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에이전트가 피의자로 입건돼 충격을 주고 있다(사진=Bing AI)
최근 한 에이전트가 피의자로 입건돼 충격을 주고 있다(사진=Bing AI)

 

[스포츠춘추]

에이전트가 협박범과 짜고 선수 돈을 뜯어냈다?

최근 서울 강남경찰서는 김하성의 전 소속사이자 류현진의 국내 매니지먼트 사인 A사 소속 에이전트 B씨를 피의자로 입건했다. 경찰은 B씨가 전 프로야구 선수 임혜동과 짜고 김하성을 협박, 갈취한 돈을 나눠 가진 혐의를 조사 중이다. 또 B씨가 임혜동의 류현진 상대 공갈, 협박에도 가담했는지 여부를 살피는 중이다. 

선수 지원과 권익 보호가 주 업무인 에이전트가 자신이 관리하는 선수 상대로 협박을 공모하고 지시했다는 의혹에 에이전트 업계와 야구계가 술렁이고 있다. 한 에이전시 팀장은 “초반 시행착오를 거쳐 조금씩 자리 잡아가는 에이전트 업계에 큰 악재”라며 우려했다. B씨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문제를 일으켰던 인물임을 들어 에이전트 자격 관리기관인 프로야구 선수협회의 부실관리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에이전트의 첫째 의무는 선수의 이익이다(사진=Bing AI)
에이전트의 첫째 의무는 선수의 이익이다(사진=Bing AI)

 

야구계-연예계 마당발 B씨, 과거에도 선수 상품 빼돌려 징계 전력

B씨는 원래 대형 에이전시 업체 C사 팀장으로 야구계에서 이름을 알렸다. 야구계는 물론 연예계에도 넓은 인맥을 자랑해 ‘마당발’로 통했다. 최근까지 한 연예인 야구단 운영자로도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C사에선 김하성을 비롯한 여러 대형 스타 선수를 담당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B씨를 잘 아는 야구 관계자는 “내로라하는 스타 선수들이 B씨와 호형호제하며 가깝게 지냈다. 친형보다 더 믿고 따른다는 선수도 많았다”며 “선수들과 관계 형성 능력이 굉장히 뛰어났다”고 했다.

하지만 B씨의 에이전트 업무 방식을 두고 야구계에선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선수협 출신 야구 관계자는 “이번에 워낙 큰 사건에 휘말렸다 뿐이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비슷한 일이 있었다”면서 “몇 해 전에는 소속 스타 선수들이 골든글러브 부상으로 받은 고가의 글러브를 몰래 처분했다가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당시 선수협은 B씨에게 ‘6개월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다. 

이후 B씨는 C사를 떠나 A사로 이직했다. 자신이 관리하던 선수 여러 명을 한꺼번에 데리고 회사를 옮긴 B씨의 행보에 에이전트 업계에선 ‘상도를 파괴했다’는 비판이 나왔고, C사에서도 격렬하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급 선수를 대거 영입한 A사는 단숨에 국내 굴지의 에이전시로 발돋움했다. 이후 김하성이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A사는 기존 류현진 포함 현역 메이저리거 2명을 보유한 에이전시가 됐다.

문제는 김하성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뒤에 불거졌다. 경찰은 B씨가 로드매니저로 일하던 임혜동과 공모해 김하성을 협박했을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임혜동은 2021년 초 서울 강남의 한 술집에서 김하성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총 4억 원의 합의금을 받았는데, 이 가운데 수천만 원이 B씨에게 흘러갔다는 것이다.

당시 야구 국가대표로 병역특례를 받은 상태였던 김하성은 코로나19 방역수칙 위반 사실이 밝혀지면 특례가 취소되고 현역으로 입대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미국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입단을 앞둔 가운데 구설수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심리도 거액의 합의금을 건넨 배경으로 작용했다.

한 야구 관계자는 “이런 김하성의 ‘약점’을 임혜동에게 알려주고 지시한 게 바로 B씨라는 이야기가 들린다”고 했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라면, 에이전트 업무를 하며 알게 된 선수에 대한 정보를 협박과 갈취에 악용한 셈이 된다.

임혜동이 류현진을 협박하는 데 B씨가 관여했는지도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B씨는 류현진의 국내 활동 시 매니지먼트 업무를 담당했다. 류현진이 가는 곳마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앞의 야구 관계자는 “임혜동이 김하성에게 처음 2억 원을 뜯어낸 직후, A사는 그를 해고하거나 제재하지 않고 류현진의 로드매니저로 임명했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일”이라고 지적했다. 임혜동은 류현진의 술자리 장난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뒤 협박해 3억 원 이상을 갈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애초 B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하다 최근 피의자로 전환했다. B씨는 경찰 조사가 시작된 지난 12월 A사에서 퇴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혜동의 계속된 협박에도 에이전시로부터 아무 보호를 받지 못한 김하성은 결국 지난해 9월 A사에서 독립해 가족들과 함께 1인 기획사를 설립했다. 

김하성, 류현진 외에 추가 피해자가 없는지도 경찰 수사가 필요해 보인다. 한 에이전트 업계 관계자는 “선수들 말로는 B씨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조만간 회사에 큰 투자가 들어올 예정’이라고 선수들에게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고 전했다. 다른 에이전트는 “안 그래도 후원사에서 선수들에게 제공한 물품의 관리, 특정 트레이닝 센터와의 관계 등을 두고 뒷말이 많았다”고 했다.

만약 현재까지 제기된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B씨는 에이전트 자격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KBO리그 선수대리인 규정’ 제19조 [선수대리인의 의무와 책임]엔 “① 선수대리인은 대리하는 선수의 이익을 위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② 선수대리인은 자신의 이익과 대리하는 선수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 선수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고 돼 있다. 선수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게 에이전트의 의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또 제21조 [기타 금지행위]에서도 “선수 대리인은 선수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선수의 이익과 충돌하는 결과를 일으킬 우려가 있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조항과 함께 이를 위반했을 때 “해당 선수대리인의 업무제한을 비롯한 제재를 선수협회에 요청할 수 있고 선수협회는 해당 선수대리인에게 필요한 제재를 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선수협 출신 야구 관계자는 “B씨가 과거 문제를 일으켰을 때 제대로 철퇴를 휘두르지 않은 게 시간이 지나 더 큰 문제로 돌아온 셈”이라며 “공인대리인 자격시험이 벌써 8년째에 접어드는 만큼 선수협도 자질 미달 에이전트, 무자격 에이전트를 보다 철저히 걸러내고 제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야구 관계자는 “결국 문제 에이전트가 활개치면 피해를 입는 건 선수들”이라며 “선수들도 야구용품 잘 챙겨주는 사람, 술 사주는 형을 따를 게 아니라 선수의 편에서 정직하게 일하는 에이전트와 손잡아야 한다. 이번 일로 선수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다른 에이전트들까지 도매금으로 취급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저작권자 © 더게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