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잠실]
천재 타자의 ‘색다른’ 데뷔전이 물고 물리는 접전 끝에 짜릿한 역전승으로 끝났다. 4월 5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프로 첫 선발 포수 마스크를 쓴 KT 위즈 강백호 얘기다.
이날 경기 초부터 LG와 난타전을 펼친 KT는 역전과 재역전을 계속 이어가다 연장 10회 승부를 거쳐 8대 7로 승리했다. 앞서 3일 홈 수원 KIA 타이거즈전부터 승리와 인연을 맺지 못한 KT는 2연패에서 탈출했다.
앞서 KT는 주전 포수 장성우가 4일 KIA전 도중 파울 타구에 오른팔을 다쳤고, 이에 올 시즌 ‘포수 변신’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강백호가 선발로 출전했다. 당초 고교야구 시절 서울고에서 투수와 포수 등을 오가면서 다재다능함을 뽐낸 강백호지만, 프로에선 포수로 선발 출전한 적은 없었다. 이에 2018년 프로 입단 후 7년 만에 처음으로 포수로 선발 출전한 강백호다.
마운드 위 선발투수로 나선 2004년생 우완 원상현과의 첫 호흡도 이목을 끌었다. 투구 수 관리(97구)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던 건 옥의 티였다. 하지만 ‘초보 배터리’의 항해는 4이닝 4실점(3자책)으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첫 선발 포수 출전에도 강백호는 베테랑 투수들이 아닌 원상현, 김민수, 이상동, 조이현, 박영현 등 비교적 젊은 투수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강렬한 데뷔전을 소화했다. 9회 말엔 김현수가 친 공을 몸을 내던져 파울플라이로 잡아내는 등 열정적인 면모도 드러낸 바 있다.
이날 강백호가 맡은 중책은 단지 포수 수비에 그치지 않았다. KT는 LG 상대로 배정대(중)-천성호(2)-멜 로하스 주니어(지)-강백호(포)-김민혁(좌)-황재균(3)-문상철(1)-조용호(우)-김상수(유)로 이어지는 라인업을 구성했고, 강백호는 선발 포수와 함께 4번 타자 역할도 수행해야 했다. 그도 그럴 게 4일 KIA전에서 4타수 4안타(1홈런) 맹활약을 펼친 직후다.
물론 난이도만 따지면 5일 LG전 출전이 훨씬 숨 가빴던 건 당연했다. 강백호는 이번 경기를 연장 10회까지 포수 마스크를 쓰고 완주했다. 여느 때와 달리 무거운 장비를 차고 긴 시간을 타석과 홈플레이트를 오간 상황이다. 이 때문이었을까. 이날 최종 기록은 5타수 1안타 1득점 1타점 1볼넷 2삼진이다. 전날 KIA전 활약엔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마다 역전 타점(4회 초), 결승 득점(10회 초) 등을 올리면서 팀의 연패 탈출 주역으로 우뚝 섰다.

경기 종료 후 이강철 KT 감독은 그런 강백호를 향해 “처음 선발 포수로 나가서 힘들었을 텐데,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이날 경기 전부터 강백호의 포수 훈련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등 각별한 애정을 아끼지 않은 바 있다.
한편 경기 뒤 취재진과 만난 강백호는 연장 승부를 포수로 완주한 여파인지 무척 지쳐 보였다. 하지만 승리 소감을 묻자 이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술술 답하기 시작했다.
“이겨서 정말 다행입니다. 우리 팀의 좋은 투수들이 저 때문에 괜히 온전한 기량을 못 냈을까봐 경기 내내 마음을 졸였거든요. 저 대신에 더 좋은 포수 선배들이랑 함께 던질 수 있었는데, 그래서 미안하고 감사해요. 배우자는 마음으로 뛰었고, 그만큼 많이 부족했습니다.” 강백호의 진심이다.
이날 경기에 앞서 강백호는 본인 전용 포수 장비를 새롭게 받았다. 그전까진 선배 장성우, 김준태 등의 장비를 빌려 쓴 것. 이에 강백호는 “(장)성우 형, (김)준태 형 둘이 정말 많은 걸 알려주시고 또 챙겨주셨다”면서 “포수 미트는 아직 내 것이 없어 성우 형 장비를 빌려 쓰고 있다. 새로 길들인 걸 만들어야 하는데, 이번에 성우 형이 선물해 주신다고 했다”고 밝혔다.
벼락치기로 외운 포수 전용 사인도 곧잘 해낸 강백호는 혀를 내두르면서 “경기 중 사인이 정말 많다. 내가 직접 내야 하는 사인도 있고, 타자·주자 전용 사인도 같이 기억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쩌면 벅찰 수도 있는데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셨기에 더 열심히 외웠다”고 설명했다.

강백호가 포수로 한 경기를 오롯이 책임진 건 7년 전 고교야구 시절 때로 돌아가야 할 정도다. 올 시즌 갑작스러운 포지션 변경 및 포수 재도전에 혼란스러움은 없었을까.
“포수 관련해선 솔직히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그래도 몸으로 하다 보면 기억해 낼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요? 가장 중요한 건 제 불안한 모습에 투수들이 흔들릴 수 있단 점이었어요. 우리 팀한테 마이너스가 될 수 있는 부분이라서 가능한 한 열심히 훈련하고 또 동료들과 계속해서 소통하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이어 강백호는 “그동안 ‘급작스러운’ 경험에 아주 익숙해서 그런지 이런 상황을 좋아한다”고 웃었다. 최근 물오른 타격감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드러낸 강백호다. 다만 이날 타격에선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LG 투수들의 공이 워낙 좋았다고 인정한 것. 그렇기에 6일 경기에서 만회하고 싶다고.
포수 복귀를 위해 피나는 연습과 훈련을 매 반복 중인 강백호는 도통 ‘만족’을 모른다. 이와 관련해선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하기도 했다.
“연습만 따지면 저는 외야에서 (박)해민이 형처럼 수비했을 거예요. 실전은 정말 다릅니다. 아무리 훈련 때 잘해도 실전에선 그 모습들이 안 나오거든요. 실전에서도 좋은 모습이 나올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죠.”
끝으로 강백호는 과거 이강철 감독과 나눴던 ‘포수 생태계 파괴’ 농담을 복기하면서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포수로 다시 뛰게 될 줄은 몰랐다. 나도 지금 상황이 신기하다. 확실히 말을 조심해야 한다(웃음). 생태계를 파괴하는 게 아니라 ‘오순도순’ 잘 지내보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