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이쯤 되면 ‘효자손’이 아닐까? 돌아온 예비역 병장들이 KBO리그를 들썩이게 한다. 지난해까지 상무 피닉스 야구단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선수들이 소속팀에 복귀해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주고 있다.
먼저 지난해 퓨처스리그 남부리그 세이브왕(17개)을 달성한 SSG 랜더스 우완 조병현은 현시점 리그에서 가장 돋보이는 불펜 가운데 하나다. 당초 고효준·노경은 등 베테랑 의존도가 심했던 SSG의 뒷문이기에 업그레이드된 조병현의 가세는 말 그대로 ‘천군만마’와도 같다.
앞서 스토브리그에서 내야 만능 유틸리티 김민성(현 롯데 자이언츠)를 FA(자유계약선수) 및 사인앤드트레이드로 떠나보낸 LG 트윈스도 상무발(發) 복귀 선수에 한숨을 덜었다. 끝내기 안타만 벌써 두 차례나 때린 슈퍼백업 구본혁 얘기다.
개막 후 15경기에서 타율 0.394를 기록한 KT 위즈 내야수 천성호 또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이다. 그동안 오윤석, 이호연, 신본기 등이 도전했던 마법사 군단의 주전 2루 자릴 단숨에 꿰찬 천성호는 공·수·주에서 고른 활약을 통해 세대교체의 장을 활짝 열었다.
2024 KBO리그 뒤흔들고 있는 상무 ‘예비역’ 조병현·구본혁·천성호

SSG의 2002년생 신흥 필승조 조병현은 온양중-세광고를 졸업해 2021 신인 드래프트 2차 3라운드 28순위로 팀에 합류한 이다. 2022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쳤고, 이 가운데 특히 2023년 퓨처스리그 43경기에 등판해 2승 2패 4홀드 17세이브 평균자책 2.25로 맹활약한 바 있다.
“승부처에서 테스트로 상대 간판타자들과도 붙어봤는데 잘 던졌습니다. 이젠 필승조로 써야죠.”
이숭용 SSG 감독도 조병현의 최근 연이은 활약에 감탄을 감추지 못할 정도다. 돌아온 조병현은 개막 후 7경기에서 9.1이닝 1승 0패 3홀드 0세이브 평균자책 0.96을 기록하고 있다. 멀티이닝 소화도 곧잘 해내면서 SSG 승리를 위한 새로운 열쇠로 통한다.
특유의 높은 타점에서 때리는 속구는 흡사 ‘돌직구’를 연상케 한다. 투구 레파토리 역시 강점이다. 조병현이 주로 던지는 하이패스트볼과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 포크볼 등의 조합은 ABS(자동 투구판정 시스템) 시대에서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이를 두고 SSG 사령탑도 “조병현의 경우 키가 매우 큰 편은 아니지만, 릴리즈포인트가 높다”면서 “높은 타점에서 떨어지는 브레이킹볼과 포크볼이 (하이패스트볼과 함께)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11.57개에 육박하는 9이닝당 탈삼진이 그 방증이다. 반대로 볼넷은 9이닝당 2.89개로 균형이 잘 잡힌 조병현이다. 야구통계사이트 ‘스포키-스탯티즈’에 따르면, 조병현의 올 시즌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는 현시점 0.57로 리그 불펜 전체 4위에 해당한다. SSG 팀 내에선 고효준(0.42), 한두솔(0.14) 등을 제치고 으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지난해 혼자서 83이닝을 책임진 노경은의 어깨를 가볍게 해줄 선수의 등장이라 반가운 대목이다. 조병현의 등장으로 기존 베테랑들도 자극받아 ‘페이스가 올라오고 있다’는 후문도 들린다. 퓨처스팀(2군)에선 마무리 서진용이 팔꿈치 수술 재활을 마치고 실전 등판을 시작했다. 서진용마저 정상 컨디션으로 콜업될 시엔 조병현, 고효준, 노경은, 문승원 등으로 무장한 SSG의 뒷문은 더 단단해질 전망이다.

직전 시즌 한국시리즈 트로피를 놓고 격돌한 LG, KT도 상무에서 복귀한 구본혁, 천성호의 합류로 올 시즌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두 선수 모두 입대 전보다 진일보한 타격으로 연일 뜨거운 타격감을 뽐낸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더 멋있게 치고 싶었는데, 꿈속처럼 그런 장면은 아니라서 아쉬워요.”
앞서 4월 4일 잠실 NC 다이노스전 연장 11회 말 끝내기 안타를 친 구본혁의 진솔한 소감이다.
프로 데뷔 6년 만에 맞이한 첫 풍경에도 아쉬움을 표했던 구본혁은 이내 이틀 만에 다시 한번 끝내기의 주인공이 됐다. 마찬가지로 잠실에서 열린 6일 KT전에서 9회 말 4대 4 동점 상황 1사 만루에서 상대 마무리 박영현의 속구를 공략해 좌측 담장을 넘겨 버린 것. 불과 일주일 만에 끝내기를 두 차례나 때려낸 구본혁이다.
본래 팀에선 대주자 혹은 대수비 요원으로 기용됐던 선수라서 의미가 더 남다른 대목이다. 그런 과거를 떠올린 선수 본인은 “예전이었다면 대타로 나설 기회조차 받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지금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 수비뿐만 아니라 타격에서 자신감이 크다”고 말한 바 있다. 염경엽 LG 감독은 그런 구본혁을 향해 “김현종과 함께 경기 전 매일 일찍 나와 특타를 할 정도로 타격 훈련에 공을 들이고 있다”며 “제대 후에 타격 쪽에서 본인 만의 이론을 어느 정도 정립해서 돌아왔다”고 말할 정도다.
“상무에 가니 잘 치는 선수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옆에서 보면서 많이 배우려고 했고, 그러다 보니 다들 공통점이 ‘하체 활용’이었습니다.”
4일 끝내기 안타 기록 후 취재진과 만난 구본혁의 설명이다.
계속해서 상체로만 타격했던 구본혁은 상무에서 하체 활용을 포함해 많은 부분을 익혀 돌아왔다. 그 결과, 구본혁은 변수가 생기면 오지환, 신민재, 문보경 등 기존 주전 자원들을 대신할 1순위 자원으로 평가받는다. 그도 그럴 게 적은 기회 속에서도 이미 충분히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기 때문. 올 시즌 3루수와 유격수를 오가면서 보여준 11경기 1홈런 8타점 1도루 타율 0.467, 출루율 0.500, 장타율 0.733 맹활약이 그 증거다.

