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심판위원회 동계훈련 모습(사진=KBO)
KBO 심판위원회 동계훈련 모습(사진=KBO)

[스포츠춘추]

한국야구가 ‘대격변’을 앞뒀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오는 2024시즌부터 피치클락(Pitch Clock, 투구 및 타격 시간 제한)과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 자동 볼 판정 시스템) 제도를 리그에 도입한다. 전자는 이미 메이저리그(MLB)에서도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첫선을 보인 바 있다.

다만, 후자의 경우는 다르다. 이른바 ‘로봇심판’은 KBO리그가 MLB보다 먼저 시행한다. 당초 2024시즌 ABS 제도 도입을 목표로 했던 MLB는 해당 계획을 잠시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MLB의 ABS는 2019년 독립 리그인 애틀랜틱 리그부터 시작해 지난해부터 마이너리그 트리플A에서 실험 단계에 있다.

새로운 규칙의 등장은 KBO리그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투수와 야수 모두 영향을 받는 가운데, 무엇보다 그 중간에 있는 포수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포수는 동시에 투·타에 걸친 두 역할을 염두에 두면서 경기에 임할 전망이다.


2024시즌 대격변 앞둔 KBO, 어떤 변화 맞이하나

메이저리그(MLB) 피치클락 모습(사진=mlb.com 화면)
메이저리그(MLB) 피치클락 모습(사진=mlb.com 화면)

먼저 피치 클락은 말 그대로 타이머(Timer)다. 마운드와 타석에 선 선수들의 시간을 제한한다. 경기장 내부에 설치된 커다란 전자시계 덕분에 팬들도 한 눈에 상황을 알 수 있다. 공을 건네받은 투수는 주자가 없을 시 15초 이내, 주자가 있을 시 20초 이내 투구를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주심은 해당 투구를 볼로 판정한다.

타자의 시간도 제한한다. 투수들이 투구 제한 시간을 받는 동안, 타자 역시 타격 준비를 마치고 8초 안으로 타석에 자리해야 한다. 또 하나의 타석이 종료되면, 후속 타자는 30초 내로 타석에 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주심은 타자에게 자동 스트라이크를 선언한다.

MLB는 올 시즌부터 피치클락을 도입해 빨라진 경기 속도를 자랑하고 있다. 미국 매체 ‘ESPN’은 10월 3일 피치클락 효과를 언급하며 “MLB가 지난해 대비 평균 경기 시간을 24분가량 단축했다”고 보도했다. ‘스피드업’을 당면과제로 내건 KBO리그 역시 이러한 변화를 통해 보다 더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기대한다.

이는 국제 대회에서도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2026년에 예정된 제6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피치클락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 앞서 3월에 열린 5회 WBC에서는 검증 및 시기상조 문제로 보류된 바 있다.

이에 12월 11일 스포츠춘추와 연락이 닿은 허운 KBO 심판위원장은 “MLB의 피치클락 관련 규칙을 KBO리그 실정에 맞게 적용하려고 한다. 얼마 전 이천 두산 베어스파크에서 심판진 시뮬레이션 1차 훈련(4~8일)도 했는데, 내년 1, 2월에 5차 훈련까지 예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KBO 심판위원회는 피치클락 훈련으로 계측원과 소통 및 상황별 적용에 집중하고 있다.

한편 KBO는 로봇심판을 통해 ‘공정한 야구’를 선보이고자 한다. 경기 내 모든 선수가 동일한 스트라이크 존 판정을 적용받기에 가능한 일이다. KBO는 ABS를 2020년부터 4년간 퓨처스리그에서 시범 도입한 바 있다. 이를 두고 “공정성과 정확성, 일관성 등 3요소는 야구팬들의 오랜 요구 사항이었다”며 말한 허 위원장은 “ABS 도입을 통해 그런 부분을 많이 해소하고, 더 많은 팬이 야구를 즐겼으면 한다”고 했다.

ABS의 등장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직업군은 아무래도 포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간 현대야구에서 포수의 기본 덕목으로 각광받은 ‘프레이밍’도 이제는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됐다. 프레이밍은 포수가 투수의 공을 포구할 때 추가적인 스트라이크 콜을 받기 위한 기술이다. 하지만 볼·스트라이크 판정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ABS가 도입될 시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 된다.


‘달라질’ 야구, 포수 역할은 예측불허? 확대 가능성도 있다

올겨울 2차 드래프트를 통해 SSG 유니폼을 입게 된 포수 박대온(사진=NC)
올겨울 2차 드래프트를 통해 SSG 유니폼을 입게 된 포수 박대온(사진=NC)

“날아오는 공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다양한 자세로 다 잡아봤는데 정말 상관이 없더라. 앞으로 프레이밍을 신경 쓰기보다는 그 외 경기의 다른 부분에 더 집중해야 할 듯싶다.”

SSG 랜더스 포수 박대온의 말이다. 전 소속팀 NC에서 1, 2군을 오가며 활약한 박대온은 ABS가 2군에서 시범 도입된 지난 4년간 퓨처스리그 66경기를 소화한 바 있다.  

프레이밍이 야구계에 주목받은 지도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투구 추적 시스템이 2000년대 후반 빅리그에 도입되면서 포수의 프레이밍 역량을 수치화하는 게 가능해진 것. 심지어 미국야구통계사이트 ‘팬그래프닷컴’은 2019년부터 포수의 프레이밍 능력을 수치화해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이 도입될 시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 된다. 11일 ‘2023 신한은행 SOL KBO 골든글러브’에서 생애 8번째 포수 황금장갑을 낀 두산 베어스 양의지 역시 “이제는 프레이밍보다 투수가 던진 공을 흘리지 않고 잘 포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두산 포수 양의지(사진=두산)
두산 포수 양의지(사진=두산)

2024시즌 ‘대격변’ 속에서 포수의 역할은 이대로 줄어드는 것일까. KBO리그 대표 포수 양의지에게도 이와 관련해 묻자 “타격 루틴만 보면 나는 공격적인 타자라 피치클락에는 금방 적응할 것 같다. 다른 부분에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제 준비를 해야 하는 단계고, 우리(KBO리그) 쪽에서 세계 최초 도입이기 때문에 우선 해봐야 뭔가 뚜렷해지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일각에서는 포수의 역할이 오히려 늘어날 것이란 목소리도 들린다. 퓨처스리그 경기를 소화하면서 ABS를 몸소 체험한 박대온도 고개를 끄덕인 대목이다. 박대온은 최근 스포츠춘추와의 통화에서 “ABS, 피치클락 도입으로 벤치와 포수가 해야 할 일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타석에 선 야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마운드 위 투수들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변화다. 포수도 그 영향을 당연히 받는다. 이 때문에 포수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개인적인 경험으론 투수와의 소통 및 교감이 더 중요해질 것 같다”고 덧붙였다.

KBO는 새 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0월 말 발표된 방향성에 따르면, 선수와 코치진이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추후 설명회를 단계적으로 개최할 계획이다. 불과 3개월 후면 2024시즌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온다. 예측불허의 상황, ‘달라질’ 야구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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