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타자 전향’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롯데 자이언츠 우완 필승조 최준용이 2024년에도 마운드를 지킨다.
2023시즌 후반기 맹활약(28경기 평균자책 1.61)을 보인 최준용은 11월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제2회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쉽(APBC)’ 대표팀에도 승선했다. 그중 한일전에서만 두 차례 등판했고, 2.1이닝 무실점 투구를 선보였다.
대표팀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뒤 최준용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도쿄돔 만원관중 열기 앞에서 엔도르핀이 솟았다. 그 덕분에 볼 스피드 역시 내 생각보다 빠르더라. 과거 청소년 대표팀 때와 비교하면 긴장감이 덜하고 등판 자체가 재밌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어느 때보다 값진 경험을 얻은 최준용이다. 지난해 세컨피치 체인지업을 성공적으로 장착했고,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본인 투구에 대한 자신감도 되찾았다. 이제는 ‘집 나간’ 속구 구위를 회복할 때다.
포크볼 군단에 뜬 이질적인 ‘체인지업 투수’ 최준용

최준용은 2001년생으로 올해 프로 데뷔 5년째다. 경남고를 졸업해 2020년 신인 드래프트 1차 지명으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고, 입단 때부터 큰 기대를 받았다. 특히 2년차인 2021년에 44경기 4승 2패 20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 2.85를 기록했다. 이때 좌완 이의리와 펼친 신인왕 경쟁은 최준용의 이름 석 자를 야구팬들에게 각인시키기 충분했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일진인퇴를 거듭하며 잠시 주춤했다. 당시 ‘깜짝’ 선발 도전은 정규시즌 개막과 함께 임시 마무리를 맡게 되면서 불발됐다. 결과적으로 그해 팀에서 가장 많은 불펜 이닝(71)을 소화한 최준용은 68경기 3승 4패 6홀드 14세이브 평균자책 4.06으로 예년보다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 들게 됐다.
2023시즌에도 또 한 차례 큰 변화를 맞이했다. 바로 제2구종 체인지업이다. 프로 데뷔후 속구와 커브에만 치중했던 투구 스타일에 변화를 준 것. 홈플레이트 앞에서 뚝 떨어지는 최준용의 체인지업에 타자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야구통계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최준용의 지난해 체인지업 비율은 27.6%로 입단 이래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또 속구(54.2%)에 이어 두 번째로 투구 비중이 높았다.

최준용은 시즌 중 스포츠춘추와 대화에서 “고등학생 때는 속구, 커브만 던졌다. 프로에 온 뒤부터 체인지업을 공부했는데, 조웅천 코치님(현 두산 1군 투수코치)께 하나부터 열까지 배웠다”고 설명했다. 체인지업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에만 4년이 걸린 셈이다. 이를 두고 최준용은 “쥐는 그립을 다양하게 시도해 봤고, 지금 형태(벌칸 체인지업)에서 던지는 감각에 익숙해지기까지 애를 참 많이 먹었다. 이제야 체인지업을 제대로 던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체인지업 투수’ 최준용의 등장은 포크볼 군단 롯데에서 상당히 이질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도 그럴 게, 롯데는 KBO리그 자타공인 포크볼 사관학교다. 지난해만 해도 팀 포크볼 구사율이 13.9%로 10개 팀 가운데 단연 1위에 해당한다. 이상목, 손민한, 송승준, 조정훈을 기점으로 박세웅, 나균안, 김원중, 구승민 등이 포크볼러의 명맥을 이어가는 중이다.
롯데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롯데 R&D팀 관계자가 “포크볼은 빠르고 움직임이 일정하지 않아 타자 입장에서 대처하기가 참 어렵다. 롯데에는 예전부터 그 포크볼을 잘 던지는 선수들이 워낙 많았고, 자연스럽게 선·후배 교류를 통해 구종 노하우들이 전해진 듯싶다”고 말한 까닭이다.
이어 구단 R&D팀 관계자는 “체인지업을 던지는 투수가 팀에 많지 않았는데, 선수들과 코치진이 많은 연구와 정성을 쏟은 덕분에 최준용을 필두로 진승현, 이진하 등이 등장했다. 선수 자신에게 맞는 새 무기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컨피치 장착&자신감 회복…최준용, 남은 과제는 ‘속구’

실은 최준용도 포크볼 장착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내 체인지업으로 선회했다. 첫 번째 이유는 필승조 선배들과의 차별화를 위해서다. 롯데의 8, 9회를 책임지고 있는 셋업맨 구승민, 마무리 김원중 모두 결정구가 포크볼인데, 그 둘과 다른 스타일로 불펜에서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싶었기 때문.
최준용이 체인지업을 선택한 더 주된 이유는 제1구종인 ‘속구’에 있었다.
오프스피드 구종을 갈망하는 선수들은 주로 포크볼과 체인지업을 찾는다. 둘 다 잘 던지는 선수도 드물게 나오긴 하지만, 손목의 내·외전이나 검지, 중지의 힘 차이를 고려해 한 가지 구종으로 정착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최준용도 코치진, 동료 선수들, R&D팀 등 다양한 도움을 받아 많은 실험을 거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최준용은 “공을 쥐는 힘은 자신 있다. 악력 문제로 포크볼을 포기한 건 아니”라면서 “터널링 문제가 가장 신경 쓰였다. 속구를 던질 때와 투구 자세가 다르다면, 변화구에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급격하게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최준용의 변화구 장착은 결국 속구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
강력한 속구는 최준용의 트레이드마크다. 데뷔 때부터 리그 정상급 구위로 주목받았으며, 마운드 위 최준용과 맞선 타자들은 까다로운 무브먼트 때문에 정타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곤 했다. 하지만 2022시즌부터는 그런 속구가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예년보다 외야로 향하는 공이 늘었고, 장타 허용도 뒤따랐다.
그 누구보다 속구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한 건 선수 본인이었다. 후반기 들어 맹활약할 당시 최준용은 “변화구보다 속구를 우선시해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는 속구 위력을 더 키울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내 강점은 속구에 있다”며 “그걸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믿고 있다. 잠시 ‘외출’ 중인 속구를 찾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도쿄돔에서 열린 APBC에서의 투구는 그 예고편이다. 최준용의 묵직한 속구가 일본 대표팀 타자들 상대로 꿈틀거렸다. 우리가 알던 그 공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 여기에 더해 신출귀몰한 체인지업까지 속구의 화력을 도울 전망이다. 다가오는 2024시즌, 거인군단 마운드를 지킬 최준용을 향해 많은 이목이 쏠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