었다”는 점을 언급했다. 실제 페디는 2020년 50.1이닝, 2021년 138.1이닝, 지난해엔 131이닝만 투구했다. 거의 2년 치 투구이닝을 한 시즌에 몰아서 던진 결과 시즌 막판 과부하가 찾아온 것으로 풀이된다.
페디 최근 연도별 투구이닝(마이너+메이저 합산)
2020년 50.1이닝
2021년 138.1이닝
2022년 131이닝
2023년 180.1이닝

NC 다른 관계자는 “페디는 최고의 외국인 선수였다. 시즌 동안 보여준 활약도 활약이지만 팀원들과의 관계, 팬들을 대하는 태도, 한국야구에 대한 존중까지 나무랄 데가 없었다”고 칭찬했다. 페디의 야구 사랑은 자신의 필살기인 스위퍼를 NC 팀 동료는 물론 다른 팀 선수에게까지 적극적으로 전파한 데서 잘 나타난다. 선수들끼리 서로 지식을 나눠야 야구가 더 재미있어지고 발전한다는 게 페디의 생각이다.
NC 관계자는 “페디가 경기 후 펑펑 눈물을 쏟았다. 하도 울어서 눈이 벌게지고 퉁퉁 부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팀원들과 인사하면서도 ‘나 때문에 탈락한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경기 후 선수단 회식 자리에선 동료 한 사람 한 사람과 일일이 위로와 격려의 말을 나눴다. NC 한 선수는 “페디가 있어서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페디가 등판하지 못해서 가장 아쉬워한 사람은 바로 페디 자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