지난해 퓨처스리그 남부리그 타격왕(0.350)에 빛나는 천성호도 상무에서의 경험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배트를 짧게 잡고 찍어 치는 기존 스타일을 교정한 뒤 천성호는 ‘타격 기계’로 변신했다.
지난 2일 스포츠춘추와 만난 천성호 역시 “상무에서 무조건 ‘달라져서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면서 “그곳에서 자신감을 많이 얻은 것과 별개로 최대한 1군 투수들에 맞춰 이미지 트레이닝부터 타격 훈련까지 많은 부분을 신경 쓴 게 효과를 보고 있는 듯싶다”고 설명했다.
앞서 2년 동안 천성호와 함께한 박치왕 상무 감독은 이를 두고 “비로소 ‘스프레이 히터’가 됐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실제로 고른 타구 분포도를 자랑 중인 천성호는 개막 후 15경기에서 타율 0.394, 출루율 0.420, 장타율 0.439로 KT에서 공격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맡고 있다. 심지어 올 시즌 안타를 치는 데 실패한 경기는 단 한 차례로 3월 31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4타수 무안타)을 제외하면 14경기에서 모두 안타를 쳤다.
또 빠른 발을 앞세워 공·수에서 번뜩이는 장면이 수시로 나온다. 드디어 베테랑 2루수 박경수의 후계자가 나타났단 평가가 뒤따르고 있다. 이에 이강철 KT 감독은 “타격, 수비 다 잘해주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라면서 “이런 페이스를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특급 칭찬과 함께 미소를 짓기도 했다.
한편 2020년 입단 후 곧바로 1군 백업으로 뛰긴 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팬들과 호흡할 기회가 적었던 천성호다. 올 시즌엔 다르다. 연일 안타 생산을 하는 등 빼어난 활약에 힘입어 팬들의 많은 이목을 끌고 있다. 선수 전용 응원 노래도 생기면서 경기장에서 천성호의 이름이 울려 퍼지는 건 이젠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하루하루가 너무 재밌습니다. 좋은 응원가가 생겼고, 팬분들께서도 열렬히 응원해 주시잖아요. 자신감은 물론이고, 더 잘하고 싶단 욕심이 생겼어요.” 천성호의 다짐이다.
‘개봉박두’ 상무산 히트상품은 앞으로도 계속 나온다

상무에서 온 히트상품들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시즌 초부터 주전 우익수 김성윤의 부진으로 골머릴 앓은 삼성은 최근 ‘새 얼굴’의 등장으로 고민을 한껏 덜어낼 수 있었다. 2022년 입단 직후 첫해에 곧바로 상무에 입단했던 김재혁의 존재 덕분이다.
올 시즌 개막 엔트리에 든 후 얼마 되지 않아 잠시 2군에 머물렀던 김재혁은 지난 6일 다시 콜업돼 3경기 연속 주전 우익수로 출전 중에 있다. 그중 KIA 타이거즈, 롯데를 차례대로 만나 4안타(2루타 1개) 2볼넷 등을 기록하면서 남다른 타격감을 뽐내기도 했다.
메이저리그(MLB)가 탐낸 ‘천재타자’ 나승엽(롯데)은 2022년부터 상무에서 2년 연속으로 3할 타율, 4할 출루율을 기록한 바 있다. 제대 후 맞이한 올 시즌 시범경기에서도 1홈런을 포함해 타율 0.385, 출루율 0.438, 장타율 0.615를 기록하면서 기분 좋은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올 시즌 개막 초엔 그런 모습을 이어가지 못했고, 현시점에선 2군 재조정을 통해 반등을 꾀하는 입장이다. 제 컨디션만 찾는다면 뛰어난 배트컨트롤과 눈야구를 앞세워 거인 군단의 진격을 도울 것으로 점쳐진다.
구본혁, 천성호를 통해 올 시즌 초부터 상무 효과를 누린 LG와 KT의 경우엔 오는 7월 내야수 이영빈, 심우준이 팀에 복귀한다. 둘 역시 상무에서 담금질을 거쳐 발전된 모습이 기대되는 이들이다. 염경엽 감독은 이영빈 복귀 시 1군 엔트리에 올려 ‘미래를 위한’ 백업 역할로 기용할 계획이다. KT의 주전 유격수로 활동하던 중 상무에 입대한 심우준은 순위 싸움에 한창인 여름쯤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제자들의 최근 1군 활약에 웃음을 보인 박치왕 상무 감독은 “상무를 떠나 퓨처스리그, 또 KBO리그 전체로 봐도 매우 긍정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1군 진입을 위해 희망을 놓지 않고 달리고 있는 2군 선수들에게 큰 동기부여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 박 감독은 “2군이라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보여주면 1군에서도 통한다. 지난해 서호철(NC 다이노스)이 있었고, 올해는 더 많은 선수가 그 좋은 예시가 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