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이후 부진으로 9위까지 추락한 한화(사진=한화)
4월 이후 부진으로 9위까지 추락한 한화(사진=한화)

 

[스포츠춘추]

오프시즌 대대적인 전력보강은 이따금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된다. 12년 전 한화 이글스가 그랬다.

2011년을 공동 6위로 마감한 한화는 그해 겨울 대규모 외부 영입에 나섰다. LG에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낸 FA(프리에이전트) 송신영을 영입했고, ‘4번타자’ 김태균과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데려왔다. 광속구 외국인 투수 데니 바티스타도 재계약에 성공했다. 

에이스와 4번타자, 최고의 불펜투수를 데려왔으니 4강은 물론 우승도 가능하다는 소리가 구단 안팎에서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했다. 한대화 당시 감독도 본인 입으로 “2012년 해볼 만 하다” “우리도 4강을 목표로 해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4강’ 발언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2011시즌 실제 전력(기대승률 0.383)보다 훨씬 높은 실제 승률(0.450)을 기록한 한화의 운은 2012년 돌아오지 않았다. 한화 선수들은 거짓말처럼 원래 실력을 되찾았고, 새로 데려온 선수들은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남겼다. 송신영은 넥센 시절 모습으로 돌아갔고, 은퇴를 앞둔 박찬호는 경쟁력이 없었다. 새 외국인 투수 션 헨은 이름에 션이 들어간 선수는 뽑는 게 아니란 사실을 확인시켜줬고, 바티스타는 잇따른 구원 실패 끝에 선발로 보직을 바꿨다. 한화는 2012시즌 다시 최하위로 추락했다. 한대화 감독은 시즌이 한창인 8월 28일 자리에서 물러났다. 

차라리 어설픈 외부 영입 없이 있는 전력으로 시즌을 치렀다면, 한화를 향해 ‘4강 이상도 가능하다’는 식의 미디어 하이프가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전력 이상의 성적을 냈다고 박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구단은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팀의 수준을 보지 못했고, 감독은 조급했다. 한때 ‘야왕’ 소리까지 듣던 한대화 감독은 이후 다시는 1군 사령탑을 맡지 못했다.

그로부터 12년 뒤인 올시즌, 한화는 다시 한번 대대적 전력보강에 나섰다. 이미 2023시즌을 앞두고 채은성, 이태양 영입으로 한 차례 전력을 보강한 터다. 여기서 결과를 못 낸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은 31경기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수베로 경질은 한화의 다음 감독이 반드시 성적을 내야만 한다는 의미였다. 

돌아온 류현진(사진=한화)
돌아온 류현진(사진=한화)

올겨울 한화는 FA 안치홍 영입, 2차 드래프트로 김강민 영입, ‘8년 170억 원’에 류현진을 데려오면서 독수리 그림에 마지막 눈을 그려넣었다. 류현진+채은성+안치홍 세 선수에게 쏟아부은 돈만 330억 원이 넘는다. 올해는 반드시 성적을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최원호 감독은 공개적으로 ‘가을야구’를 말했고, 주축 선수들은 ‘5강에 못하면 서산 앞바다에 입수하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3월까진 분위기가 좋았다. 한화는 개막전 패배 후 7연승을 달리며 단독 선두를 질주했다. 류현진과 외국인 투수 듀오, 김민우와 문동주가 나오는 선발진은 막강했다. 김민우 대신 대체선발로 나온 황준서까지 승리투수가 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타선도 새 외국인 타자 요나단 페라자의 맹활약 속에 연일 대량득점 경기를 펼쳤다. 5강을 너머 우승까지 가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4월 들어 한화는 다시 원래의 한화로 돌아갔다. 4월 한 달간 6승 17패. 5연패 한 차례, 6연패를 한 차례씩 당하며 더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5월에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아 4경기에서 1승 3패다. 7일 현재 한화는 14승 21패 승률 0.400으로 9위까지 내려앉았다. 

아직 5할 승률에 -7승, 5위와는 4경기 차에 불과해 시즌을 접을 정도는 아니지만 최하위 롯데와도 2경기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만약 이번 주 롯데와 주중 3연전에서 스윕이라도 당했다간 최하위로 추락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롯데는 최근 3연승으로 한창 분위기가 뜨거운 팀이다.

지난 시즌 홈런왕 노시환(사진=한화)
지난 시즌 홈런왕 노시환(사진=한화)

2012년에 그랬던 것처럼 가진 전력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했던 것일까. 물론 초반 7연승과 선두 질주가 한화의 약점을 가린 면은 있다. 올 시즌 한화는 분명 강해졌지만, 아직 채워야 할 구멍도 많은 팀이다. 5강에 도전하는 팀치고는 추락할지도 부실하고, 불펜에도 계산이 서는 투수가 많지 않다. 장타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뛰는 야구를 할 선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균형 잡히고 안정적인 전력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한화가 부진한 주된 이유는 고액 몸값을 받는 주축 선수들의 부진에 있다. 류현진은 어렵사리 100승을 채웠지만 아직 ‘코리안 몬스터’ 별명에 어울리는 압도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국내 에이스를 기대한 문동주는 부진 끝에 2군에 내려갔다. 시즌 초반 희망을 보였던 김민우는 토미존 수술로 시즌 아웃됐다. 

채은성이 극심한 부진에 빠졌고, 안치홍은 수비위치가 1루로 제한된 가운데 타격 성적도 기대 이하다. 여기에 홈런왕 노시환마저 2년 전으로 돌아갔다. 전문가들이 한화를 5강 후보로 꼽은 건 외부에서 데려온 스타 선수들에 대한 기대였는데, 이 선수들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한화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셈이다.

최원호 감독(사진=한화)
최원호 감독(사진=한화)

아직 시간은 있다. 7일 기준 정규시즌 109경기가 남았다. 추락한 한화가 다시 비상하는 길은 간단하다. 류현진이 몬스터급 활약을 펼치고 문동주가 지난해 이상의 피칭을 해주면 한화 선발진은 최강이 된다. 안치홍, 채은성, 노시환이 평소 실력만 해줘도 한화 타선엔 경쟁력이 생긴다. 

이 선수들이 이대로 지금 성적으로 시즌을 마치진 않을 것이다. 한화는 반등할 여력이 있는 팀이다. 다만 그 반등이 어느 시점에 찾아올지가 문제다. 최하위 롯데, 7위 키움과 만나는 이번 주가 고비다. 그 뒤로는 NC-삼성-LG-SSG와 상대하는 고난의 행군이 기다리고 있다. 12년 전 한대화 감독 시절의 운명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이번 주를 터닝포인트로 만들어야 한다.

저작권자 © 더게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