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국대 좌완 셋업맨’ KIA 타이거즈 최지민부터 ‘박석민 후계자’ NC 다이노스 서호철까지, 올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1군 주축으로 거듭난 둘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지난겨울 호주프로야구(ABL) 경험이다.
야구계에선 이들이 ABL에 참여한 게 올 시즌 ‘스텝업’에 큰 보탬이 됐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KBO리그 선수들은 올겨울도 호주를 향해 날아갈 예정이다. 지난해 질롱 코리아와 인연이 있었던 팀들이 다시 한번 선수 파견을 택했다. 최지민·서호철의 가파른 성장을 경험한 KIA, NC를 필두로 질롱 사령탑이었던 이병규 전 감독을 수석코치로 영입한 삼성이 이에 해당한다.
다만 기존 합동 파견의 장이었던 질롱이 이번 시즌 ABL에 참가하지 않으면서, 2023/24시즌 ABL에 참여하기로 한 KIA와 NC, 삼성은 선수들을 각각 현지 협업 구단에 보낸다.
먼저 KIA는 좌완 김기훈·곽도규, 우완 김현수·홍원빈, 내야수 박민까지 총 5명을 캔버라 캐벌리에 파견했다. NC도 우완 한재승, 우완 사이드암 임형원, 외야수 박시원 2001년생 동갑내기 셋을 브리즈번 밴디츠로 보냈다. 세 번째로는 삼성이 지난 10일 애들레이즈 자이언츠에 좌완 이승현, 우완 박권후, 포수 이병헌의 파견 소식을 전했다
세 팀이 호주 리그를 통해 얻고자 하는 건 선수 명단만 봐도 확연히 드러난다. 바로 ‘유망주 육성’이다.
아쿠냐-이마나가도 거쳤다…MLB&NPB 유망주 육성의 장 ABL

“리그 수준이 절대 낮지 않다. 오히려 높은 편이다. 직접 겪어본 ABL에는 호주 선수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타이완 등에서 온 전도유망한 선수들이 가득했다.”
지난해 질롱 일원으로 참여했던 윤수강 NC 퓨처스 배터리코치의 말이다.
실제로 메이저리그(MLB)와 일본프로야구(NPB)는 매년 유망주를 ABL에 파견해 그들의 성장을 돕는다. 가장 큰 성공 사례는 역시 올 시즌 내셔널리그 MVP 수상이 유력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외야수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다. 현시점 MLB 최고 선수 중 하나인 아쿠냐는 마이너리거 시절인 2016년 만 18세 나이에 멜버른 에이시스로 파견된 바 있다.
올해 3월 제5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맹활약으로 일본 야구대표팀의 우승을 견인한 NPB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좌완 이마나가 쇼타도 호주 리그 경험(2018/19시즌 캔버라)이 있다. 참고로 이마나가는 올겨울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한 MLB 이적이 유력하다.
또 최근에는 탬파베이 레이스 내야 유틸리티 주니어 카미네로가 있다. 지난겨울 퍼스 히트 유니폼을 입은 카미네로는 39경기 14홈런 타율 0.303, 출루율 0.368, 장타율 0.613을 기록하며 ABL 무대를 폭격하더니 올해 9월 스무 살 나이로 빅리그 데뷔에 성공했다. MLB.com이 운영하는 ‘MLB 파이프라인’에서는 카미네로를 현시점 TOP100 유망주 가운데 전체 6위로 평가한다.
질롱 시절 기억을 떠올린 윤 코치는 “경기 중 상대 팀에 유독 환호성이 큰 선수들이 항상 몇 명 있었다”며 “처음에 왜 그런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까 그 선수들이 MLB에서 온 유망주들이었다”며 웃었다.
이어 윤 코치는 질롱이 지난 1월 22일 치렀던 시즌 최종전을 따로 언급하며 “이때 만났던 상대 선발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어린 선수가 너무 잘 던져서 감탄스러웠는데, 두 달 뒤에 WBC에서 한국 상대로 선발 등판했다”고 밝혔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2000년생 좌완 유망주 잭 오러플린 얘기다.
지난 시즌 ABL 애들레이드에서 잠시 뛴 오러플린은 3월 WBC에선 호주 대표팀으로 승선해 한국상대로 조별리그 예선전에서 선발 2이닝 퍼펙트 투구를 펼친 바 있다. 올 시즌엔 디트로이트 산하 트리플A 팀 톨리도 머드헨스로 승급해 선발 투수로 기회를 받는 중이다.
“KBO 육성에 있어, 향후 호주 리그의 존재감은 더 커질 것”

윤진호 LG 퓨처스 수비코치, 손정욱 NC 퓨처스 투수코치 역시 이구동성으로 “호주 리그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말한다. 둘 역시 지난해 이병규 전 감독(현 삼성 수석코치)과 함께 질롱에서 선수들을 이끈 바 있다.
“비시즌 휴식기를 포기하고 가는 것이다. 선수 입장에선 호주 리그가 끝나면 쉴 틈 없이 곧바로 소속팀에 복귀해 스프링캠프가 코앞일 정도로 일정이 꽤 타이트하다”고 말한 윤진호 코치는 “호주 리그 경험은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힘줘 말했다.
“1군에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선수들이 수준급 외국인 선수들과 상대해 볼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그래서 한 타석이라도, 아웃카운트 하나라도 더 해보겠다고 하는 선수들이 인상 깊었다. 귀한 시간을 내서 온 만큼 그렇게 얻어가는 게 분명히 있어야 한다.” 윤 코치의 설명이다.
한편, 기량 외적인 부분도 있다. 지난해 질롱의 경우엔 원정 경기에 비행기 이동이 잦았다. 보통 일주일에 4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한 번 원정길에 오르면 타국에서 컨디션 조절이 쉽지 않은 까닭이다.
날씨도 편차가 크다. 따뜻한 곳에 있다가도 어떤 날엔 하루 종일 비가 퍼붓는다. 이에 ‘유경험자’ 코치 3명은 하나같이 웃으며 “지역마다 달랐는데, 극과 극이라 색다른 경험”이라고 입을 모았다.
손정욱 코치 역시 “그래도 젊은 선수들이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메리트가 있다”며 “이병규 당시 감독님께서도 ‘호주 리그 수준이 예상보다 더 높다’, ‘우리 선수들이 정말 많이 배워갈 수 있겠다’고 항상 말씀하셨던 게 기억난다”고 했다.
이어 손 코치는 “호주로 선수들을 보내서 성과를 내는 경우는 계속 생길 것이다. 올 시즌만 해도 (서)호철이, (김)태현이, (하)준수 등이 일취월장해서 우리 팀에 보탬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유망주 파견 시도는 더 늘어나지 않을까”라고 내다봤다. 앞 두 코치 또한 “KBO리그 육성 흐름에 있어 호주 리그의 존재감은 계속 커질 것”이라고 동의했다.
육성을 향한 KBO리그 10개 팀의 관심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팬데믹 여파가 서서히 사라지고 때마침 현실적인 대안으로 ‘호주 리그’가 등장했다. 향후 ABL이 한국야구 유망주들의 ‘터닝포인트’로 자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