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삼성동 코엑스]
“박찬호는 너무 멋있는 친구 같다. 나보다 후배지만 존경심이 든다.”
‘라이벌(rival)’은 ‘강’을 뜻하는 라틴어 rivus에서 유래한 말이다. 같은 강을 끼고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때로는 경쟁하고 필요할 땐 공생하는 관계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23 KBO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에서 멋진 경쟁을 펼친 오지환(LG)과 박찬호(KIA)의 관계가 바로 그렇다.
올해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유격수는 전 포지션 가운데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다른 포지션은 대부분 수상자를 예상하기 어렵지 않을 정도로 유력 후보가 존재했지만, 유격수 자리만큼은 오지환과 박찬호의 치열한 2파전 양상을 띄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오지환이 다소 우세하다는 관측 속에서도,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낸 박찬호의 득표율도 만만찮을 거라는 예상이 나왔다.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를 훨씬 뛰어넘은 접전이었다. 오지환은 전체 유효표 291표 가운데 154표(52.9%)를 득표해 2년 연속 유격수 골든글러브의 주인공이 됐다. 박찬호도 만만찮게 많은 표를 얻었다. 총 120표를 받아 득표율 41.2%로 2위에 올랐다.
이어 김상수(KT)가 5표, 김주원(NC)이 4표, 이재현(삼성)이 3표, 노진혁(롯데)과 박성한(SSG)이 2표, 이도윤(한화)이 1표로 뒤를 따랐다. 유격수 1위와 2위의 득표율이 11.7%차로, 전 포지션 가운데 수상자와 차점자의 득표율이 가장 적은 포지션이 됐다.
치열한 경쟁 끝에 유격수 황금장갑을 지킨 오지환은 시상식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유격수 자리 경쟁이 치열했다는 건 그만큼 출중한 선수들이 많다는 의미”라며 “박찬호나 나도 그렇고 박성한, 이재현 선수도 마찬라지다. 김혜성도 다시 유격수로 온다고 하는데, 많은 선수들이 유격수 자리에 들어온다고 하니까 더 자극이 된다”고 의연하게 답했다.
오지환은 “경쟁이라기보단 이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유격수 자리를 빛냈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게 더 의미가 크다”면서 “어린 선수들이 한 팀의 주축으로 유격수 자리를 빛내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한 팀에서 운이 좋아서 한 자리를 지켜왔는데, 어린 친구들이 치고 올라온다. 경쟁력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또 한번 상을 목표로 하면서, 팀 성적도 함께 잘 준비해서 실력을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고 다짐했다.
이날 시상식엔 유격수 경쟁자인 박찬호가 직접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박찬호는 시상식 사전 인터뷰에서 “오지환 선배와 시즌 내내 경쟁한 것만 떠올려도 기분이 좋았다”면서 “시상식에 한번쯤 오고 싶었다. 수상 여부와 별개로 경쟁한 선수들이 서로 자릴 빛내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언젠가는 나 역시 수상자로 이 자리를 다시 찾아오고 싶다”고 참석에 의의를 뒀다.
이에 대해 오지환은 “박찬호는 너무 멋있는 친구 같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로 내가 배워야 할 것 같다. 존경심이 든다”면서 “후배지만 같은 야구인으로서 배울 것은 정말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 시상식에서 LG 선수는 오지환을 비롯해 홍창기, 오스틴 딘까지 3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2001년(신윤호, 이병규, 양준혁) 이후 LG에서 수상자 3명이 나온 건 올해가 처음이다. 여기에 수상은 못했지만 문성주, 문보경 등 젊은 선수들이 의미있는 득표를 기록하면서 내년 시즌을 기대하게 했다.
한 명의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할 때가 많았던 2000년대 초반 암흑기를 떠올리면 그야말로 격세지감. 이와 관련해 오지환은 “수상자가 많아질 수록 우리 팀이 강하다는 증거다. 그 팀의 선수가 곧 팀의 얼굴이니까 그게 내게는 더 기분 좋게 느껴진다”면서 “매년 이렇게 수상자가 나오면 LG를 알리는 거니까 더없이 좋은 일”이라고 미소를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