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캠프에서 선수들을 촬영하는 이글스 TV 제작진(사진=한화)
스프링캠프에서 선수들을 촬영하는 이글스 TV 제작진(사진=한화)

[스포츠춘추]

지난 1월 17일, 한화 이글스 공식 유튜브 채널 ‘이글스 TV’의 구독자가 20만을 돌파했다.

야구단 유튜브 구독자 20만 명은 디펜딩 챔피언 LG 트윈스(21만)에 이어 두 번째다. 자이언츠 TV(19.7만)도, 베어스 TV(19.5만)도 못한 20만을 이글스 TV가 먼저 달성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구독자 7만 명대로 최하위권이던 구독자 수가 지난 시즌 폭발적으로 증가해 어느새 2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여기에 누적 조회 수 ‘1억뷰’를 돌파하는가 하면, 연간 조회 수에서도 1위를 차지하는 등 독보적인 채널 영향력을 자랑한다.

보통 구단 채널 구독자 수는 팀의 인기도와 연고지 시장 크기, 전국구 팬페이스와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한화도 인기 구단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서울 연고의 LG, 두산이나 광주 KIA, 부산 롯데보다 불리한 조건인 게 사실이다. 이런 핸디캡을 한화는 콘텐츠의 힘으로 극복하고, 20만 구독자를 달성하며 온라인 공간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경쟁 구단 마케팅 담당자는 “이글스 TV는 온라인에 최적화된 문법과 기발한 기획력, 그러면서도 적정한 선을 잘 지키는 균형 감각이 돋보인다. 여기에 구단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현장과 협조가 잘 이뤄지는 것도 좋은 콘텐츠가 나오는 비결이라고 본다”는 생각을 전했다. 외주 제작에 의존하는 일부 구단과 달리 한화는 구단 내에 자체 디지털 콘텐츠 팀을 만들고 전문 인력을 배치했다. 또 야구장 내에 자체 스튜디오를 만들고, 글로벌 OTT 수준의 카메라와 드론 등 제작 시스템도 구축했다.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내에 자리한 이글스 TV 스튜디오(사진=한화)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내에 자리한 이글스 TV 스튜디오(사진=한화)

 

“디지털 미디어 잘 활용하면 새로운 수익 창출 가능성 열린다”

이런 이글스 TV의 성과는 ‘자생력 확보’가 화두로 떠오른 KBO리그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간 팬서비스의 일환 정도로 여겼던 구단 디지털 마케팅이 새로운 수익원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KBO리그에 최초로 구단 유튜브 채널이 등장한 건 2011년 4월. 당시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가 채널을 개설하면서 디지털 마케팅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신생팀 NC 다이노스가 2011년 말 ‘2호’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구단을 알리고 팬을 늘리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던 NC는 유튜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소통했다. NC의 시도가 좋은 반응을 얻자 다른 구단들도 하나둘씩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고 2013년 KT 위즈까지 10개 구단이 모두 독자 채널을 갖추게 됐다.

구독자 20만을 돌파한 이글스 TV.
구독자 20만을 돌파한 이글스 TV.

초창기만 해도 구단 업무에서 유튜브 채널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았다. ‘남들이 다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구독자 수도 많지 않았고 대단한 수익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인력이나 장비에도 큰돈을 들이지 않았다. 홍보팀이나 마케팅 팀원 한 명이 유튜브 채널, SNS 관리까지 도맡는 경우도 있었다.

한 지방구단 마케팅 담당자는 “대부분의 구단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KBO를 통해 내려오는 주최단체지원금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다. 이 경우 제작비 문제는 해결되지만 대신 수익 창출이 제한된다는 단점이 있다. 광고를 다는 데도 제약이 있다”면서 “구단 유튜브 채널 대부분이 광고 없이 운영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튜브 플랫폼의 성장과 함께 구독자가 늘고 팬들의 호응이 커진 최근엔 조금씩 수익화의 길이 열리는 조짐이 보인다. 한화를 비롯한 몇몇 구단은 일찌감치 유튜브를 통한 수익 창출에 눈을 떴다. 한 구단 디지털 담당자는 “유튜브 조회 수만으로 수익을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꾸준히 채널 자체의 영향력을 키우면 다양한 길이 열린다”며 “간접광고(PPL)이 붙고 여러 광고와 제휴가 들어온다. 구독자가 늘면서 점차 광고 단가도 올라간다”고 전했다. 한화의 경우 PPL과 NFT 멤버십 등을 연계해 지난해 수억원대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구단 마케팅 담당자는 “과거 프로야구단의 주 수입원은 입장료와 중계권료, 광고판매, 식음료와 굿즈 판매 수입 정도였다”면서 “구단들이 신규 수입원에 목마른 상황이었는데, 디지털 미디어를 잘 운영하면 충분히 새로운 수익 창출이 가능할 거라고 본다”고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한화는 내부적으로 2025년까지 연 10억 원의 수익을 목표로 잡고 있다. 이는 식음료 판매 등을 통해 얻는 연간 수익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야구 디지털 콘텐츠를 즐기는 문화가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다(일러스트=Bing AI)
야구 디지털 콘텐츠를 즐기는 문화가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다(일러스트=Bing AI)

 

OTT 중계 시대, 구단 디지털 마케팅 진검승부 펼쳐진다

특히 뉴미디어 중계권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넘어간 올 시즌부터는 구단 자체 채널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KBO는 지난 1월 8일 “2024~2026 KBO리그 유무선(뉴미디어) 중계권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CJ ENM을 선정했다”고 알렸다. CJ ENM은 자사 OTT 플랫폼 티빙을 통해 KBO리그를 생중계할 예정. 1월 중으로 KBO와 협상이 끝나면 앞으로 3년 동안 KBO리그 전 경기와 주요 행사의 국내 유무선 생중계·하이라이트 등 VOD 스트리밍 권리와 재판매 사업권 등을 갖게 된다.

기본적으로 유료 구독 플랫폼인 티빙이 뉴미디어 중계권을 가져가면 그간 포털에서 무료로 서비스했던 경기 생중계가 일정 부분 유료화될 가능성이 있다. 전 경기 중계와 무료중계 시대에 야구를 처음 접한 팬들 사이에선 유료화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구단 마케팅 담당자들은 오히려 포털 시대의 종말을 반기는 분위기다. 한 지방구단 마케팅 담당자는 “유료화에 대한 반감을 극복해야겠지만, 이는 콘텐츠 2차 가공을 통해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면서 “유료화로 인해 이탈하는 팬과, 유튜브 등 구단별 매체를 통해 새로 유입되는 팬의 비율을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네이버 등 기존 뉴미디어 사업자는 그간 콘텐츠 2차 창작물에 강경한 태도로 일관해 왔다. 이 때문에 팬들은 물론 구단조차도 자신들의 경기 영상을 마음 놓고 쓰지 못했다. 더그아웃 직캠 영상은 경기 장면 없이 더그아웃만 비춰야 했다. 부득이하게 그라운드 영상을 사용하려면 별도 계약을 체결해야 했다. 심지어 KBO 공식 유튜브 채널과 SNS에서도 경기 영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앞의 마케팅 팀장은 “그동안 네이버는 프로야구 영상을 독점하면서도 특별히 양질의 가공 콘텐츠를 내놓지 못했다. 그렇다고 중계방송에서 뭔가 독자적인 기술력을 도입해 선보인 것도 아니다. 프로야구의 매력이 100이라면 네이버는 그 절반도 보여주지 못하는 매체였다”고 비판했다. 과도한 2차 가공 규제로 누적된 불만이 입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수도권 팀 마케팅 팀장은 “네이버 컨소시엄은 이번 입찰 PT에서도 2차 창작 이슈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면서 “어쩌면 금액보다도 더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반면 티빙은 2차 창작물 생산을 적극적으로 허용하겠다는 약속으로 구단 마케팅 팀장들로 구성된 입찰 심사인단을 사로잡았다. 라이브를 제외한 하이라이트, 클립 서비스를 모두 오픈하고 유튜브, 쇼츠,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재활용도 허용할 예정이다. 이는 기존 네이버의 방대한 아카이브와 무료 서비스라는 장점을 충분히 만회할 만한 무기다.

야구장에서도 디지털 콘텐츠를 즐기는 야구팬의 모습을 상상한 일러스트(일러스트=Bing AI)
야구장에서도 디지털 콘텐츠를 즐기는 야구팬의 모습을 상상한 일러스트(일러스트=Bing AI)

지방 구단 마케팅 담당자는 “이번 중계권 계약이 각 구단이 보유한 매체를 더욱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전까지 네이버 체제에선 개별 구단 팬이 아닌 ‘KBO팬’을 목표로 한 서비스를 제공했고 큰 메리트가 없었다. 이제는 각 구단이 경기 영상 소스를 활용해 팬들을 겨냥한 맞춤형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 2차 가공을 통한 콘텐츠의 활성화를 통해 포털 생중계와는 또 다른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순위 경쟁만큼 치열한 ‘콘텐츠 전쟁’이 기대된다는 예상이다.

수도권 구단 디지털 담당자는 “지난해까진 경기 영상 없이 콘텐츠를 만들어야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2차 가공이 가능해진다면 팬들에게 좀 더 보는 재미가 있는 영상을 제공하게 둴 것이다. 콘텐츠의 양도 많아지고 질도 높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모 구단 관계자는 “구단 자체 분석 결과 유튜브 등 구단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팬은 연 3회 이상 야구장을 찾는 고관여 팬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고관여 팬층은 구단 입장에서 크게 선호하는 고객군에 속한다. 응원팀과 선수를 위해서라면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고, 야구장 직관과 굿즈 구매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한다. 새로운 유형의 콘텐츠 소비에도 열려 있다. 어떤 면에선 마치 아이돌 팬들과 비슷한 행동-소비 패턴을 보여준다. 팀과 선수에 대한 비난보다는 응원에 주력한다는 것도 이들 고관여 팬의 특징.

이런 팬덤이 나타난 건 KBO리그에 큰 행운이자 새로운 기회다. 수도권 팀 마케팅 팀장은 “그간 구단들이 가장 목말랐던 2차 가공 문제가 해결된 만큼, 각 구단의 실력이 발휘될 시점이다. 올 시즌은 디지털 마케팅의 진검 승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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